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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淨法身 비로자나불 華嚴敎의 本尊

(사)대한불교원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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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자나불 칠지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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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2,295회 작성일 12-07-16 11:48

본문

비로자나불 칠지좌법
 
1. 두 발을 올려 가부좌(跏趺坐: 속칭 쌍반雙盤이라 한다)를 취합니다. 이런 자세를 취하기 어려우면 금강좌(金剛坐: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놓음)나 여의좌(如意坐: 왼발을 오른쪽 허벅지 위에 놓음)를 취합니다.
 
2. 두 손은 삼매인(三昧印)을 맺습니다(오른 손바닥이 위로 보도록 하여 왼쪽 손바닥 위에 놓고 두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맞댑니다).
 
3. 척추를 마치 엽전을 한 줄에 꿰어 쌓아 놓은 듯 곧게 세웁니다(신체가 건강하지 못한 자는 처음엔 곧게 세우려고 무리하지 말고 자연스러움에 맡깁니다. 수련을 오래 해나가다 보면 자연히 곧게 됩니다).
 
4. 두 어깨를 폅니다(구부러져서도 안 되고, 일부러 힘을 주어 바짝 당겨서도 안 됩니다).
 
5. 머리를 바로 하고 턱을 당깁니다(후뇌를 약간 뒤로 하고 턱을 안으로 당겨 목 좌우에 있는 두 동맥에 가볍게 압박이 가도록 합니다).
 
6. 혀끝을 위쪽 두 앞니의 잇몸 뒤 침샘에 가볍게 붙입니다.
 
7. 두 눈은 반쯤 감습니다(두 눈을 반은 뜨고 반은 감은 모습입니다. 만약 눈을 뜨는 것이 정(定)에 들기 쉽다면 눈을 뜨되 활짝 떠서는 안 되며 약간 거두어 모으는 듯해야 합니다. 눈을 감는 것이 쉽게 정에 든다면 눈을 감되 혼수상태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주의사항
 
1) 정좌 자세를 할 때는 허리띠나 넥타이 등 몸에 압박을 가하는 것은 모두 풀고 신체를 이완시켜 완전한 휴식이 되도록 합니다.
 
2) 기후가 서늘하거나 차가울 때는 양 무릎과 목 뒤쪽을 덮어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풍한(風寒)이 침입하여 약물로도 치료가 힘들게 됩니다. 이 점을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3) 초보 수련자는 공기와 광선의 조절에 주의해야 합니다. 광선이 너무 강하면 산란해지기 쉽고 너무 어두우면 혼침(昏沈)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앉은 자리 앞 1미터 정도에서 공기가 서로 통할 수 있도록 합니다.
 
4) 배가 너무 부를 때는 정좌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정신없이 잠이 쏟아질 때는 억지로 정좌를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충분한 수면을 취한 뒤 다시 정좌해야 쉽게 정정(靜定)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5) 초보 수련자나 오랜 수련자나 반드시 방석을 깔고 앉되 엉덩이를 2~3촌(6.6~9.9cm) 정도 높여주어야 합니다. 초보 수련자는 두 다리가 부드럽지 않고 딱딱하기 때문에 4~5촌(13.3~16.5cm) 정도까지 높였다가 점차 낮추도록 합니다. 만약 엉덩이 부분을 높이지 않으면 신체 중심이 뒤로 쏠려 기맥이 막히기 때문에 노력해도 소기의 성과를 얻기 어렵습니다.
 
6) 정좌를 그만 둘 때는 두 손으로 얼굴과 다리를 문질러 기혈(氣血)이 활동하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적당히 운동을 해 주어야 합니다.
 
7) 정좌할 때는 얼굴에 미소를 띠어 얼굴 부위 신경을 이완시키고 자애로운 얼굴 모습을 짓습니다. 그러면 마음도 자연히 느긋해집니다. 절대로 딱딱하고 메마른 표정을 지어서 엄격하고 차가운 모습으로 변해가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8) 정좌를 처음 익힐 때는 한 번의 정좌시간을 짧게 하여 여러 차례 합니다. 처음 익힐 때 억지로 오래 앉아 있으면 오히려 싫증이 날 수 있으니 매번의 시간을 짧게 하여 하루 중 여러 번 하는 것만 못합니다.
 
