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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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탄생지 룸비니 : 룸비니는 네팔(現)에 있으며 특이하게도 힌두스텐 대평원이 끝나면서 계단처럼 층을 이루며 솟아오른 히말라야 산맥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천상(天上)과 천하(天下)가 함께 실감나는 곳이기도 하다. 후에 인도 마우리 왕조의 3대 아소카왕은 불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많은 불탑(佛塔)을 세웠는데 룸비니에도 그가 세운 석주(石柱)가 남아 있어 석주에 적힌 글귀로 그 곳에 분명히 석가세존의 탄생지임을 알 수 있다.
그 글귀의 내용은 하늘에 있는 모든 신이 떠받드는 나, 왕(王)중의 왕 나 아소카는 주기 X년에 이곳을 참배하노라, 이곳은 부처님이 탄생한 곳이라 여기 사는 사람들의 세금(稅金)을 면제해 주고, 추수기에는 타 지역의 7분의 1만 받겠노라. 또한 아소카왕은 룸비니에 마야데뷔사(寺)를 건립하고 석존의 강탄(降誕) 모습을 담은 돌을 안치했다.
나. 성도지 붓다가야 : 붓다가야는 카필라성과 룸비니에서 정남동(正南東)으로 약 2천리 떨어진 인도 비하르주에 있다. 비하르 주는 옛날 인도에서 가장 강성했던 마가다 왕국의 터전으로, 그 주에서 두 번째로 큰 가야라는 도시에서 약 40리 서남쪽에 있다. 싯다르타 태자는 출가하자 설산(雪山)과 왕사성(王舍城)을 거쳐 바로 가야에 오셨는데, 그 당시 가야에 가까운 니란자나강(Niranjana River)가의 숲과 모래밭과 산이 바로 바라문교의 수행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온갖 고행을 거친 싯다르타는 큰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성도(成道)하셨고, 그래서 그 마을 이름을 따로 붓다가야라 불렀으며 그곳에는 아소카왕이 지은 대탑사가 2천년의 모든 풍상을 겪은 채 지금도 서 있다.
다. 초전 법륜지 녹야원(鹿野苑) : 진리를 깨달아 지혜의 눈을 뜬 싯다르타 태자는 부처님이 되셨다. 이제 당신의 일차적인 출가 목적인 자기 자신의 구제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많은 사람이 겪는 고통이 곧 자기 것인 양 느껴졌다.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생각은 그 때문이었으며 맨 먼저 누구에게 설법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니란자나 강가에서 고행하였을 때, 함께 수행하던 이들이 있는 녹야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극단적인 고행주의와 쾌락주의를 버리고 중도(中道)의 길을 택할 것을 권한다. 이어 팔정도(八正道)를 설하시자 그들은 석가세존의 제자가 되기를 청하게 된다.
성내는 자에게 되받아 성내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 성내는 자에게 되받아 성내지 않는 자는 2가지 승리를 얻은 것이다. 다른 사람이 성내는 것을 알고 정념(正念)으로 자기를 진정시키는 자는 다른 사람을 이길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이기는 것이다.
라. 열반지 쿠시나가라 :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시던 부처님은 2월 보름, 아난다와 비구들에게 최후의 유계(遺戒)를 주신다.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이계위사 불방일(以戒爲師 不放逸)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내가 간 후에 내가 말한 가르침이 곧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최후(最後)의 순간(瞬間)까지도 방일(放逸)하지 말고 정진(精進)하라고 가르치셨던 석가세존의 입멸(入滅)은 그로부터 오늘까지 찬탄(讚嘆)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또 앞으로 영원히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게 될 것이다.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은 열반(涅槃)에 드시기 전에 사라쌍수 숲으로 들어가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아래로 두고 발을 포갠 자세를 취한 다음 선정에 든 채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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