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 (懺 悔)의 공덕 까사마(Kasama)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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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참회(懺悔)의 공덕 ◈
참회의 의미
참회(懺悔)란 범어 까사마(Kasama)의 번역어로서 '용서를 빈다',
'뉘우친다', '참는다(忍)'라는 뜻이다.
참회의 유형과 의미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초기불교의 참회에는 포살(布薩)과 자자(自恣)가 있다.
포살이란 비구들이 보름마다 한 번씩 부처님이나 대비구(大比丘)를
모시고 계본(戒本)을 읽는 전통적인 의식이다.
이때 계(戒)를 범한 비구는 대중 속에서 그 죄를 고백(告白)하여
참회를 얻는다. 자자는 매년 여름 안거(安居)의 마지막 날에 비구들이
모여 서로 격의 없이 비판을 하는 속에 각자가 스스로 참회하여
그 덕행(德行)을 연마하는 방법이다.
포살이 스스로의 고백에서 이루어지는 참회라면,
자자는 타인으로부터 지적을 받아서 참회하는 것이다.
이 초기불교의 참회는 계율(戒律)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초기교단에서 살(殺)·도(盜)·음(游)·대망어(大妄語)의
네 가지 무거운 죄[四重罪]는 참회가 허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단에서 추방되었다.
사중죄를 제외한 무거운 죄는 대중 앞에서 참회함으로써,
가벼운 죄는 한 사람 앞에서 참회함으로써 용서를 받았다.
이처럼 초기불교에서는 계율을 범했을 때,
참회를 통해 그 죄를 뉘우침으로 말미암아 수행에 도움이 되었고,
교단도 통제할 수 있었다. 사분율(四分律)의
"스스로 계를 범한 줄 알았을 때는, 곧 스스로 참회해야 한다"라거나,
십송율(十誦律)의 "죄가 있거든, 마음을 다해 뉘우쳐서 다시는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라는 대목이 그 증거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참회는 일반적으로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자가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고 참회하여 받아들여짐으로써
죄의 공포로부터 해탈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승참회의 특징은 죄업을 소멸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목표 그 자체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참회법은 수많은 수행법 가운데
가장 먼저 닦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불교를 신행하는 사람은 먼저 참회법을 수행하여
과거세로부터 지은바 업장을 소멸시켜 청정하게 된 뒤라야 비로소
완전한 성취가 가능하며, 또한 청정하고 미묘한 계를 받고자 하는
자도 반드시 참회법을 먼저 닦아서 지극한 마음이 된 다음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이르기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열반이다. 끊는 것은 하는 것(能)과
되는 바(所)가 벌어지는데,일어나지 않는 것은 함도 됨도 없다"고 했다.
참회도 마찬가지다.
죄업을 짓고 난 뒤에 뉘우치고 후회하는 것은 차선(次善)이며,
처음부터 참회할 죄업을 짓지 않는 것이 최선(最善)이다.
그런데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치거나 참회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윤회의 사슬을 벗어날 길이 없다. 비유하자면 병에 걸린 후 치료하여
완쾌된다고 할지라도 처음부터 병에 걸리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이다.
질병을 미리 예방하여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병에 걸렸다면 하루빨리 치료하여 완치시켜야만 한다.
진리를 깨달은 아라한들은 비록 행위는 하지만 업을 짓지 않는다.
하지만 중생들은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음[無明]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죄업을 짓는다. 이 때문에 참회문이 마련된 것이다.
대승참회법의 종류
대승불교의 발전과 함께 참회법도 여러 가지 형식이 갖추어지고 교리
사상적으로도 체계화되었다.
그 유형별로 보아 현재 다소나마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는
이종(二種)·삼종(三種)·삼품(三品)·오종(五種)·육근(六根) 등의
참회가 있으며, 종파별 또는 출가·재가별로 나름대로의 방식에
의해서 실천되었다.
이종참회란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이다.
사참은 일을 따라 분별하여 참회하는 것으로서,
수사분별참회(隨事分別懺悔)라고 하는데,
몸으로는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입으로는 찬탄의 게송을 외우며,
마음으로는 성스러운 모습을 그리면서 과거와 현재에 지은 바 죄업을
참회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참회라고 하면 사참을 뜻한다.