정좌를 처음 익히기 시작할 때는 자세에 대단히 주의해야 합니다. 만약 나쁜 자세가 점점 오래되어 습관이 되면 바르게 고치기 힘들며, 심리와 생리에도 영향을 미쳐 병을 이루기 쉽습니다. 이 칠지좌법을 반드시 이와 같이 규정하는 까닭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으며 심리와 생리의 자연법칙에도 대단히 부합하는 것이므로 규정을 착실히 지켜야 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정신의 왕성함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정신을 배양해야 건강한 생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정신을 배양하는 방법은 먼저 마음에 항상 망념(妄念: 미혹한 마음, 미망한 잡념, 근거도 없이 일어나는 진실하지 않는 생각, 범부가 색 · 성 · 향 · 미 · 촉 · 법 6경에 탐착하는 것을 말함-역주)이 없도록 비우고 몸이 편안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이 비어야 비로소 생리기능이 왕성하게 이어져갑니다. 생리기능이 왕성하게 이어지는 한편 그 소모는 줄어든다면 자연히 평소보다 정신이 충만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기혈(氣血)의 왕성과 쇠약에 따라 넘쳐흐르거나 허약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만약 사려(思慮)를 과도하게 하여 피로해지면 기혈도 점차 쇠약해집니다. 그러므로 몸을 편안히 하면 수명을 다할 수 있고, 사려를 끊고 욕망을 버리면 정신을 배양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신체가 안정 상태를 유지하면 생명은 뿌리가 생겨나고 사려를 끊고 욕망을 버리면 정신이 배양되는 것입니다.
 
고대 의학은 인간의 생기가 기화(氣化)에 의해 충실해지고 기(氣)의 운행은 맥(脈)의 노선을 따라 돈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맥은 혈관이나 신경이 아니라 체내에서 기기(氣機: 기의 운동-역주)가 운행하는 하나의 규칙적인 샘 길[腺路]입니다. 기맥이론은 상당히 미묘한 것이라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기맥이론에 관하여는 남회근 선생 저 정좌수도강의를 참고하기바랍니다-역주).
 
황제내경(黃帝內經)에서 말하는 기경팔맥(奇經八脈)은 고대 도가의 설을 바탕으로 발전되어 나온 것입니다. 도가는 인체 속에 있는 삼맥인 임맥(任脈) · 독맥(督脈) · 충맥(衝脈)이 양생을 하고 신선도를 닦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티베트의 밀교에서는 인체에 삼맥사륜(三脈四輪)이 있다고 보는데, 이것이 즉신성불(卽身成佛: 범부라 하더라도 현세에 깨달음을 열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 현재 이 육신 그대로 깨달음을 여는 것-역주)의 관건이라 봅니다.
 
밀교 교전에는 심심내의근본송(甚深內義根本頌)이란 것이 한 부(部)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오는 기맥학설들은 황제내경이나 황정경(黃庭經) 등과 비교하면 저마다 독창적인 점이 있습니다.
티베트 밀교와 도가는 비록 모두 삼맥의 수련을 주장하지만 도가는 몸의 앞뒤에 위치한 임맥과 독맥을 위주로 합니다. 그런데 티베트 밀교는 좌맥과 우맥을 위주로 합니다. 수련법은 이처럼 다르지만 둘 다 중맥(中脈, 충맥衝脈이라고도 함)을 중심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선종의 좌선 자세는 비로자나불 칠지좌법을 채택한 것으로 비록 기맥을 중시한 명백한 표현은 없지만 좌선의 기능과 효과 면에서 사실상 기맥의 문제가 이미 내포되어 있습니다.
두 다리를 틀고 앉는 자세인 가부좌는 기(氣)가 위로 뜨지 않도록 해 주며, 또 기(氣)를 단전에 가라앉혀 기식(氣息)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이렇게 되면 마음이 고요해지며 기(氣)도 흐트러지지 않아 점차 여러 기맥을 따라 움직여 중맥으로 되돌아갑니다. 기(氣)가 되돌아가 중맥에 이르고 심장맥이 풀리고 열리게[脈解心開] 되었을 때야 비로소 망념이 일어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을 모두 잊을 수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비로소 대정[大寂]의 경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기맥이 안정되어 편안하지 않으면서 정(定)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이란 절대 없습니다.
 
