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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승님의천수경 해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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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2,611회 작성일 15-01-1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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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stitle3.gif생활불교 경문..천수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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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수경해설4 ▒
경전을 열고 청함 (啓請)2 --------------------------------------- 함이 없는 마음으로 베풀어라 진리의 깃발과 보배의 창고 뜻대로 이루어 지이다 --------------------------------------- 1. 함이 없는 마음으로 베풀어라 眞實語中宣密語 無爲心內起悲心 速令滿足諸希求 令使滅除諸罪業 진실한 말속에서 비밀한 말을 나타내며 함이 없는 마음으로 자비심을 일으켜서 저희들의 온갖 소원 어서 빨리 이루옵고 모든 죄업 남김없이 깨끗하게 하옵소서. 1) 관세음 보살의 이타행 이 게송은 관세음보살님께서 비밀한 말씀(密語)을 베푸시고 함이 없는 무위(無爲)의 마음으로 자비심을 일으켜서 중생들의 모든 소원을 성취케 하시고, 모든 죄업을 소멸해 주시기를 발원하는 내용입니다. 또 이 게송 속에는 진정한 자비행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행위에는 유위(有爲)의 행과 무위(無爲)의 행이 있습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베푸는 행이라면 비록 그것이 선행일지라도 진정한 자비심에서 나온 행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 행을 자선(慈善)이라고 부릅니다. 반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준다는 생각마저 없이 베푸는 보시를 자비(慈悲)라고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위와 유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2) 유위법과 무위법 유위(有爲-samsrta) 위작(爲作) 또는 조작(造作)이라는 뜻의 유위는 인연(因緣)으로 인해 조작되는 모든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처럼 인연에 의해 조작되는 현상은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시간적으로 볼 때 영원한 실체가 없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상한(諸行無常)것입니다. 또 공간적으로도 변함없이 상주하는 실체가 없습니다(諸法無我). 이같은 특성을 갖는 모든 현상을 유위법이라고 합니다. 무위(無爲-asamskrta) 유(有)나 무(無)와 같은 상대적 개념을 넘어선 경계로 모든 법의 진실체가 곧 무위입니다. 이 무위의 세계에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이라는 변화가 없으며 영원히 존재(常住)하는 세계입니다. 인연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모두가 다 무상하지만 무위는 인연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 불변합니다. 무위의 핵심은 있음과 없음(有無), 나와 남(我他)이라는 상대적 개념을 초월한 것입니다. 3) 진정한 자비심 남에게 베풀되 그것이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를 위한 것이라면 이는 '유위(有爲)'입니다. 즉 인과의 법칙이라는 범주 속에 머무는 행위인 것입니다. 진정한 자비는 남에게 베푼다는 그 의식(我相) 마저 없는 것입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상(相)에 머물지 않는 베품(無住相布施)'이라고 합니다. 베푸는 자와 받는 자라는 대립적 경계마저도 초월하여 주객(主客)이 하나가 된 베품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이자 참된 베품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위(無爲)의 베품'입니다. 4) 삼륜청정 그래서 불교에서는 삼륜이 청정(三輪淸淨)해야 한다고 합니다. 삼륜(三輪)이란 베푸는 자(施者)와 받는 자(受者)와 보시한 물건(施物)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가 깨끗할 때 비로소 참된 베품이 됩니다. 여기서 깨끗하다는 것은 베풀어지는 시물의 깨끗함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베풀고 받는 그 행위에 어떤 불순한 목적이나 상(相)에 집착함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상대적 개념을 초월한 무위(無爲)의 견지에서 볼 때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또 베풀어지는 물건도 고정된 실체가 없습니다. 삼륜에서 륜(輪)이란 수레바퀴를 뜻합니다. 마치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입니다. 누가 주는 자이고 누가 받는 자라는 불변의 규정성이 없습니다. 주었으되 준 것이 없고 받았으되 받은 것이 없는 그런 무위의 베품을 삼륜공적(三輪空寂)이라고 합니다. 