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생( 放 生 )의 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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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放生)의 공덕
방생의 공덕
방생은 다른 이가 잡은 산 물고기·날짐승·길짐승 따위의 산 것들을
사서, 산이나 물에 놓아 살려주는 일이다.
또한 방생은 살생과 반대되는 말이다.
살생을 금하는 것은 소극적인 선행(善行)이지만,
방생은 적극적으로 선(善)을 행하는 작선(作善)이다.
그런데 중화민국의 인광대사(印光大師)는 방생을 하면
열 가지 큰 공덕을 받는다고 하였다.
인광대사가 지은 '방생십대공덕'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소개한다.
첫째는 전쟁의 위험이 없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모두 사람들의 마음 속에 죽이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개인이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지키고,
나아가 방생을 하게 되면 생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므로,
자연 전쟁의 기운은 형체도 없이 소멸된다.
그러므로 방생은 이러한 전쟁의 위험을 막는 적극적인 운동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나 교육자, 사업가들이 이것에 주의하여 힘으로나마
방생운동을 제창한다면 반드시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둘째는 기쁘고 길상스러운 일들이 모두 모인다.
우리들이 자비의 마음을 한번만 일으켜도 그 몸에 기쁜 기운이
모이는데, 하물며 죽어 가는 생명을 놓아서 살려주는 방생을 행한다면
기쁘고 성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원리이다.
셋째는 건강하고 오래 산다.
경에 이르되, "불살생의 계율을 지키고 방생한 사람은 두 가지 복덕의
과보를 받는다. 첫째는 장수(長壽)요, 둘째는 복이 많고 병이 없이
오래 산다"고 하였다.
넷째는 자손이 번창한다.
방생이란 하늘과 땅의 체성(體性)과 같아 태어남을 좋아하는 마음이다.
방생은 생명을 살려주는 것이므로 자손이 창성할 것은 당연하며,
자식 가운데에서도 남자를 얻는 경사를 맞게 된다.
다섯째는 모든 부처님께서 기뻐하신다.
일체의 생물을 부처님께서는 모두 자식과 같이 본다.
따라서 죽어 가는 한 생명을 구하면 바로 부처님의 한 아들을 구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한결같이 크게 기뻐하시는 것이다.
여섯째는 은혜에 감응한다.
죽음에 임박한 생물을 구하여 살려주면 모두 크게 환희하여 은혜에
감응하게 되므로 만겁(萬劫)의 좋은 인연이 된다.
일곱째는 모든 재난이 없다.
자비로운 사람은 복덕이 날로 늘어나기 때문에 일체의 우환과 재난이
모두 형체도 없이 소멸된다.
여덟째는 천상에 태어난다.
불살생의 계율을 지키고 방생하는 사람은 내세에 사왕천에 태어나
끝없는 복을 누린다. 만약 이런 사람이 정토행(淨土行)을 겸하여
수행하면 곧바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며,
그 공덕은 실로 다함이 없다.
아홉째는 모든 악이 소멸된다. 현대는 극도로 위험한 시대이다.
잘못된 음주의 버릇과 성(性)의 문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방생하여 은혜에 보답하면 모든 악이 소멸되고 태평하게 된다.
열째는 복덕과 수명이 영원하다.
동물은 하급에서 고등으로, 인류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런 점은 동물과 인간이 서로 같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자들이 말하길,
"무릇 생물은 외계의 상태에 따라 변화한다.
사람들이 불살생계를 지키고 방생하는 것을 세세 생생토록 쉬지 않으면
착한 마음이 서로 상응하여 자자손손(子子孫孫)으로 서로 전하여
복덕과 장수를 누린다.
이상의 열 가지가 방생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덕이다.
인간은 본래 자기의 생명을 귀중히 여긴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는 모두 존엄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살생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전쟁과 싸움은 상대를 죽이려는 살생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계에서는 널리 방생을 권해서 살생하려는
악의 씨를 뿌리뽑고, 방생으로 자비의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적석도인의 칠종방생
적석도인(赤石道人)은 다음의 일곱 가지 경우에는 꼭 방생을 하라고
권하고 있다.
