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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淨法身 비로자나불 華嚴敎의 本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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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칠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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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2,940회 작성일 15-02-1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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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불사상은 중생이 부처님 된다는 ‘믿음’ 근거

‘과거’는 단지 ‘지나간 것’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와의 대화 속에 끊임없이 ‘미래’에 되살아난다. 과거에 쌓은 다양한 활동들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현재의 활동들은 미래에 효과가 파급된다. 이런 점에서 사람은 현재에만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과거.미래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과거에 행한 행동(身).말(口).마음작용(意)의 결과를 현재에 받고, 지금 하는 세 가지 활동의 결과는 미래의 자신에게 닥쳐오기 때문이다.

‘인과응보’를 강조하는 불교도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중시한다. 항상 ‘현재’를 강조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과거와 미래를 무시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현재를 보고, 현재를 보면 그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있다”는 경전구절이 알려주듯, 불.보살은 불.보살이 될 과업(果業)을 지었고, 아귀.축생은 아귀.축생이 될 과업을 과거에 지었다고 불교는 가르친다. 현재 속에서만 모든 일이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경전들은 많은 예를 통해 보여준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전생에 무수한 덕행을 쌓아 현재 부처님이 됐다고 가르치는 것이 대표적 예다.

과거의 고행.수행으로 현재의 석가모니 부처님이 됐다면,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수행을 통해 부처님이 된 존재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과거칠불 사상은 이를 바탕으로 성립된다. 남방 빨리 불전인 〈불종성경〉에 의하면, 과거칠불을 포함해 모두 28분의 부처님이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출현했다. 최초의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약 4아승지겁 전에 태어난 ‘탄항카라’(作愛)였다. 그리고 같은 겁에 메당카라(作慧), 사라낭카라(作歸依), 연이어 디팡카라(燃燈) 부처님이 출세했다. 특히 디팡카라 부처님은 유명한데, 〈수행본기경〉에는 91겁 전 부처님으로 묘사돼 있다.

연등불과 더불어 과거불을 대표하는 부처님이 바로 과거칠불이다. 과거 장엄겁(莊嚴劫)에 나타난 비바시불.시기불.비사부불의 세 부처님, 현재 현겁(賢劫) - 부처님이 출현한 시대. ‘경사스런 겁’이란 의미 - 에 출현한 구류손불.구나함모니불.가섭불.석가모니불 등의 일곱 부처님이 그들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깨달음을 얻어 중생들을 제도한 부처님은 석가모니 한 분이지만, 교리적으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과거 무수한 시간에 걸친 수행의 산물로 현재불인 석가모니가 태어났다면, 과거 보다 ‘더 과거’에 수행해 과거시기 부처님으로 태어난 분도 있을 수 있기 때문. 과거불이 있으면, 현재 수행해 미래에 부처님이 될 분(미래불)이 없으란 법이 없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을 갖고 있기에, 부단히 수행하면 언젠가는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시간적 개념 속에 탄생된 과거칠불에 관한 이야기는 여러 경전에 보인다. 산스크리트어로 ‘비파쓰인’(빨리어로 비파씬)으로 불리는 비바시불(毘婆尸佛)은 〈디가 니까야〉 제2권 제1경 ‘마하파다나숫타’(한역은 장아함 제1 대본경)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91겁 전에 출현했으며, 수명은 팔만 세였다. 찰제리(크샤트리아) 종인 반두마라를 아버지로, 반두마티를 어머니로 태어난 비바시불은 파탈리나무 뿌리 위에서 대각을 성취했다. 첫 번째 설법에 680만 명을, 2회 설법에 10만 명을, 3회 설법에 8만 명을 각각 성도시켰다.

과거칠불 가운데 제2의 부처님인 시기불은 지금으로부터 31겁 전에 출현했다. ‘콘단냐’라는 성을 가진 왕족 출신으로, 아버지는 마루나, 어머니는 파트하바티이다. 푼다리카 나무 아래서 정각을 이뤄 중생들을 교화했다. 첫 번째 설법에서 10만 명을, 두 번째 법회에서 8만 명을, 세 번째 모임에서 7만 명의 사람들을 각각 성도시켰다.

세 번째 과거칠불은 비사부불로, 장업겁 천불 가운데 최후에 출현한 부처님이다. 비사부불의 정확한 명칭은 비습바부(毘濕婆部)로 비습바는 변일체(遍一切), 부는 자재(自在)라는 뜻. 따라서 모든 곳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는 의미다. 지금으로부터 31겁 전에 출현한 비사부불의 아버지 이름은 수파티타, 어머니 이름은 야싸바티며 모두 찰제리 출신이다. 사라수 아래서 깨달음을 성취한 비사부불은 1회 설법에서 8만 명, 2회 법회에서 7만 명을, 3회 법회에서 6만 명을 각각 제도했다.


