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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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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1,910회 작성일 12-10-07 15:48

본문

1장. 연기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서문을 공부하면서 연기는 사성제의 다른 측면이고,
연기는 무명 중 사견을 제거하는 무기이며,
연기법의 이해가 괴로움의 소멸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즉 연기법을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사견을 제거하는 것이며,
몸과 마음을 나라고 알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기법은 우리에게 매우 난해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연기법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반복하여 살펴보고,
실제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 점차 연기를 이해하게 되고
생활 속에서 어떤 상황과 부딪칠 때 연기를 바탕에 깔고 대상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연기적 측면에서 현재를 보는 것이 원인과 결과를 아는 정견입니다.
 
오늘은 교재의 본문 41쪽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연기는 빨리어로 빠띠짜사무빠다 Paṭiccasamupāda 라고 한다.
Paṭicca는 ~을 원인으로, ~로 인하여 이며,
sam은 잘(well), 분명하게, 바르게이며,
upāda는 발생이란 뜻이다.
 
즉, 원인(A)에 의존하여 결과(B)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연기는 원인에 의존하여 결과가 일어난다는,
의존적 발생의 법칙 Law of Dependent Origination, 연기의 법칙. 윤회의 법칙이다.
 
윤회는 원인과 결과에 의한 순환, 유전(流轉), 생사(生死), 상속, 흐름, 지속이다.
이전의 원인은 현재의 결과를 만들고, 현재의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되어 미래의 결과를 만드는 것,
이런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이어지는 것이 윤회다.
윤회는 한 순간의 윤회가 있고 한 일생의 윤회가 있다.
 
12연기는 무명에서 시작하여 생 노사까지 연결되는 12개의 연결고리가 있는데,
이들은 유정물들의 물질과 정신이 어떻게 원인과 결과로 흐르는지 그 흐름을 보여준다.
 
무명->행 ==> 식->명색->육입->촉->수 ==> 갈애->집착->업의 생성 ==> 생->노사
 
1. 무명을 원인으로 행(行, 업의 형성)이 일어난다.
여기서 무명은 여덟 가지를 모르는 것이다.
괴로움을 모르고, 그 원인을 모르고, 괴로움의 소멸을 모르고, 그 길을 모르는 것이다.
즉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다.
 
 다음은 과거를 모르고, 미래를 모르며, 과거와 미래를 다 모르며, 연기의 바른 성품을 모르는 것이다.
즉 원인과 결과를 모르고, 원인과 결과로 인한 과보를 모르는 것이다.
 
2. 행을 원인으로 식(識,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
행은 과거에 의도를 가지고 행한 신구의 3업을 말한다.
이미 형성된 업으로 바꿀 수 없는 업이다.
과거에 만들어놓은 업을 원인으로 현재 식(識)이 일어나는데,
이 식은 재생연결식(再生連結識)이거나 현재의 오온을 리드하는 선행(先行)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식(識)은 현재 일어난 마음으로, 이전 마음이 사라지고 지금의 조건에 의한 마음이다.
이전 마음과 현재의 마음은 서로 질이 다른 마음이며,
이중 어느 것도 내 마음이라고 할 수 없는, 그 순간의 마음이다.
 
3. 식을 원인으로 명색(名色, 물질과 정신)이 일어난다.
오온을 이끄는 것은 마음이다. 식(識)을 원인으로 명색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명(名)은 마음작용인 수(受) 상(想) 행(行)이며, 색(色)은 물질이다.
마음[識]은 마음의 작용을 의지하여 그 순간의 물질과 정신의 질을 결정한다.
그래서 색수상행식의 다섯 무더기가 일어난다.
 
4. 명색을 원인으로 육입(六入)이 일어난다.
6입은 여섯 가지 감각 장소다. 감각이 일어나는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의근 이다.
감각기관은 몸과 마음을 가진 생명체가 기본으로 가지고 있는 물질적 요소이다.
 
5. 육입을 원인으로 촉(觸, 접촉)이 일어난다.
산다는 것은 여섯 감각기관이 여섯 감각대상과 접촉하는 일이 끊임없이 진행되는 것이다.
 
6. 촉을 원인으로 수(受, 느낌)가 일어난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과 부딪히고 그것이 무엇이라고 아는 것은 느낌을 통해서이다.
사는 동안 느낌이 없는 순간이 없다. 항상 느낌과 함께 살며 느낌에 따라 울고 웃는다.
느낌은 어떤 말이나 행위를 하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7. 느낌을 원인으로 갈애(渴愛, 愛)가 일어난다.
갈애는 욕망이다. 갈애는 바라는 것,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원하는 것이다.
느낌이 좋은 대상은 소유하고 싶고, 느낌이 싫은 대상은 버리고 싶은 것이 갈애다.
 