첫째는 자식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방생하라.
세상 사람이 자식을 얻고자 약 먹기에 힘을 쓰나 한 평생을 먹더라도
효험을 보지 못하는 자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병이 있거든 약을 먹고, 자식이 없거든 방생하라.'고 권한다.
천지의 큰 덕은 태어남이다.
진실로 남의 생명을 살려주면 곧 나를 살려주는 것이다.
방생을 하면 원하는 자식을 얻을 수 있다.
둘째는 자식을 잉태하면 반드시 방생하여 산모(産母)를 보전하라.
잉태하여 자식을 보는 것은 사람과 만물이 다르지 않다.
사람과 짐승도 모두 태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새끼 뱀을 내가 구해 주는데,
내가 자식을 잉태하였음을 아시면 하늘이 어찌 보호하지 않겠는가.
셋째는 기도함에 반드시 방생하여 복을 많이 지어라.
태어남을 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은 제신(諸神)과 부처님이 동일하다.
이러한 제신과 부처님의 호생지덕을 생각하여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인 생물들을 살려주어라. 만일 자신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는 염불이라도 해주면 자연히 하늘이 감동하여 복을 얻음이
한량없을 것이다.
넷째는 미리 닦고자 하거든 방생부터 먼저 하라.
세간의 자선(慈善)은 방생 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내가 자비의 마음으로 방생하면 반드시 불보살님의 가피의 덕을 입을
것이다.
다섯째는 재계(齋戒)를 가짐에 반드시 방생하라.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계율 지키는 것을 좋아하심은 만물의 자비심
두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이 부처님의 아들 아님이 없다.
진실로 재계를 가지는 날에 방생하면 제불보살이 환희심을 낸다.
여섯째는 복록(福綠)을 구함에 먼저 방생하여 복을 쌓아라.
부귀명복(富貴冥福)은 요행으로 되지 않는다.
오직 복을 짓는 자 반드시 명복(冥福)을 얻는다.
사람이 어진 마음으로 생물을 어여삐 여겨 그 목숨을 구제해 주면
나의 구제를 입은 자가 기회를 보아 보답할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일곱째는 염불함에 반드시 방생부터 하라.
세상에 살면서 염불하는 사람은 자비심으로써 방생을 주로 하라.
생물을 구제함이 사람을 구제함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이 극형(極刑)을 범하는 것은 대부분 장난 삼아 하지만
동물들은 무슨 죄로 참혹한 환난을 만나야 하는가.
그러므로 누구든지 연지(蓮池) 대사와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방생으로써 급무(急務)를 삼아야 할 것이다.
연지대사의 칠종불살생
앞에서 살펴본 적석도인은 방생을 권하였다.
하지만 연지대사는 방생과 반대되는 살생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연지대사(蓮池大師)의 일곱 가지 불살생에 대한 교훈은 안진호(安震湖)
스님이 편찬한 석문의범(釋門儀範)에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고문체로 씌어졌기 때문에 현대인이 읽기에는 난해하다.
그래서 그 취지만 살리고 현대문으로 개작하였다.
첫째는 생일에 살생하지 말라.
자신이 출생한 날은 어머님께서 거의 죽을 뻔했던 날이다.
이 날에 결코 살생해서는 안된다.
재계(齋戒)를 지니고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
이러한 공덕으로 선망부모를 왕생케 하고,
현재 부모의 복덕과 수명이 증장케 해야 한다.
둘째는 자식을 낳거든 살생하지 말라.
모든 사람이 자식을 잃으면 슬퍼하고,
자식을 얻으면 기뻐한다.
일체의 동물도 자기 새끼를 사랑한다.
내 자식의 출생은 기뻐하면서 남의 자식을 죽게 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자식이 태어나는 날 남에게 적선(積善)하여
복덕(福德)을 짓지 못할지언정 도리어 살생업(殺生業)을
지어서야 되겠는가.