과거칠불 가운데 네 번째인 구류손불은 현겁 천불의 제1불이다. 제자들의 모임(법회)이 한 번 있었는데, 4만 명을 제도했다. 구류손불에 관해서는 중국 동진(東晋)의 고승 법현스님(399~412 인도 순례)이 남긴 〈불국기〉 ‘중인도 사위성조’에 관련 기록이 있다. “사위성의 동남으로 12유연(由延. 제왕이 하루 동안 행군하는 거리를 1유연이라 한다)을 가면 나비가(那毗伽)로 불리는 한 읍에 이른다. 이곳은 구류손불이 출생한 곳, (구류손불) 부자가 상견한 곳, (구류손불이) 반니원(般泥洹. 열반)한 곳으로 역시 승가람이 있다.” 구류손불 유적지는 지금도 남아있다. 네팔 룸비니 서남쪽 6km 지점의 코티하와가 그곳으로, 아쇼카 석주가 당당하게 지키고 있다. 석주는 비록 부러졌지만 구류손불 탄생지임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디가니까야〉 제2권 제1경 ‘마하파다나숫타’에 따르면 과거칠불 가운데 다섯 번째인 구나함모니불은 한 번의 제자들 모임이 있었다. 3만 명의 제자들이 모였는데, 제자들은 모두 역류하는 번뇌가 다한 자들이었다. 아버지는 얀나닷타라, 어머니는 웃타라가였으며 모두 사제계급 출신이었다. 구나함모니불 관련 유적도 현존한다. 네팔 틸라우라코트 근방에 있는 니갈리사가르 석주가 그것이다. 아쇼카 왕이 세운 석주로 “천애희견왕(아쇼카)은 관정 제14년을 지나 구나함모니불의 탑을 두 배로 늘렸다. 그리고 관정 제20년에 스스로 이곳에 와 친히 참배했다”는 내용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불국기〉 ‘중인도 사위성조’에는 “구류손불 유적지에서 1유연을 못가면 한 읍에 이르는데 이곳은 구나함모니불이 출생한 곳, 부자가 상견한 곳, 반니원(열반)한 곳으로 역시 탑이 세워져 있다”고 기록돼 있다. 당나라 현장스님(629~645년 인도 순례)의 〈대당서역기〉 제6권에도 기록이 전하지만, 지금 현지에 가보면 탑은 보이지 않는다. 아쇼카 석주는 현존하는데,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연못 둑에 버려진 채 방치돼 있었다. 그러다 3년 전 쯤 네팔 정부가 보호각을 세웠다.

여섯 번째인 가섭불은 음광불(飮光佛)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바로 전 부처님으로 현재 현겁에 출현하는 일천불 중 3번째 부처님이기도 하다. 〈사분율비구계본〉에는 가섭불이 늘 강조한 게송이 있다. “일체 악을 짓지 말고, 마땅히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의지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一切惡莫作 當奉行諸善 自淨其志意 是則諸佛敎)”는 칠불통게(七佛通偈)가 그것. 이 게송은 당나라 도림선사와 백거이 사이의 문답에도 등장하는데, 평범하면서도 불교의 핵심을 잘 드러낸 게송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일곱 번째 부처님이 현재불이기도 한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등장한 칠불은 불교미술의 소재로도 활용됐다. 과거칠불을 조각한 대표적 작품은 인도 엘로라 석굴 제12굴에 있다. 6~7세기경 조성된 엘로라 제12굴은 가장 발전된 형태의 석굴이다. 석굴 3층에 기둥들이 정연하게 세워져 있는 홀과 전실(중앙 벽의 깊숙한 곳), 그리고 불당(佛堂)이 있다. 전실과 거기서 홀로 나오는 부분의 좌우벽에 선정인(禪定印)을 한 과거칠불이 아름답게 조각돼 있다.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한 곳으로 알려진, 영취산 산봉우리에 있는 향실(香室) 발굴 과정에서 과거칠불이 출토되기도 했다. 물론 중국에서도 조상됐다. 운강석굴 제10굴 주실 남쪽 벽 위(선정인을 한 좌상), 제11굴 서쪽 벽 밑부분(시무외인을 한 입상)에 각각 새겨진 과거칠불은 유명하다.

과거칠불을 통해 우리는 일불에서 다불로 발전한 교리상의 진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깨달음이 항상 존재하는 보편적 법의 발견이라면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그 법을 발견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미래에도 그런 법을 발견할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 잘못될 것도 없다. 다시 말해 과거칠불은 ‘일불(一佛)’에서 ‘다불(多佛)’로 나아가는, 불교교리상의 발전을 잘 보여주는 사상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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