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념처 위빠사나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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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1.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
위빠사나 수행은 몸, 느낌, 마음, 법이라는 네 가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알아차림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대상을 알아차리고 그 알아차림을 이어가 대상의 고유한 특성과 조건적 특성과 보편적 특성을 통찰하는 것입니다.
1, 신념처 수행
신념처는 마음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몸을 알아차리면 항상 마음이 현재로 돌아옵니다. 몸은 분명해서 마음을 붙이기가 쉽습니다. 몸을 알아차리면 물질의 고유한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사념처의 시작은 몸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몸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힘을 키우면 이어서 느낌과 마음과 법을 대상으로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신념처는 호흡이 주 대상인데, 이때 자연스런 호흡을 합니다. 수행자는 숨을 들이쉴 때 그 과정을 알아차리고, 내쉴 때도 그 과정을 알아차립니다. 호흡이 길 때는 길다고 알아차리고 짧을 때는 짧다고 알아차립니다. 점차 집중력이 생기면 호흡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알아차리며, 나중에는 단지 호흡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때 호흡이라는 현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만 있도록 마음을 집중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념처는 호흡 이외에 행주좌와의 모든 동작도 알아차립니다. 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면서 마음이 집중되면, 몸을 움직이는 의도가 있어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실재하는 것은 물질적 현상과 그것을 아는 마음만 있지, 여기에 어떤 개인이나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신념처는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이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몸에서 명칭이나 관념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실재인 지수화풍 사대 요소를 대상으로 해야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2. 수념처 수행
수념처는 마음이 느낌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산다는 것은 매순간 느낌을 느낀다는 것이기 때문에 느낌도 호흡처럼 항상 있는 대상입니다. 느낌을 언제든지 알아차릴 수 있는 대상이며,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느낌에서 법의 성품을 보기가 좋습니다.
느낌은 맨 느낌, 육체적 느낌, 정신적 느낌이 있습니다. 맨 느낌은 인식하기 어려우며, 육체적 느낌은 감관을 통해서 들어온 대상을 좋거나 싫거나 덤덤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느낌은 다시 정신적 느낌으로 발전하여 즐거움이나 슬픔이 일어납니다. 이런 느낌들에서 갈애가 일어납니다. 갈애는 좋은 느낌은 탐욕으로, 싫은 느낌은 성냄으로, 덤덤한 느낌은 무지로 연결됩니다. 바로 매순간 경험하는 느낌에서 탐진치가 일어나 업을 생성하며 괴로움을 만듭니다.
느낌의 특성은 찰나 생멸한다는 것입니다. 느낌은 내가 느끼는 것이 아니고 감관과 대상이라는 조건을 통해 한 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느낌을 알아차리면 생멸의 법을 보지만,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느낌의 노예가 됩니다.
3. 심념처 수행
심념처는 마음이 마음을 알아차릴 대상으로 하는 수행입니다. 화가 나면 화난 것을 알아차리고 화난 마음을 다시 알아차립니다. 무엇인가를 바랄 때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바라는 마음을 다시 알아차립니다. 이렇게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심념처입니다.
대념처경에는 심념처의 대상으로 16가지 마음이 나오며, 모곡 방식은 심념처의 대상으로 13가지 마음이 나옵니다. 하지만 수행자는 주로 탐진치의 마음과 관용, 자애, 지혜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수행자는 처음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안정되면 현재 호흡을 알아차리는 그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호흡을 알아차리는 신념처에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심념처로 알아차릴 대상이 바뀐 것입니다.
좌선을 시작해서 처음 10분에서 15분 정도 호흡을 알아차려 마음이 집중되면 소리를 듣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때 그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면 그 소리는 사라지고, 다시 몸에서 일어난 새로운 느낌을 아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때 느낌을 아는 그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러면 느낌과 그 느낌을 아는 마음도 사라집니다. 이처럼 대상을 아는 마음은 대상과 함께 생멸하며 흘러가는데 알아차림은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수행자에게 상당한 집중력이 생기면 앞의 마음을 뒤의 마음이 항상 알아차리게 됩니다. 수행자는 앞의 마음과 뒤의 마음이 끊어지지 않고 알아차림으로 연결되도록, 현재의 마음에 집중하여 알아차림을 해야 합니다. 소리를 듣는 이식을 알아차리면, 그 이식은 사라지고 그것을 알아차린 마음이 일어나는데, 이것은 소리와 소리를 아는 마음이 사라진 것을 아는 새로운 마음입니다. 오관의 대상과 부딪친 마음이 앞의 마음이고, 그 마음을 알아차려서 대상이 사라진 것을 아는 마음이 뒤의 마음입니다. 이것은 수행으로 마음의 생멸을 아는 통찰입니다.
볼펜을 볼 때 먼저 볼펜인지 아는 것은 안식眼識입니다. 그다음 이 볼펜이 무슨 색 볼펜인지 아는 마음은 뒤의 마음으로 의식意識입니다. 이때 볼펜을 본 안식이 사라지고 무슨 색깔인지 아는 의식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리면, 앞의 마음의 소멸을 보고 뒤의 마음의 일어남을 본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의 생멸을 볼 수 있지만, 이렇게 앞의 마음과 뒤의 마음을 다 알아차리게 되려면 비물질인 마음을 대상으로 집중할 수 있는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여섯 감관은 매 찰나마다 다른 대상과 촉하며 매순간 다른 마음이 일어납니다. 안식⇒의식1⇒이식⇒의식2⇒촉식⇒의식3 ... 등으로 너무 빠르게 진행됩니다. 마음의 이런 찰나생멸을 보지 못하면 모두 내 마음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줄 압니다. 이것은 유신견으로, 관념과 실재를 혼동하는 것이며, 무지입니다.
4. 법념처 수행
법념처는 마음이 마음의 대상인 법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이식의 대상이 소리이듯이 의식의 대상은 법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마음이 인식한 현상이 모두 법이며,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수행 중에 경험하는 망상, 졸음, 일상에서 경험하는 욕망, 분노, 괴로운 느낌, 즐거운 기억 등이 모두 법입니다. 또한 대상을 알아차려생긴 지혜도 알아차릴 대상인 법입니다.
법념처의 대상은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1) 다섯 가지 장애입니다. 2) 오온입니다. 3) 십이처입니다. 4) 칠각지입니다. 5) 사성제입니다.
이 법은 우리 몸과 마음으로 지금여기에서 경험하는 실재이며, 위빠사나 수행은 이런 법을 단지 대상으로 알아차리고, 그 법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관념이 아닌 실재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실재하는 대상이라도 그것을 관념으로 해석하면 알아차릴 대상에서 벗어나 대상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수행자는 매 순간 알아차릴 대상과 함께 있어야 알아차림을 할 수 있습니다. 만일 대상이 없는 수행을 한다면 그것은 알아차림을 놓치고 대상에 휩쓸려 번뇌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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