셋째는 제사 지낼 때 살생하지 말라.
망령(亡靈)의 기일(忌日)에 살생을 경계하여 명복을 빌어야 함에도 불구
하고 도리어 살생하여 제사 지내는 것은 악업(惡業)만 증대시킬 뿐이다.
넷째는 혼례에 살생하지 말라.
결혼이란 새로운 가정의 시작이다.
삶의 시초에 살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혼례는 좋은 날의 길사(吉事)인데,
이날 흉한 일을 행하는 것은 참혹한 것이다.
또한 결혼식을 하면 반드시 부부가 해로(偕老)하기를 축원한다.
사람은 해로하기를 원하면서 짐승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인간들의
만행이다.
다섯째는 연회(宴會)를 베풀 때 살생을 말라.
손님을 맞이함에 정결히 마련한 채식과 다과로 정성껏 대접하면 된다.
연회를 핑계로 살아있는 짐승의 목과 배를 갈라 비명소리가 진동하게
해서야 어찌 사람의 마음인들 좋겠는가.
식탁의 맛있는 고기는 도마 위의 살육에서 나온 것이다.
짐승의 원한을 나의 기쁨으로 삼아서야 되겠는가.
여섯째는 기도할 때 살생하지 말라.
사람들은 병이 들었을 때 기도하여 쾌차하기를 바란다.
남의 목숨을 죽여서라도 나의 목숨을 연장하고자 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결코 목숨을 연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살생업만 더하는 꼴이다.
일곱째는 살생하는 직업을 갖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살생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가능한 그러한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
살생하는 것을 직업으로 시작하면서부터 나쁜 과보를 받을 인(因)을
이미 지은 것이다. 어찌 내세의 악과(惡果)를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어찌 생계를 꾸려갈 다른 방도를 찾지 않는가.
방생의 공덕
방생은 다른 이가 잡은 산 물고기·날짐승·길짐승 따위의 산 것들을
사서, 산이나 물에 놓아 살려주는 일이다.
또한 방생은 살생과 반대되는 말이다.
살생을 금하는 것은 소극적인 선행(善行)이지만,
방생은 적극적으로 선(善)을 행하는 작선(作善)이다.
그런데 중화민국의 인광대사(印光大師)는 방생을 하면
열 가지 큰 공덕을 받는다고 하였다.
인광대사가 지은 '방생십대공덕'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소개한다.
첫째는 전쟁의 위험이 없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모두 사람들의 마음 속에 죽이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개인이 불살생(不殺生)의 계율을 지키고,
나아가 방생을 하게 되면 생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므로,
자연 전쟁의 기운은 형체도 없이 소멸된다.
그러므로 방생은 이러한 전쟁의 위험을 막는 적극적인 운동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나 교육자, 사업가들이 이것에 주의하여 힘으로나마
방생운동을 제창한다면 반드시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둘째는 기쁘고 길상스러운 일들이 모두 모인다.
우리들이 자비의 마음을 한번만 일으켜도 그 몸에 기쁜 기운이
모이는데, 하물며 죽어 가는 생명을 놓아서 살려주는 방생을 행한다면
기쁘고 성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은 필연적인 원리이다.
셋째는 건강하고 오래 산다.
경에 이르되, "불살생의 계율을 지키고 방생한 사람은 두 가지 복덕의
과보를 받는다. 첫째는 장수(長壽)요, 둘째는 복이 많고 병이 없이
오래 산다"고 하였다.
넷째는 자손이 번창한다.
방생이란 하늘과 땅의 체성(體性)과 같아 태어남을 좋아하는 마음이다.
방생은 생명을 살려주는 것이므로 자손이 창성할 것은 당연하며,
자식 가운데에서도 남자를 얻는 경사를 맞게 된다.
다섯째는 모든 부처님께서 기뻐하신다.
일체의 생물을 부처님께서는 모두 자식과 같이 본다.