이참은 제법의 실상을 관찰하여 참회를 얻는 것으로서,
관찰실상참회(觀察實相懺悔)라고 한다.
대승의 유식사상가(唯識思想家)들은
유식(唯識)·유심(唯心) 등과 같은 말을 많이 사용했다.
이 유식학파들은 과거와 현재에 지은 모든 죄업들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난 것일 뿐, 마음 밖의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보고 있다.
이 유식에다 반야사상(般若思想)을 더하여 자기 마음이 본래
공적(空寂)한 것임을 알게 되면 죄상(罪相)도 역시 공적(空寂)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식·반야의 입장에서 죄업의
실상(實相)을 관찰하여 죄를 멸하는 것을 이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종·삼종참회는 상당한 이성과 사려(思慮)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 법식(法式) 또한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면서 참회하는 것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미타참법(彌陀懺法)·
관음참법(觀音懺法) 등이 있는데,
한국불교에서는 이러한 참법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이것은 불보살이 인행시(因行時)에 세운 원(願)과 깊이 연관되는
것으로 부처님의 맑은 그 이름 속에 일념(一念)으로 들어가면,
모든 죄업이 남김없이 소멸되고 청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회의 공덕
점찰법(占察法) 상권에 이르길,
"처음 발심하여 선정과 지혜를 닦고 익히려는 자는 반드시 숙세(宿世)에
지은 바 악업에 대하여 많고 적음과 가볍고 무거움을 먼저 관찰하여야
한다. 만약 악업이 많고 두터운 자는 선정과 지혜를 닦고 익힐 수가
없으므로 마땅히 참회의 법을 닦아야 한다. 만약 참회하여 청정하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닦고 익히게 되면 많은 장애 때문에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을 잃어버리고 미치거나 혹은 삿댄 마군과
외도(外道)의 괴롭힘을 당하거나 혹은 삿댄 법[邪法]을 받아들이게
되어 잘못된 견해를 증장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마땅히 참회법을
닦아야 한다. 참회의 수행으로 계근(戒根)이 청정하게 된다면 숙세의
무거운 죄도 가볍게 되어서 곧 모든 장애로부터 떠나게 된다"라고 했다.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乘本生心地觀經)
제3 보은품(報恩品)에 참회의 열 가지 공덕을 제시해 놓았다.
"겁의 불이 세간을 파괴하여 수미산과 큰 바다를 태우듯이 참회가
번뇌의 땔감을 태우고, 참회가 하늘에 태어나게 하며,
참회가 사선락(四禪樂)을 얻게 하며,
참회가 마니 구슬을 내려 주고,
참회가 금강의 수명을 연장하며,
참회가 상락궁(常樂宮)에 들게 하며,
참회가 삼계의 감옥을 벗어나게 하며,
참회가 보리의 꽃을 피우며,
참회가 부처님의 대원경지(大圓鏡智)를 보게 하며,
참회가 보배의 곳[寶所]에 이르게 한다.
만일 능히 법과 같이 참회하는 이는 마땅히 두 가지 관문(觀門)에
의해 닦을 것이니, 첫째는 일을 보아 죄를 멸하는 문이요,
둘째는 이치를 보아 죄를 멸하는 문이다"라고 했다.
이 경에 의하면 결국 참회로 말미암아 번뇌를 끊고,
하늘에 태어남은 물론 네 가지 선의 즐거움[四禪樂]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얻고 보배의 곳,
즉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참회가 수행의 시작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열반경에서는 "먼저 악을 저질렀다 해도 뒤에 이를 고백하며,
뉘우치고 나서는 부끄러워하여 다시 그런 악을 저지르지 말도록 할
일이다. 탁한 물에 마니주(摩尼珠)를 놓으면 마니주의 힘으로 인해
물은 곧 맑아지고, 또 안개나 구름이 걷히면 달은 곧 청명해지거니와,
악을 짓고도 능히 참회하는 경우에는 역시 이와 같을 것이다.
