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처전심 허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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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처전심’과 그 허실
가섭존자가 부처님 정통제자 계승
선종 정통성 주장하는 근거로 활용
‘삼처전심(三處傳心)‘이란 말이 있다.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당신의 마음을 가섭존자에게 전했다는 내용이다. 부처님의 마음은 마하가섭존자에게 전하고, 부처님의 말씀인 법은 아난존자에게 전했다는 것은 여기서 기인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선종이 중국불교의 주류 종파가 되면서 더욱 일반화됐다. 때문에 부처님의 마음을 계승하고 있는 종단은 선종이며, 선종이 교종보다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흔히 삼처전심이 거론된다. 언어로 표현되는 말이란 마음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이지만 그 도구는 원초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언어라는 도구로는 마음을 100%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삼처전심이란 우선 〈중본기경〉에 나오는 ‘다자탑전분반좌’를 말한다. 이 경의 ‘대가섭시래품’에 의하면 부처님이 다자탑 앞에서 설법하고 있을 때 가섭존자가 그곳에 나타나자, 부처님은 당신이 앉으셨던 자리를 반쯤 비켜 앉고 그 자리에 가섭존자를 앉게 했다. 〈법화경〉‘견보탑품’에도 이불병좌(二佛幷坐)라는, 나란히 앉는 부처님이 나오는데, 이것은 법의 정통성을 전해주는 것이라 해석된다. 계족산에서 가섭존자가 선정삼매에 잠겨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으며, 미륵이 오면 부처님이 부탁한 금란가사를 전하고 열반에 들어갈 것이란 이야기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두 번째는 〈대범천왕문불경의경〉에 나오는 ‘염화시중의 미소’다. 즉 대범천왕이 영취산에 모인 대중을 위해 법을 청하자 부처님은 말없이 당신이 제자들에게 받은 꽃을 들어보였으며, 마하가섭존자만이 꽃을 들어 보인 이유를 알고 빙그레 웃게 된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내게 있는 정법안장인 열반묘심과 실상무상의 법문은 문자를 세우지 않고, 교학 밖에 따로 전하는 것이니 마하가섭에게 부촉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경은 후대 중국에서 위찬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전체적 내용에서는 밀교 영향도 보인다.
세 번째는 ‘곽시쌍부’다. 이것은 부처님의 열반을 지켜보지 못한 가섭존자가 늦게 돌아와 안타까워하자 관 속에서 부처님의 두 발이 밖으로 나와 가섭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한다. 〈대반열반경〉 ‘기감다비품’에 나오는 내용은 불성사상의 영향이 보이고 있고, 부처님이 신격화된 이후의 내용이다. 상징이 풍부하고 신화적이기에 교단사와 결부시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잡아함〉 ‘유행경’에 의하면 가섭존자가 쿠시나가라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부처님의 유해가 입관된 뒤였다. 가섭존자는 아난존자에게 유체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아난존자는 “아직 다비를 하지는 않았지만 여법하게 입관을 마쳤기 때문에 볼 수 없다”고 답했다. 세 번에 걸쳐 간청했지만 법구를 볼 수 없었다. 이에 가섭존자가 관을 올려놓은 향나무로 된 장작더미 쪽으로 가자 관속에서 부처님의 두 발이 나왔다. 부처님의 다리에 이상한 색깔이 남아 있었다. 아난존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어떤 노파가 슬피 울며 앞 손으로 부처님의 다리를 어루만지다, 발 위에 눈물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아난존자가 답했다.
