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 반야심경강의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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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반야의 주된 뜻
1. 지혜는 참으로 위대한 것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해설> - 2/3
<반야심경>의 원래 제목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인데 그것을 줄여서<반야심경>, 혹은 그냥 <심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맨 앞의 "마하"는 원래 없었던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붙여진 것입니다.
<반야심경>의 원래 제목은 <반야바라밀다심경>인데 그것을 줄여서<반야심경>, 혹은 그냥 <심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맨 앞의 "마하"는 원래 없었던 것인데 언제부터인가 붙여진 것입니다.
맨 앞의 "마하"는 범어로 마하(Maha)라고 하는데 그것은 '크다(大), 수승하다(勝), 많다(多)'라는 뜻이 있습니다. "마하"는 우리가 단순히 눈으로 감지할 수 있는 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하"의 크기는 어떤 한계나 제한이 없는 무한대의 크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하의 크기 속에는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한 것을 말합니다.
"마하"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는 절대적인 크기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뜻을 번역해서 쓰지 않고 그냥 "마하"라는 말을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반야"라는 말은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인도말로 프라야나라고 합니다. 그 뜻은 '지혜, 명, 혜'등이 있습니다. 흔히 "반야"를 지혜라고 번역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반야"는 법의 실다운 이치를 깨달은 최상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래서 "반야"를 얻은 사람은 성불하여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야"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 힘은 평등, 절대, 무념(無念), 무분별(無分別)의 경지일 뿐 아니라 반드시 상대의 차별을 관조(觀照)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반야"는 한 마디로 깨달음의 지혜를 말합니다. "반야"는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현명함이나 지식이 높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반야"의 지혜는 우리의 참 모습에 대한 눈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잠자는 동안에도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죽음이 눈앞에 닥쳐와 온 힘을 다해 발버둥치고 애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깨고 나면 자기 자신은 따뜻한 이불 속에 편안히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꿈을 깨고 나면 꿈속에서 몸부림쳤던 것은 현실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불 속에 편안히 누워 있는 모습이 현실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지헤는 꿈속에서 살기 위해서 꾀를 부리고 집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모습은 자신의 실상이 아닙니다. 꿈을 깬 모습이 바로 자신의 참 모습임을 깨닫는 일, 그것이 여기서 말하는 "반야" 곧 지혜입니다. 우리는 꿈속의 것이 현실인 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야"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깬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반야"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문제 해결이 "반야" 속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살이의 자질구레한 문제에서부터 경제적인 문제, 감정적인 문제, 사회 문제, 정치 문제, 노사 문제 등 그 어떤 문제라도 "반야"의 지혜로 해결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반야"를 얻기만 하면 그것은 아무도 훔쳐갈 수 없습니다. 또 "반야"는 빌려줄 수도 없습니다. "반야"는 문제 해결의 핵심이 되는 소중한 도구입니다. 누구나 수행을 통해서 "반야"의 지혜가 구체화될 수 있으며,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야"는 인생과 우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는 일이며,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해탈을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반야"를 통해 삼세제불은 정각(正覺)을 이루고, 보살은 열반을 얻고, 중생은 당면한 문제와 나아가서 삶과 죽음의 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을 지혜의 완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바라밀다"는 "반야"와 함께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범어로는 파라미타(Paramita)라고 말합니다. 그 뜻은 '도피안(到彼岸), 도무극(到無極), 사구경(事究竟)' 등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바라밀다"는 도피안이니 '저 언덕을 건너간다'는 뜻입니다. 저 언덕이란 바로 지혜의 열쇠로서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말합니다. 도피안이라고 해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도피안은 궁극적으로 지혜의 눈을 뜨는 것이며, 그래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상적 경지인 깨달음의 세계를 피안이라고 하는 반면에 미혹의 중생 세계는 차안(此岸)이라고 합니다. 차안은 곧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피안, 곧 "바라밀다"는 결국 꿈을 깨고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며, 자신의 실상을 올바로 관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편안함과 안락함이 항상 깃든 곳입니다. 그것은 곧 우리가 꿈꾸는 극락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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