"또한 "설사 죄를 범한 것이 있더라도 곧 참회해야 할 것이니,
뉘우치고 나면 깨끗해지게 마련이다"라고 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서는 "선남자여,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과거 한량없는 겁으로 내려오면서 탐내는 마음
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모든 악한 업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 만약 이 악업이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끝없는 허공으로도 용납할 수 없으니,
내 이제 청정한 삼업으로 널리 법계 극진수 세계 일체 불보살님전에
두루 지성으로 참회하되, 다시는 악한 업을 짓지 아니하고 항상 청정한
계행의 일체 공덕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했다.
이러한 참회의 정신을 한 게송으로 요약한 것이 참회게(懺悔偈)다.
즉 "지난 세상 내가 지은 모든 악업은, 무시(無始)이래 탐심·진심·
치심 때문입니다. 몸과 입과 뜻으로 지었사오니,
내가 이제 남김없이 참회합니다.
" 이 참회문을 지성으로 암송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면 죄업을
소멸함은 물론 바라는 바 목적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의 꾀임에 빠져 99명의 목숨을 죽였던 살인마 앙굴리마라도
부처님께 귀의하고 깊이 뉘우쳐 참회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지난 잘못을 깊이 참회하고 출가하여 정진하였다.
그 결과 나중에는 아라한과를 증득한 성자가 되었다.
참회의 대표적인 표본이 바로 앙굴리마라다.
그는 참회를 통해 살인마에서 아라한이 되었던 것이다.
이승(二乘)이란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일승(一乘)인 대승법(大乘法)을 모르는 소승법(小乘법)이라는
폄아(貶下)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2) 능소(能所)는 능동과 피동, 혹은 주체와 객체를 말한다.
이와 같은 대립이 있는 한 상대가 끊어진 절대경(絶對境)의 진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참회의 의미
참회(懺悔)란 범어 까사마(Kasama)의 번역어로서 '용서를 빈다',
'뉘우친다', '참는다(忍)'라는 뜻이다.
참회의 유형과 의미는 초기불교와 대승불교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초기불교의 참회에는 포살(布薩)과 자자(自恣)가 있다.
포살이란 비구들이 보름마다 한 번씩 부처님이나 대비구(大比丘)를
모시고 계본(戒本)을 읽는 전통적인 의식이다.
이때 계(戒)를 범한 비구는 대중 속에서 그 죄를 고백(告白)하여
참회를 얻는다. 자자는 매년 여름 안거(安居)의 마지막 날에 비구들이
모여 서로 격의 없이 비판을 하는 속에 각자가 스스로 참회하여
그 덕행(德行)을 연마하는 방법이다.
포살이 스스로의 고백에서 이루어지는 참회라면,
자자는 타인으로부터 지적을 받아서 참회하는 것이다.
이 초기불교의 참회는 계율(戒律)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초기교단에서 살(殺)·도(盜)·음(游)·대망어(大妄語)의
네 가지 무거운 죄[四重罪]는 참회가 허락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단에서 추방되었다.
사중죄를 제외한 무거운 죄는 대중 앞에서 참회함으로써,
가벼운 죄는 한 사람 앞에서 참회함으로써 용서를 받았다.
이처럼 초기불교에서는 계율을 범했을 때,
참회를 통해 그 죄를 뉘우침으로 말미암아 수행에 도움이 되었고,
교단도 통제할 수 있었다. 사분율(四分律)의
"스스로 계를 범한 줄 알았을 때는, 곧 스스로 참회해야 한다"라거나,
십송율(十誦律)의 "죄가 있거든, 마음을 다해 뉘우쳐서 다시는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라는 대목이 그 증거다.
그런데 대승불교의 참회는 일반적으로 자기의 죄를 인정하는 자가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고 참회하여 받아들여짐으로써
죄의 공포로부터 해탈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대승참회의 특징은 죄업을 소멸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목표 그 자체다. 따라서 대승불교의 참회법은 수많은 수행법 가운데
가장 먼저 닦아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불교를 신행하는 사람은 먼저 참회법을 수행하여
과거세로부터 지은바 업장을 소멸시켜 청정하게 된 뒤라야 비로소
완전한 성취가 가능하며, 또한 청정하고 미묘한 계를 받고자 하는
자도 반드시 참회법을 먼저 닦아서 지극한 마음이 된 다음에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선가귀감(禪家龜鑑)에 이르기를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이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열반이다. 끊는 것은 하는 것(能)과
되는 바(所)가 벌어지는데,일어나지 않는 것은 함도 됨도 없다"고 했다.
