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般若波羅密經 講解 (무비스님 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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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1,506회 작성일 13-10-27 06:10

본문

. 서론
   
1. <반야심경>의 위치
 
오시교(五時敎), 삼종(三宗), 삼관(三觀).
   
 
② 삼종(三宗)

다음으로 오시교와 연관지워 불교경전을 내용적인 면에서 다시 삼종으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설법은 처음에는 자신이 깨달으신 전체 내용을 화엄사상으로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차원이 너무 높아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통한 법락(法樂)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하셨습니다.
 
그것은 아주 낮은 단계로 끌어내려 차츰 높은 단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추어 세 가지 단계로 설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모든 경전들은 이 세 가지 삼종의 범주 안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모든 현상계를 '있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는 상(相)과 유(有)이 차원입니다. 이것은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됩니다. 존재하는 모든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괴로움도 있고, 괴로움의 원인도 있고, 괴로움의 소멸도 있고,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말하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분명히 있는 괴로움과 그 괴로움에 대한 원인과 해결 방법이 있다는 입장에서 사성제와 팔정도가 설해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십년 간을 주로 모든 현상계가 있다고 하는 유와 상의 상식에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아함경>은 주로 유의 입장에서 설해진 경전에 속합니다. 유의 차원은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세계로, 많은 부분이 방편설(方便說)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모든 것이 있다고 하는 유의 사상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도 잘 통하는 세계입니다. 또 있는 것을 있다고 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차원입니다. 그러나 유의 상식으로 풀어지지 않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단계가 설해진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현상계를 '없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는 공과 무의 차원입니다. 이것은 모든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텅 비어서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여기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공의 사상을 낳게 했습니다. 모든 현상계는 텅 빈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실상을 공한 것으로 보는 지혜의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십일년 간을 주로 공의 입장에서 법을 설하셨습니다. 반야부의 많은 경전들은 모두 여기에 속하며, 앞으로 공부하게 될 <반야심경>은 바로 공이나 부의 입장에서 설해진 대표적인 경전에 속합니다.
 
셋째는, 모든 현상계를 존재하는 그 자체로 '진리'라고 보는 성(性)의 차원입니다. 이것은 진성(眞性).법성(法性).진여(眞如)의 차원입니다. 성의 차원은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대로 진리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가장 차원이 높은 견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팔년 간을 성의 입장에서 현상게를 설하셨습니다.
성의 차원에서 설해진 경전으로는 <화엄경>.<법화경>.<능엄경>.<열반경> 등이 있습니다.
 
성의 차원은 또 '비유비무 역유역무(非有非無 亦有亦無)'라고 표현됩니다. 그것은 곧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있는 것이기도 하고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입니
다.
 
성의 입장은 우리가 흔히 잘 쓰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과도 잘 통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그대로 진리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경전의 모든 말씀, 즉 팔만대장경은 상.공.성의 삼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법문이든지 이 세 가지의 열쇠로 풀리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선사의 법문을 빌려 삼종을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상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가 됩니다.
그러나 공의 입장에서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성의 입장에서는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이다'라고 보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사홍서원에 나오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를 상.공.성의 각기 다른 안목에서 살펴 볼 수도 있습니다.
 
상의 입장에서는 제도해야 할 중생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공의 입장에서는 우주 만물이 본래 공한 것이기 때문에 중생 또한 공한 것으로 보아 공한 중생을 제도한다는 견해입니다.
성의 입장에서는 중생이 곧 부처이므로 부처인 중생을 제도한다는 견해입니다.
 
삼종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있는 그대로가 전부인 양 착가하여 사는 것은 상이나 유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공한 것인줄 알면서 살아가는 것은 공이나 무의 입장입니다. 공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살 것이 있는 것입니다.
 
상의 입장에서는 사는 일 그 자체에만 매달려 살지만 공한 입장에서는 인생의 공한 일면을 들여다보면서 살아가는 지혜의 안목이 있는 것입니다. 가장 차원이 높은 성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인생을 진리 그 자체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라고 크게 뭉뚱그려  보면 위의 상.공.성 세 가지 견해에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현상계를 볼 때 한 가지 견해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바라볼 줄 아는 지혜의 안목이 필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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