8. 갈애를 원인으로 집착(執着, 取)이 일어난다.
우리는 매순간 무언가 행위를 하는데 그것의 바탕에는 그것을 해야 한다는 집착이 있다.
산다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일, 해야한다고 생각한 일에 매달리는 것이다.
 
9. 집착을 원인으로 업의 생성(業有)이 일어난다.
중생은 집착으로 인해 지금 여기에서 선하거나 불선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한다.
그래서 업의 생성은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 행위이다.
그러나 이 행위도 일어났다 사라지며, 지금 생성한 업의 힘은 잠재의식에 에너지로 저장된다.
이렇게 축적된 에너지가 다음 마음, 즉 오온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래서 윤회는 내가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축적된 성향의 힘으로 윤회를 한다.
 
10. 업의 생성을 원인으로 생(生, 태어남)이 일어난다.
生은 자신의 축적된 성향으로  생긴 새로운 태어남이다.
이 순간이 지나가고 새로운 순간이 오는 것이 生이다.
이생의 삶이 끝나고 다음 생의 삶이 새로 시작하는 것도 生이다.
그래서 태어남[生]에는 매순간의 재생이 있고, 새로운 한 생을 시작하는 재생이 있다.
모두 이전에 행한 업의 결과물이다.
 
11. 생을 원인으로 노사(老死)가 일어난다.
생은 노사를 향해 가는 과정이다.
생과 노사 사이에는 항상 우비고뇌(憂悲苦惱)가 따른다.
우비고뇌는 태어남에 항상 따라다니는 육체적인 병과 정신적인 병(病)이다.
그래서 생명체는 생노병사의 흐름을 거역할 수가 없다.
 
이런 12연기는 소위 ‘나’라고 부르는 한 중생의 물질과 정신의 인과적 흐름을 나타낸다.
12연기는 열두 가지 물질과 정신의 요소가 어떻게 일어나고 사라지며, 또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끝없는 열두 요소의 반복은 슬픔과 괴로움의 흐름을 의미한다.
 
수행자는 12연기의 열두 요소를 외워서 연기법을 관념적으로라도 이해를 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하게 12요소를 외우는 것만으로는 사악도에 떨어지는 위험을 막지 못한다.
 
우선 관념적 이해인 업자성정견(業自性正見)을 받아들여
모든 것은 자기가 행한 원인에 의한 결과라는 사실을 인식하여,
매순간 깨어서 선업을 행하려는 의지를 내고 선업을 행해야 한다.
이런 선업의 과보로 수행을 하면 좀 더 깊은 연기가 이해되어 ‘나’라는 유신견을 제거하게 된다.
이때 비로소 중생이 사악도에 떨어지는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기는 이론이 아니고, 우리가 살면서 매 순간 경험하는 실재, reality이다. 
그 자체로 법(法, dhamma), 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의 순환 질서이다.
하나의 현상이 사라지고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는 과정의 끝없는 연속이다. 
다섯 무더기가 원인과 결과라는 질서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순환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다.
이것이 연기이며 연생이며, 오온의 재연결이다.
 
이런 재연결의 흐름은 어떤 신이나 창조주가 마음대로 멈추게 하거나 만들도록 조작할 수 없다.
오직 원인과 결과가 적용되는 불변의 법칙일 뿐이다.  
그러나 불교의 해탈 열반은 이런 재연결의 흐름을 멈추는 것, 재연결의 고리를 부수는 것이다.
세간법인 원인과 결과의 흐름을 벗어나는 것, 괴로움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것, 
세간법을 뛰어넘는 출세간의 법을 얻는 것이다.
 
결국 12연기는 '나'는 조건에 의한 물질과 정신의 일어남과 사라짐이라는 흐름만 있지,
이 흐름 속에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여길만한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붓다는 오직 무아를 설하기 위해 관념적 나를 다섯 무더기로 해체하여 설했고
그것이 조건에 의해 생멸하는 원리를 연기로 설하였다.
 
우리에게는 오직 정신과 물질, 6내처, 6외처, 인지작용의 일어남 사라짐만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행을 통해서 앞으로 이런 사실을 체험으로 이해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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