참회도 마찬가지다.
죄업을 짓고 난 뒤에 뉘우치고 후회하는 것은 차선(次善)이며,
처음부터 참회할 죄업을 짓지 않는 것이 최선(最善)이다.
그런데 잘못을 저지르고도 뉘우치거나 참회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윤회의 사슬을 벗어날 길이 없다. 비유하자면 병에 걸린 후 치료하여
완쾌된다고 할지라도 처음부터 병에 걸리지 않은 것만 못한 것이다.
질병을 미리 예방하여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병에 걸렸다면 하루빨리 치료하여 완치시켜야만 한다.
진리를 깨달은 아라한들은 비록 행위는 하지만 업을 짓지 않는다.
하지만 중생들은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어리석음[無明]으로
말미암아 끊임없이 죄업을 짓는다. 이 때문에 참회문이 마련된 것이다.
대승참회법의 종류
대승불교의 발전과 함께 참회법도 여러 가지 형식이 갖추어지고 교리
사상적으로도 체계화되었다.
그 유형별로 보아 현재 다소나마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는
이종(二種)·삼종(三種)·삼품(三品)·오종(五種)·육근(六根) 등의
참회가 있으며, 종파별 또는 출가·재가별로 나름대로의 방식에
의해서 실천되었다.
이종참회란 사참(事懺)과 이참(理懺)이다.
사참은 일을 따라 분별하여 참회하는 것으로서,
수사분별참회(隨事分別懺悔)라고 하는데,
몸으로는 부처님께 예배드리고, 입으로는 찬탄의 게송을 외우며,
마음으로는 성스러운 모습을 그리면서 과거와 현재에 지은 바 죄업을
참회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참회라고 하면 사참을 뜻한다.
이참은 제법의 실상을 관찰하여 참회를 얻는 것으로서,
관찰실상참회(觀察實相懺悔)라고 한다.
대승의 유식사상가(唯識思想家)들은
유식(唯識)·유심(唯心) 등과 같은 말을 많이 사용했다.
이 유식학파들은 과거와 현재에 지은 모든 죄업들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난 것일 뿐, 마음 밖의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보고 있다.
이 유식에다 반야사상(般若思想)을 더하여 자기 마음이 본래
공적(空寂)한 것임을 알게 되면 죄상(罪相)도 역시 공적(空寂)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식·반야의 입장에서 죄업의
실상(實相)을 관찰하여 죄를 멸하는 것을 이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종·삼종참회는 상당한 이성과 사려(思慮)를
필요로 하는 것이며, 그 법식(法式) 또한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명호(名號)를 부르면서 참회하는 것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미타참법(彌陀懺法)·
관음참법(觀音懺法) 등이 있는데,
한국불교에서는 이러한 참법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이것은 불보살이 인행시(因行時)에 세운 원(願)과 깊이 연관되는
것으로 부처님의 맑은 그 이름 속에 일념(一念)으로 들어가면,
모든 죄업이 남김없이 소멸되고 청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회의 공덕
점찰법(占察法) 상권에 이르길,
"처음 발심하여 선정과 지혜를 닦고 익히려는 자는 반드시 숙세(宿世)에
지은 바 악업에 대하여 많고 적음과 가볍고 무거움을 먼저 관찰하여야
한다. 만약 악업이 많고 두터운 자는 선정과 지혜를 닦고 익힐 수가
없으므로 마땅히 참회의 법을 닦아야 한다. 만약 참회하여 청정하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닦고 익히게 되면 많은 장애 때문에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오히려 마음을 잃어버리고 미치거나 혹은 삿댄 마군과
외도(外道)의 괴롭힘을 당하거나 혹은 삿댄 법[邪法]을 받아들이게
되어 잘못된 견해를 증장하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마땅히 참회법을
닦아야 한다. 참회의 수행으로 계근(戒根)이 청정하게 된다면 숙세의
무거운 죄도 가볍게 되어서 곧 모든 장애로부터 떠나게 된다"라고 했다.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乘本生心地觀經)
제3 보은품(報恩品)에 참회의 열 가지 공덕을 제시해 놓았다.