보통사람이라도 몸이 건강할 때는 마음이 유쾌하고 머리에서의 사려도 적어 병이 있을 때와는 전혀 다릅니다. 정(定)을 닦는 사람이 처음으로 정(定)의 경계에 들어 마음이 공함[空]을 보기 시작하면 반드시 몸이 가뿐하고[輕安] 유쾌한 감각을 느끼는데 그 맑고 상쾌한 맛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이것을 보더라도 심리와 생리가 서로 영향을 주는, 일체양면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체의 신경맥락은 중추신경을 중심으로 좌우로 분포되어 있으며 서로 반대로 교차되어 있습니다. 정좌할 때 두 엄지손가락을 가볍게 대어 둥근 모양이 되게 하는 것도 체내 좌우의 기혈이 서로 교류 작용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인체 내부의 오장육부[臟腑]와 기관은 모두 척추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만약 정좌할 때 척추가 굽어 바르지 못한 상태라면 오장도 자연히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어 질병이 생기기 쉽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척추를 곧게 세워 오장육부의 기맥을 편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갈비뼈가 압박을 받으면 폐가 수축될 수 있으므로 어깨가 평평하고 가슴이 펴지도록 하여 폐활량이 충분히 자유롭게 확장될 수 있게 합니다.
 
우리의 후뇌는 사려하고 기억하는 중추기관이며 목의 양쪽에는 동맥 노선이 있습니다. 동맥의 활동을 통해 피가 뇌에 공급됨으로써 뇌신경의 활동이 증가합니다. 정좌할 때 후뇌를 약간 뒤로 하고 아래턱을 약간 당겨 양쪽 동맥을 가볍게 압박해 기혈의 운행을 완화시켜 주면 사려가 감소되어 쉽게 정(定)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위아래 치근(齒根)의 침샘에서는 진액을 분비해 위장의 소화를 도우므로 혀끝을 입천장의 침샘에 붙여 자연스럽게 침이 흐르도록 합니다.
 
마음과 눈은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게 하는 관건입니다. 사람은 물질색상을 보면 마음이 움직이는데(물론 소리를 들어도 마음이 산란해집니다), 이것은 물질색상이 먼저 눈의 기능을 통해서 발생시키는 영향 때문입니다. 마음이 산란하면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교만하면서도 심사가 산란하면 두 눈을 항시 위로 치뜨게 됩니다. 음침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은 눈을 아래로 깔며 사악하고 음험한 사람의 눈은 항시 좌우 양쪽을 향해 곁눈질을 합니다. 정좌할 때 시선을 거두어 눈을 반쯤 감는 상태를 취하면 산란한 마음을 집중시켜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정좌할 때는 옷을 느슨하게 하여 몸을 편안히 해야 하며 항시 미소를 지어 정신을 유쾌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정좌하여 정(定)을 닦는 데 중요한 요건들입니다.
 
그러므로 좌선의 자세는 기맥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비록 좌선에서는 기맥의 조화를 전문적으로 강조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 이미 기맥의 조화에 관한 문제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만약 기맥을 닦는 데 매달린다면 신견(身見: 자기와 자기의 소유물이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 몸속에 실체로서의 아我가 있다고 하는 잘못된 견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주체가 있다고 하는 생각. 아견我見과 같음-역주)을 발생시키기 쉽고 더욱이 개인의 아집(我執: 아견과 같음, 즉 아트만이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얽매임. 자기의 견해에 얽매여 떠나지 않는 것.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얽매임-역주)을 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아집과 신견은 올바른 깨달음을 얻는 데 큰 장애가 됩니다.
 
정좌의 자세는 아주 중요합니다. 만약 자세를 바르게 않고 멋대로 앉아 등과 허리가 굽어진 상태로 오래하다 보면 반드시 질병이 생깁니다. 선(禪)을 닦고 정좌를 수련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氣)가 막히거나 피를 토하는 등 소위 색신선병(色身禪病)에 시달리는 것도 모두 부정확한 자세에서 기인된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정좌 수련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세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만약 정확한 방법과 자세대로 수련한다면 신체 본래의 작용이 나타나 신체 내의 기기(氣機)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신체의 기능도 활발해져 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몸과 마음의 동과 정[動靜]이 서로 교차 마찰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체 집착하거나 혹은 참된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현상은 어디까지나 현상일 뿐 오래지 않아 과거로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현상에 집착하면 마구니 경계에 빠져들게 되어 바깥의 엉뚱한 것에 쏠려 악착같이 추구하게 됩니다.
 
정(定)을 닦는 방법이 정확하면 몸과 마음에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예컨대 머리가 맑고 또렷하며 눈과 귀가 밝아지고 호흡이 단전에 이르도록 깊어져 온 몸이 유연하면서 통쾌해지고 아무리 거친 음식도 산해진미(山海珍味)처럼 느껴집니다. 병이 있는 사람은 약을 먹지 않아도 치유되고 몸속에는 힘이 넘침을 느낍니다. 정(定)의 수습이 이 단계에 이르면 마땅히 소모를 줄여야 합니다. 음욕을 자제하지 못하면 기맥이 막혀 심신이 병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남회근 선생 저 '불교수행입문강의' 중에서 전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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