따라서 죽어 가는 한 생명을 구하면 바로 부처님의 한 아들을 구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한결같이 크게 기뻐하시는 것이다.
여섯째는 은혜에 감응한다.
죽음에 임박한 생물을 구하여 살려주면 모두 크게 환희하여 은혜에
감응하게 되므로 만겁(萬劫)의 좋은 인연이 된다.
일곱째는 모든 재난이 없다.
자비로운 사람은 복덕이 날로 늘어나기 때문에 일체의 우환과 재난이
모두 형체도 없이 소멸된다.
여덟째는 천상에 태어난다.
불살생의 계율을 지키고 방생하는 사람은 내세에 사왕천에 태어나
끝없는 복을 누린다. 만약 이런 사람이 정토행(淨土行)을 겸하여
수행하면 곧바로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며,
그 공덕은 실로 다함이 없다.
아홉째는 모든 악이 소멸된다. 현대는 극도로 위험한 시대이다.
잘못된 음주의 버릇과 성(性)의 문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방생하여 은혜에 보답하면 모든 악이 소멸되고 태평하게 된다.
열째는 복덕과 수명이 영원하다.
동물은 하급에서 고등으로, 인류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런 점은 동물과 인간이 서로 같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자들이 말하길,
"무릇 생물은 외계의 상태에 따라 변화한다.
사람들이 불살생계를 지키고 방생하는 것을 세세 생생토록 쉬지 않으면
착한 마음이 서로 상응하여 자자손손(子子孫孫)으로 서로 전하여
복덕과 장수를 누린다.
이상의 열 가지가 방생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덕이다.
인간은 본래 자기의 생명을 귀중히 여긴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는 모두 존엄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살생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전쟁과 싸움은 상대를 죽이려는 살생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계에서는 널리 방생을 권해서 살생하려는
악의 씨를 뿌리뽑고, 방생으로 자비의 마음을 기르는 것이다.
적석도인의 칠종방생
적석도인(赤石道人)은 다음의 일곱 가지 경우에는 꼭 방생을 하라고
권하고 있다.
첫째는 자식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방생하라.
세상 사람이 자식을 얻고자 약 먹기에 힘을 쓰나 한 평생을 먹더라도
효험을 보지 못하는 자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병이 있거든 약을 먹고, 자식이 없거든 방생하라.'고 권한다.
천지의 큰 덕은 태어남이다.
진실로 남의 생명을 살려주면 곧 나를 살려주는 것이다.
방생을 하면 원하는 자식을 얻을 수 있다.
둘째는 자식을 잉태하면 반드시 방생하여 산모(産母)를 보전하라.
잉태하여 자식을 보는 것은 사람과 만물이 다르지 않다.
사람과 짐승도 모두 태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짐승의 새끼 뱀을 내가 구해 주는데,
내가 자식을 잉태하였음을 아시면 하늘이 어찌 보호하지 않겠는가.
셋째는 기도함에 반드시 방생하여 복을 많이 지어라.
태어남을 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은 제신(諸神)과 부처님이 동일하다.
이러한 제신과 부처님의 호생지덕을 생각하여 죽임을 당할 처지에
놓인 생물들을 살려주어라. 만일 자신의 능력으로 어찌할 수 없을
때는 염불이라도 해주면 자연히 하늘이 감동하여 복을 얻음이
한량없을 것이다.
넷째는 미리 닦고자 하거든 방생부터 먼저 하라.
세간의 자선(慈善)은 방생 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내가 자비의 마음으로 방생하면 반드시 불보살님의 가피의 덕을 입을
것이다.
다섯째는 재계(齋戒)를 가짐에 반드시 방생하라.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이 계율 지키는 것을 좋아하심은 만물의 자비심
두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이 부처님의 아들 아님이 없다.
진실로 재계를 가지는 날에 방생하면 제불보살이 환희심을 낸다.
여섯째는 복록(福綠)을 구함에 먼저 방생하여 복을 쌓아라.