"겁의 불이 세간을 파괴하여 수미산과 큰 바다를 태우듯이 참회가
번뇌의 땔감을 태우고, 참회가 하늘에 태어나게 하며,
참회가 사선락(四禪樂)을 얻게 하며,
참회가 마니 구슬을 내려 주고,
참회가 금강의 수명을 연장하며,
참회가 상락궁(常樂宮)에 들게 하며,
참회가 삼계의 감옥을 벗어나게 하며,
참회가 보리의 꽃을 피우며,
참회가 부처님의 대원경지(大圓鏡智)를 보게 하며,
참회가 보배의 곳[寶所]에 이르게 한다.
만일 능히 법과 같이 참회하는 이는 마땅히 두 가지 관문(觀門)에
의해 닦을 것이니, 첫째는 일을 보아 죄를 멸하는 문이요,
둘째는 이치를 보아 죄를 멸하는 문이다"라고 했다.
이 경에 의하면 결국 참회로 말미암아 번뇌를 끊고,
하늘에 태어남은 물론 네 가지 선의 즐거움[四禪樂]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얻고 보배의 곳,
즉 열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참회가 수행의 시작임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열반경에서는 "먼저 악을 저질렀다 해도 뒤에 이를 고백하며,
뉘우치고 나서는 부끄러워하여 다시 그런 악을 저지르지 말도록 할
일이다. 탁한 물에 마니주(摩尼珠)를 놓으면 마니주의 힘으로 인해
물은 곧 맑아지고, 또 안개나 구름이 걷히면 달은 곧 청명해지거니와,
악을 짓고도 능히 참회하는 경우에는 역시 이와 같을 것이다.
"또한 "설사 죄를 범한 것이 있더라도 곧 참회해야 할 것이니,
뉘우치고 나면 깨끗해지게 마련이다"라고 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서는 "선남자여, 업장을 참회한다는 것은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과거 한량없는 겁으로 내려오면서 탐내는 마음
과 성내는 마음과 어리석은 마음으로 말미암아 몸과 말과 뜻으로 지은
모든 악한 업이 한량없고 끝이 없어 만약 이 악업이 형체가 있는
것이라면 끝없는 허공으로도 용납할 수 없으니,
내 이제 청정한 삼업으로 널리 법계 극진수 세계 일체 불보살님전에
두루 지성으로 참회하되, 다시는 악한 업을 짓지 아니하고 항상 청정한
계행의 일체 공덕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했다.
이러한 참회의 정신을 한 게송으로 요약한 것이 참회게(懺悔偈)다.
즉 "지난 세상 내가 지은 모든 악업은, 무시(無始)이래 탐심·진심·
치심 때문입니다. 몸과 입과 뜻으로 지었사오니,
내가 이제 남김없이 참회합니다.
" 이 참회문을 지성으로 암송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면 죄업을
소멸함은 물론 바라는 바 목적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스승의 꾀임에 빠져 99명의 목숨을 죽였던 살인마 앙굴리마라도
부처님께 귀의하고 깊이 뉘우쳐 참회하여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지난 잘못을 깊이 참회하고 출가하여 정진하였다.
그 결과 나중에는 아라한과를 증득한 성자가 되었다.
참회의 대표적인 표본이 바로 앙굴리마라다.
그는 참회를 통해 살인마에서 아라한이 되었던 것이다.
이승(二乘)이란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일승(一乘)인 대승법(大乘法)을 모르는 소승법(小乘법)이라는
폄아(貶下)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2) 능소(能所)는 능동과 피동, 혹은 주체와 객체를 말한다.
이와 같은 대립이 있는 한 상대가 끊어진 절대경(絶對境)의 진리에
들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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