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解(구경무아분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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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於燃燈佛所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어연등불소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어연등불소
有法 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不 不也 世尊 如我解佛所說義 佛於燃燈佛所 無有法
유법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부 불야 세존 여아해불소설의 불어연등불소 무유법
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佛言 如是如是須菩提 實無有法 如來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불언 여시여시수보리 실무유법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須菩提 若有法 如來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者 燃燈佛 卽不與我授記 汝於來世
수보리 약유법 여래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자 연등불 즉불여아수기 여어내세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以實無有法 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是故 燃燈佛 與我授記
당득작불 호석가모니 이실무유법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시고 연등불 여아수기
作是言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釋迦牟尼
작시언 여어내세 당득작불 호석가모니
수보리야, 네 생각에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연등불(燃燈佛)에게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있느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이 있느냐?』
『그렇지 않나이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말씀하신 바 뜻을 알기로는,부처님이 연등불에 법이 없기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 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다. 그러하다. 수보리야, 진실로는 지닌 바 법이 없기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 이니라.
『그러하다. 그러하다. 수보리야, 진실로는 지닌 바 법이 없기에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얻은 것 이니라.
수보리야, 만일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면,
연등불이 곧 나에게 수기(授記)하시기를「네가 앞으로 오는 세상에 마땅히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하지 않았을 것이니라,
실제로 법을 가진 바 없으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연등불이 내게 수기하시기를 「네가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연등불이 내게 수기하시기를 「네가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하리라.」하셨느니라.』
② 수기(授記) : 원어 비야카라나(Vyakarana)의 한역. 수기(授記, 受記), 수결(受決), 수별(受別)이라고도 번역한다. 부처님이 어떤 사람에게 "장래에 깨달은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미리 예언하는 것. 세존은 연등불에게서 '석가모니불'이 되리라는 수기를 받으셨다.
③ 석가모니(釋迦牟尼) : 원어는 사카무니(Sakyamuni). 우리나라에서는 석가모니 혹은 서가모니 등으로 부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석가모니라고 하고 있다. 존경의 뜻으로 세존(世尊) 또는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사카(S kya)는 종족이름이고 무니(Muni)는 성자라는 뜻이다.
석가모니는 중인도 가비라(迦毘羅; Kapila)성주인 정반왕(淨飯王; Suddhodana)의 태자로 B.C.623년 4월 8일에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마야부인을 어머니로 탄생하였다. 탄생 즉시 사방으로 7보를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난지 7일만에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잃고 이모인 파사파제를 양모로 하여 성장했다. 어릴 때의 이름은 교답마 혹은 실달타라 했으며, 점차 자라면서 학문과 무예에 능하고 탁월하여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선강왕의 딸 야수다라(Ya odhara)와 결혼하여 아들 라후라(R hula)를 낳았다.
석가모니는 항상 생로병사를 두고 고민의 나날을 보내다가 29세 때 드디어 출가할 뜻을 내어 성을 탈출하여 동방의 람마성(藍摩城)밖 숲속에서 속세의 옷을 벗어버리고 출가했다.
그 다음 남방으로 비야리, 마갈타를 지나 다니면서 발가바(跋伽婆), 아람가람(阿藍伽藍), 울다라(鬱陀羅) 등의 선인(仙人)을 만나 6년동안 고행을 한 끝에 금욕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불타가야(佛陀伽耶;Buddhagaya)의 보리수 밑에 단정히 앉아 사유하여 마침내 크게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그 때 그의 나이가 35세였다. 이로부터 스스로 깨달은 교법을 널리 퍼뜨리고자 먼저 녹야원(鹿野苑)에 가서 아야교진여(阿若교陳如) 등 다섯사람을 교화하고, 그 다음에 가섭, 사리불, 목건련 등을 제도하여 교단을 조직하고, 깨달은 뒤 3년만에 가비라성 벌솔도에 돌아가서 부왕을 뵙고 친족들을 제도했다.
한편 여러나라로 다니면서 빔비사라, 아사세, 바사닉 등 여러 왕들을 교화하여 불교에 귀의하게 하였다. 그 뒤 오늘날 불교의 교조가 되어 중생제도에 일생을 바치고 북방의 구시나라가城 밖 발데하(跋提河) 언덕 사라쌍수 아래 누워 최후의 교계(敎戒)를 하고 난 후 기원전 544년 2월 15일에 80세로 열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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