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백결집(제2차 결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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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결집은 불멸 후 약 1백년 경에 베살리(Vesali) 비구들의 10사(事)를 계율위반이라고 규정하여 계율 엄격주의자인 야사(Yasa)의 소집으로 700비구가 베살리에 모여 보수적인 장로부가 부처님 당시의 계율을 준수할 것을 결의하고, 이에 진보적인 대중부가 반대하여 근본분열이 일어남에 따라 결집되었다. 바이샬리 결집(毘舍離, Vaisali), 칠백결집이라고 한다. 이 결집은 8개월간 십사비법(十事非法)에 관해 논의해 유법(遺法)의 전체가 교정됐다. 그러나 십사의 논쟁은 야사를 중심으로 한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로 교단(敎團)을 나누는 근본 분열을 가져와 부파불교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백 년 동안에 불교도들은 각처에 분파되어 그 지방의 특색과 타교(他敎)와 교섭되어 불교의 근본정신에 다소의 변화를 가져오고 교리(敎理)면에 있어서도 변천이 시작되었으며 여기에서 보수파(保守派)와 개진파(改進派)가 생겨 의견을 달리하게 되니 부득이 2차 결집을 단행하게 되었다.
비사리성(毘舍離城)의 큰 숲 가운데 대강당이 있었는데 여기에 발기라는 비구가 살고 있었다. 그는 포살(布薩)하는 날에 구리로 만든 넓은 대야에다 물을 가득히 떠놓고 대중들로 하여금 돈을 던져 넣으면 아주 좋은 일이 생긴다고 권했다. 신자들은 기꺼이 던져 넣었으나 사문인 석자(釋子)만은 이에 따르지 아니했다. 이때 아난의 제자 가건타와 야샤타가 그곳에 놀러 왔다가 이것을 보고 발기 비구에게 그것은 옳지 않은 짓이라고 만류했으나 듣지 않았다. 또 그들은 다음 열 가지를 들추어 비법(非法)행위라고 말했다.
1) 각염정(角鹽淨) : 비구는 소금을 그릇에 저장해 두어도 무방하다.
2) 이지정(二指淨) : 매일 점심을 먹은 후에라도 해 그림자가 두 손가락을 지난 동안까지라면 다시 먹어도 무방하다.
3) 타취락정(他聚落淨) : 한 번 밥을 먹은 뒤에라도 마을을 바꾸어서 두 번 먹어도 무방하다.
4) 주처정(住處淨) : 같은 교구 안에서는 2번 포살을 해도 무방하다.
5) 찬동정(贊同淨) : 대중(大衆)의 뜻을 결정할 때 꼭 과반수가 아니라도 무방하다.
6) 소습정(所習淨) : 꼭 선례(先例) 또는 습관(習慣)을 따르지 않아도 무방하다.
7) 불찬요정(不饌搖淨) : 지방질(脂肪質)을 제거(除去)하지 않은 우유는 먹어도 무방하다.
8) 음사루야정(飮사樓椰淨) : 발효(醱酵)되지 않은 야자 즙은 마셔도 무방하다.
9) 무연좌진정(無緣座眞淨) : 방석의 크기는 몸에 따라 임의로 할 수 있다.
10) 금은정(金銀淨) : 적은 돈은 남에게 받아서 저축해도 무방하다.
☞ 정(淨)은 청허(聽許)한다 또는 무방하다는 뜻이다.
이상의 10가지를 당시 수행인들 사이에서는 비법(非法)이며 계율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었다. 야사타 비구는 발기(跋耆)비구의 이와 같은 10가지 비법된 일을 보고 널리 다른 비구들에게 알렸다.
발기 비구 측은 동편당(東堂)이 되고 야사 비구 측은 서편당(西堂)으로 나누어져 각 대표 4인을 뽑아 담판을 받기로 하였다.
먼저 10가지 비법(非法)된 일을 일일이 물어본 결과 대중들의 대답은 비법이라는 편이 많았다. 그러나 발기비구는 회개(悔改)하지 않고 오히려 기존 여래의 제도라고 주장하는 정통파 즉, 야사비구 측을 배척하고 단체를 만드니 수효가 점점 많아졌고 단체의 이름을 대중부(大衆部)라고 칭하였다.
정통파에 속한 장로(長老)들은 이름을 상좌부(上座部)라 하고 이때부터 불교는 양파로 갈려져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10가지 일(十事)을 비법이라고 판정한 상좌부에서는 700명이 비사리 성에 모여 삼장(三藏)을 다시 외우고 계율을 위주로 8월에 이 일이 끝나니 이것을 700결집 또는 제2결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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