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 큰스승의 천수경해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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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을 열고 청함 (啓請) -------------------------------------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 천수경의 세 가지 이름 계청 -------------------------------------- 4.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 - 경전을 펴는 진언 (원문) 개법장진언(開法藏眞言) 옴 아라남 아라다.(3번) (옮김) 경전을 펴는 진언 1) 법장 여기서 말하는 법장(法藏)이란 '진리의 창고'라는 뜻입니다. 즉 천수경에는 무궁무진한 진리가 담긴 창고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옴 아라남 아라다'는 바로 무궁무진한 진리의 창고를 여는 진언입니다. 이렇게 진리가 가득 담긴 창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리는 무한한 진리의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1.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의 광대하신 원만무애 자비심의 다 라니 (원문) 千手千眼 觀自在菩薩 廣大圓滿 無碍大悲心 大陀羅尼 (옮김) 천수천안 관세음 보살님의 광대하고 원만하신 자비심의 큰 다라니. 1) 경전의 이름 이 부분은 '천수경'의 핵심인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설하고 있는 경전의 이름을 말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2) 세 개의 다라니 여기에는 모두 세 개의 다라니가 나오고 있습니다. 즉 천수천안 관자제보살의 다라니, 광대원만의 다라니, 무애대비심의 다라니 등 세 개의 다라니가 결합된 것을 말합니다. 첫째 관세음의 다라니 한없이 많은 눈(千眼:천 개의 눈)으로 모든 중생의 아픔을 지혜로써 살피시고(觀), 한없이 많은 손(千手:천 개의 손)으로 그 아픔에서 해방되게 하는(自在) 관세음보살의 다라니가 첫 번째 다라니입니다. 여기서 천 개의 눈이란 바로 수 많은 중생의 아픔을 깨닫고 그것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보살의 자비심을 말합니다. 또 천 개의 손이란 그 아픔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다독거려 주는 자비의 손길이자 실천 방편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광대 원만 대다라니 '광대(廣大)'는 천수경의 진리가 위없는 진리로써 대승(大乘)임을 말하는 다라니입니다. 대승을 '방광(方廣)'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한없이 넓고 큰 다라니라는 뜻입니다. 원만은 원통(圓通)을 의미하는데 원통이란 삼매에 듦을 말합니다. 관음(觀音)은 소리를 듣고 삼매에 들었다 하여 이근원통(耳根圓通)이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관음전을 다른 말로 원통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셋째 무애 대비심 다라니 이 다라니는 자비를 실천함에 있어 걸림이 없는 다라니를 말합니다. 걸림이 없다는 것은 중생을 구제함에 있어 아무런 장애가 없을 만큼 좋은 방편을 얻었음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상대방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그를 도와줄 적절한 방법을 모른다면 오히려 나쁜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2. 계청(啓請) - 경전을 열면서 청함 稽首觀音大悲主 願力洪心相好身 千臂莊嚴普護持 千眼光明遍觀照 관음보살 대비주께 머리숙여 예합니다. 깊고 깊은 원력으로 육신상호 거룩하며 일천 손의 자비손길 고뇌중생 거두시고 일천 눈의 지혜광명 온 세상을 살피시네. 1) 머리 숙여 예를 표함 여기서 계(稽)자는 조아릴계자 입니다. 즉 계수(稽首)란 존경의 표시로 머리를 조아림을 뜻합니다. 2) 관세음 보살님의 특징 관세음 보살님은 흔히 원(願), 장엄(莊嚴), 광명(光明) 등으로 특징 지워집니다. (1) 원(願) 원이란 모든 불 보살님들이 가지고 계신 지극히 크고 성스러운 '바램' 또는 '다짐'을 말합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세우고 계신 원은 지극히 크고 깊으며 모든 중생들에게 치우침이 없는 지극히 공평한 원을 세우고 계십니다. (2) 장엄(莊嚴) 장엄이란 무엇을 외형적으로 나타내는 장식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관세음 보살님의 모습은 흔히 천수천안으로 장엄(표현)되고 있습니다. 천 개의 눈을 가졌다는 것은 수 없이 많은 중생들의 모든 아픔을 다 보기 위한 것이며 천 개의 손을 가졌다는 것은 수많은 중생들의 아픔을 모두 어루만져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와 같은 관세음 보살님의 모습을 외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으로 장엄(표현)되고 있습니다. 장엄이란 바로 '장식하다'와 같은 뜻인데 불교에서는 엄숙하고 거룩하게 장식했다는 의미에서 쓰이는 말입니다. 중생을 구제하시고자 하는 관세음 보살님의 염원이 일천 손의 장엄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3) 광명(光明) 불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고통(苦)으로 봅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왜 고통스러울까요? 불교에서는 그 원인을 무명(無明)으로 봅니다. 즉 인간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그 어두운 정신 세계를 불교에서는 무명(無明)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참된 진리를 알지 못하는 무명에서 중생들의 고통이 비롯되었다면 관세음 보살님의 실천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중생들에게 진리를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중생의 아픔을 보시고 어루만져 주시는 관세음보살님은 빛(光明)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는 결국 관세음 보살님께서는 인간의 잘못된 욕망에서 비롯된 고통을 물질적 풍요와 권력을 가져다 줌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된 세계관을 바로잡아서 고(苦)의 근원을 해결해 줌을 말하는 것입니다. 慈光照處蓮華出 慧眼觀時地獄空 又況大悲神呪力 衆生成佛刹那中 자비의 빛 비치는 곳에 연꽃이 피어나고 지혜의 눈으로 지옥을 보시니 지옥이 텅비었구나. 하물며 또 대비주의 신통한 힘까지 빌린다면 중생이 부처되기 찰나의 일이라네. (관음시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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