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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羅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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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542회 작성일 17-03-1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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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羅漢)

 부처님의 제자 아라한(arhan)을 음역하여 아라한(阿羅漢)이라고 하며 나한은 약칭이고 그 뜻은 성자(聖者)이다. 뜻으로 읽고 표현한 응공(應供) 응진(應眞), 살적(殺敵), 불생(不生)같은 단어들이 있다.

 응공(應供)은 공양(供養)받을 만한 분이란 뜻으로 수다원(須陀洹, 예류입류), 사다함(斯陀含, 일래), 아나함(阿那含, 불환), 아라한(阿羅漢, 무학도) 같은 성인들을 말하며, 응진(應眞)은 진리를 깨쳤으므로 응진이라 한다. 살적(殺敵)은 모든 탐, , (, , )의 번뇌(煩惱)를 소멸(消滅)하여 해탈하신 분, 불생(不生)은 윤회(輪廻)의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신 분들의 표현이다.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누구든지 일심(一心)으로 공부해서 나한(羅漢)이 될 수 있고, 사람들은 나한 역시 여러 불보살처럼 신통력(神通力)을 갖춘 존재로 받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보살(菩薩)과 다른 점은 나한들은 대개 실존인물이라는 것이다.

 나한신앙이 꽃을 피운 중국에서는 도교(道敎)와 결합되어 신선(神仙)처럼 묘사되거나 선종(禪宗)의 조사가 나한으로 모셔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나한은 복()을 비는 대상이었으며 전통에 따라 나한전에는 부처님의 반 열반(般涅槃, 구경열반)후 삼장을 결집하기 위해 칠엽굴에 모였던 5백 아라한들을 모시고, 응진전에는 16나한을 모신다.

   ☞ 16나한이었으나 중국적 해석에 의해 선종의 조사 2분을 아라한으로 모셔서 18나한 등의 변화형식이 생겼다. 16나한에 경우존자(慶友尊者)빈두로 존자(賓頭盧尊者)를 더하거나 가섭 존자(迦葉尊者)군도발탄 존자(軍徒鉢歎尊者)를 더한 18나한이라고 하나 이는 끼워 맞춘 숫자일 뿐이다.

 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16인의 나한에게 불멸(佛滅)이후에도 영원히 이 세상에 머물며 각지에서 불법을 수호하며 중생을 제도하라는 부촉(咐囑)을 내린다. 이들은 모두 삼명(三明), 육통(六通), 팔 해탈(八解脫)의 무량한 공덕을 갖추고 있어서 삼계의 오탁(汚濁)에 물들지 않으며 경론 삼장은 물론 외도(外道)의 경전에도 능통했으며 신통력도 지니고 있어서 중생(衆生)들을 위해서는 참된 복전(福田)이 되었다.

 나한전(羅漢殿)은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시는 곳으로 나한은 장차 부처가 될 것으로 법화경에 적혀 있고, 중생에 복덕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기도 중엔 나한전(羅漢殿) 기도가 으뜸이라고 한다.

나한전(羅漢殿) :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羅漢)을 모신 법당으로 응진전(應眞殿)이라고도 한다.

 부처에게는 16명의 뛰어난 제자들이 있어 이들을 16나한이라 한다. 때문에 나한전에는 석가모니를 주존(主尊)으로 좌우에 부처님의 제자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좌우로 16나한이 자유자재한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끝부분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함께 봉안하는데 이는 나한전의 일반적인 배치 형태이다 석가모니불을 주존(主尊)으로 모신다.

 16나한은 후불탱화로 그려 봉안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 경우에는 불단에 나한상이 없다. 후불탱화에는 16나한도 이외에 영산회상도 역시 많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5백 나한을 모신 곳도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이 열반한 후 가섭이 부처님이 생존했을 때의 설법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을 때 모인 비구가 5백 명인 데서 비롯된다. 나한전은 대웅전과 달리 좁은 폭의 불단을 자형으로 배치하여 부처와 나한을 차례로 봉안하고, 깨달음의 정도가 낮은 나한을 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불단을 장식하지도 않고 절집을 장엄하지도 않는다. 위치도 주불전에서 떨어진 자리에 두고, 건물의 외양도 주불전보다 격을 낮게 한다. 나한신앙은 중국·일본·한국에서 크게 성행하였는데, 이 때문에 한국의 사찰에도 나한전이 많이 건립되었다.

유래(由來) :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김수로왕이 말하기를 김해는 산천이 빼어나서 가히 16나한이 살만한 곳이 최초로 기록된 내용이다.

 - 나한전의 내부는 화려하지도 엄숙하지도 않지만 중생들의 삶처럼 소박하고 소탈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불자들을 맞이하는 나한들은 각양각색이며 수행과 깊은 통찰에서 오는 해탈의 분위기와 자유인에게서 나오는 해학적 표정과 몸짓을 하고 있다. ⇒ 부처님이 열반(涅槃)에 들자 평소 설법하신 내용을 담아 경전을 만들기 위한 제1결집(五百結集)에서의 모습을 화현한 것이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참선하는 얼굴, ()를 들어내고 웃거나, 미소 짓는 얼굴, 등을 긁고 있거나 졸고 있는 생활의 자유자재한 모습이 담겨 있다. 인간적 정서와 정취가 진하게 연출되어 있다.

대표적 사찰 : 가장 유명한 것은 경북 울진군에 있는 불영사(佛影寺) 응진전이다. 이 건물은 보물 제730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매우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전북 완주군의 송광사(松廣寺)에는 대웅전 후면으로 특이한 양식을 한 오백나한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경북 영천시 은해사(銀海寺) 거조암(居祖庵)에도 오백나한전이 있다.

 경남 진주시(문산ic) 금산면 월아산의 청곡사,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칠현산의 칠장사, 소백산 성혈사(국망봉 남쪽 초암사 갈림길에서 백두대간을 떠나 남동쪽 963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초암사계곡과 복간 터 골 사이)의 나한전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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