부처님 법구가 염습을 끝내고 입관된 뒤에 당도했기에, 가섭존자는 유해를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관 속에서 두 발이 나왔다는 신비한 현상을 통해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정통 제자임이 확인한다. 반면 아난존자에게는 괘씸죄가 하나 추가된다. 개인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해석하면 “아난존자의 순수성을 의심하기 보다는, 가섭존자가 약간 비종교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한다. 믿음이 종교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차차석/ 동국대 강사
‘삼처전심(三處傳心)‘이란 말이 있다. 부처님께서 세 곳에서 당신의 마음을 가섭존자에게 전했다는 내용이다. 부처님의 마음은 마하가섭존자에게 전하고, 부처님의 말씀인 법은 아난존자에게 전했다는 것은 여기서 기인한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선종이 중국불교의 주류 종파가 되면서 더욱 일반화됐다. 때문에 부처님의 마음을 계승하고 있는 종단은 선종이며, 선종이 교종보다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묵시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흔히 삼처전심이 거론된다. 언어로 표현되는 말이란 마음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이지만 그 도구는 원초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언어라는 도구로는 마음을 100%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삼처전심이란 우선 〈중본기경〉에 나오는 ‘다자탑전분반좌’를 말한다. 이 경의 ‘대가섭시래품’에 의하면 부처님이 다자탑 앞에서 설법하고 있을 때 가섭존자가 그곳에 나타나자, 부처님은 당신이 앉으셨던 자리를 반쯤 비켜 앉고 그 자리에 가섭존자를 앉게 했다. 〈법화경〉‘견보탑품’에도 이불병좌(二佛幷坐)라는, 나란히 앉는 부처님이 나오는데, 이것은 법의 정통성을 전해주는 것이라 해석된다. 계족산에서 가섭존자가 선정삼매에 잠겨 미륵불을 기다리고 있으며, 미륵이 오면 부처님이 부탁한 금란가사를 전하고 열반에 들어갈 것이란 이야기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두 번째는 〈대범천왕문불경의경〉에 나오는 ‘염화시중의 미소’다. 즉 대범천왕이 영취산에 모인 대중을 위해 법을 청하자 부처님은 말없이 당신이 제자들에게 받은 꽃을 들어보였으며, 마하가섭존자만이 꽃을 들어 보인 이유를 알고 빙그레 웃게 된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내게 있는 정법안장인 열반묘심과 실상무상의 법문은 문자를 세우지 않고, 교학 밖에 따로 전하는 것이니 마하가섭에게 부촉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경은 후대 중국에서 위찬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전체적 내용에서는 밀교 영향도 보인다.
세 번째는 ‘곽시쌍부’다. 이것은 부처님의 열반을 지켜보지 못한 가섭존자가 늦게 돌아와 안타까워하자 관 속에서 부처님의 두 발이 밖으로 나와 가섭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는 것을 말한다. 〈대반열반경〉 ‘기감다비품’에 나오는 내용은 불성사상의 영향이 보이고 있고, 부처님이 신격화된 이후의 내용이다. 상징이 풍부하고 신화적이기에 교단사와 결부시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잡아함〉 ‘유행경’에 의하면 가섭존자가 쿠시나가라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부처님의 유해가 입관된 뒤였다. 가섭존자는 아난존자에게 유체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했다. 아난존자는 “아직 다비를 하지는 않았지만 여법하게 입관을 마쳤기 때문에 볼 수 없다”고 답했다. 세 번에 걸쳐 간청했지만 법구를 볼 수 없었다. 이에 가섭존자가 관을 올려놓은 향나무로 된 장작더미 쪽으로 가자 관속에서 부처님의 두 발이 나왔다. 부처님의 다리에 이상한 색깔이 남아 있었다. 아난존자에게 이유를 물었다. “어떤 노파가 슬피 울며 앞 손으로 부처님의 다리를 어루만지다, 발 위에 눈물을 떨어뜨렸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아난존자가 답했다.
부처님 법구가 염습을 끝내고 입관된 뒤에 당도했기에, 가섭존자는 유해를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관 속에서 두 발이 나왔다는 신비한 현상을 통해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정통 제자임이 확인한다. 반면 아난존자에게는 괘씸죄가 하나 추가된다. 개인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해석하면 “아난존자의 순수성을 의심하기 보다는, 가섭존자가 약간 비종교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을까”하고 생각한다. 믿음이 종교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때로는 그것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차차석/ 동국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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