부귀명복(富貴冥福)은 요행으로 되지 않는다.
오직 복을 짓는 자 반드시 명복(冥福)을 얻는다.
사람이 어진 마음으로 생물을 어여삐 여겨 그 목숨을 구제해 주면
나의 구제를 입은 자가 기회를 보아 보답할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일곱째는 염불함에 반드시 방생부터 하라.
세상에 살면서 염불하는 사람은 자비심으로써 방생을 주로 하라.
생물을 구제함이 사람을 구제함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이 극형(極刑)을 범하는 것은 대부분 장난 삼아 하지만
동물들은 무슨 죄로 참혹한 환난을 만나야 하는가.
그러므로 누구든지 연지(蓮池) 대사와 영명연수(永明延壽)
선사의 방생으로써 급무(急務)를 삼아야 할 것이다.
연지대사의 칠종불살생
앞에서 살펴본 적석도인은 방생을 권하였다.
하지만 연지대사는 방생과 반대되는 살생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연지대사(蓮池大師)의 일곱 가지 불살생에 대한 교훈은 안진호(安震湖)
스님이 편찬한 석문의범(釋門儀範)에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고문체로 씌어졌기 때문에 현대인이 읽기에는 난해하다.
그래서 그 취지만 살리고 현대문으로 개작하였다.
첫째는 생일에 살생하지 말라.
자신이 출생한 날은 어머님께서 거의 죽을 뻔했던 날이다.
이 날에 결코 살생해서는 안된다.
재계(齋戒)를 지니고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
이러한 공덕으로 선망부모를 왕생케 하고,
현재 부모의 복덕과 수명이 증장케 해야 한다.
둘째는 자식을 낳거든 살생하지 말라.
모든 사람이 자식을 잃으면 슬퍼하고,
자식을 얻으면 기뻐한다.
일체의 동물도 자기 새끼를 사랑한다.
내 자식의 출생은 기뻐하면서 남의 자식을 죽게 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자식이 태어나는 날 남에게 적선(積善)하여
복덕(福德)을 짓지 못할지언정 도리어 살생업(殺生業)을
지어서야 되겠는가.
셋째는 제사 지낼 때 살생하지 말라.
망령(亡靈)의 기일(忌日)에 살생을 경계하여 명복을 빌어야 함에도 불구
하고 도리어 살생하여 제사 지내는 것은 악업(惡業)만 증대시킬 뿐이다.
넷째는 혼례에 살생하지 말라.
결혼이란 새로운 가정의 시작이다.
삶의 시초에 살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또한 혼례는 좋은 날의 길사(吉事)인데,
이날 흉한 일을 행하는 것은 참혹한 것이다.
또한 결혼식을 하면 반드시 부부가 해로(偕老)하기를 축원한다.
사람은 해로하기를 원하면서 짐승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인간들의
만행이다.
다섯째는 연회(宴會)를 베풀 때 살생을 말라.
손님을 맞이함에 정결히 마련한 채식과 다과로 정성껏 대접하면 된다.
연회를 핑계로 살아있는 짐승의 목과 배를 갈라 비명소리가 진동하게
해서야 어찌 사람의 마음인들 좋겠는가.
식탁의 맛있는 고기는 도마 위의 살육에서 나온 것이다.
짐승의 원한을 나의 기쁨으로 삼아서야 되겠는가.
여섯째는 기도할 때 살생하지 말라.
사람들은 병이 들었을 때 기도하여 쾌차하기를 바란다.
남의 목숨을 죽여서라도 나의 목숨을 연장하고자 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결코 목숨을 연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살생업만 더하는 꼴이다.
일곱째는 살생하는 직업을 갖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살생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지만
가능한 그러한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이 좋다.
살생하는 것을 직업으로 시작하면서부터 나쁜 과보를 받을 인(因)을
이미 지은 것이다. 어찌 내세의 악과(惡果)를 피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어찌 생계를 꾸려갈 다른 방도를 찾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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