베푸는 자도 공하며(施空), 받은 자도 공하며(受空), 베풀어지는 물건도 공하다(施物空)하여 삼륜체공(三輪體空)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달마 대사와 양무제와의 유명한 대화를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양무제는 많은 사찰을 건립하고 불전에 공양을 많이 올려서 당시 중국불교의 흥성에 크게 기여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제는 자신의 공덕이 참으로 크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도에서 큰스님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마스님을 만나 자신이 베푼 공덕이 얼마나 큰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달마대사는 일언지하에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무제의 보시는 베풀었다는 상(相)에 집착하고 있는 유위의 베품이었기 때문에 자선은 될지언정 참된 공덕은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5) 동체대비 관세음 보살은 중생과 보살이라는 그 경계를 뛰어 넘은 주객합일의 사랑으로 중생을 구제하십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동체대비(同體大悲)라고 합니다. 중생과 보살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보살이란 말을 살펴보면 동체대비의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옆의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보살(菩薩)이란 산스크리트어로 'Bodhi-sattva'입니다. 'Boddhi'란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며 'Sattva'란 미혹한 중생을 의미합니다. 즉 보살이란 ' 깨달은 중생'을 뜻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중생과 보살은 둘이 아닙니다. 중생과 보살은 하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 무위의 경지에 이르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천수다라니의 독송을 통하여 무위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무위의 마음이 될 때 비로소 한없는 자비로써 중생들의 세간을 장엄할 수 있는 것입니다. 6) 도교의 무위 참고로 도교에서도 무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사실 무위라는 말 자체는 도교의 것입니다. 불경을 번역할 때 도교의 말을 차용해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무위라는 말에 국한시킨다면 도교의 말이겠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무위라는 말에는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교에서 말하는 무위는 노자를 위시한 도가 사상에서 가장 높이는 말입니다. 무위란 '아무 것도 안 한다', '하는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인공적이고 자의적인 기교, 작위, 조작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본래 우주(宇宙), 천지(天地), 만물(萬物)은 스스로 그렇게 되었고 또 제물(諸物)로 운행(運行)되고 변화 발전하는데 이것을 자연(自然)이라 합니다. 자연은 '스스로(自) 그렇게 되다(然)'의 뜻으로 타력적(他力的)이거나 인위적(人爲的)으로 된 것이 아니고 그렇게 밖에는 될 수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을 자연이라 합니다. 따라서 사람도 모든 것을 자연에 따르고 인위적인 작위(作爲)를 가하지 말라는 것이 노자의 주장이고 이를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이라고 합니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관요장 제2에 보면 무위(無爲)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形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만 안다면 이는 악이다. 또 선한 것만 선으로 여긴다면 이것은 불선이다. 그런고로 유와 무는 상대적으로 나타나고 어려움과 쉬움도 상대적으로 이루어지고 길고 짧은 것도 상대적으로 형성되고 높고 낮음도 상대적으로 대비되고 음과 소리도 상대적으로 어울리고 앞과 뒤고 상대적으로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무위의 태도로써 세상사를 처리하고 말없는 교화를 실행한다." 2. 진리의 깃발과 보배의 창고 天龍衆聖同慈護 百千三昧頓薰修 受持身是光明幢 受持心是神通藏 천룡 팔부 여러 성인 자비로써 보호하사 백 천 가지 온갖 삼매 단박에 닦게 하네. 천수주를 지닌 몸은 빛나는 깃발이 되며 천수주를 지닌 마음은 신비로운 창고가 되네. 1) 천수 다라니를 독송하는 공덕 이 게송은 천수다라니를 독송함으로써 얻게 되는 공덕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래 근기가 수승한 중생이라면 스스로 수행하겠지만 근기가 낮은 중생들이라면 방편(方便)이 필요합니다. 천수다라니를 독송하고 수행했을 때 이러이러한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당근요법이 필요한 것입니다. '법화경'에 보면 근기가 낮은 중생들을 위한 방편이 많이 설해지고 있습니다. 사막을 가는 상인이 지친 동료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저 앞에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성(城)이 있다고 거짓으로 말해서 갈 길을 재촉하는 화성유품이라든지 불난 집에서 아이들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세 가지 수레를 주겠다고 한 화택유품 등 많은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방편으로서 먼저 결과를 보여주고 수행하기를 권하는 것을 시과권수(示果勸修)라고 합니다. 2) 팔부 신중(八部神衆) 천룡, 팔부란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중을 말하는 것으로 천(天)■룡(龍)■야차■아수라■가루라, 건달바, 긴나라, 마후라가를 말합니다. 이들 여덟 신들은 부처님을 외호(外護)하며 불법을 보호하는 호법(護法) 선신(善神)들입니다. 이들 신들은 본래 인도의 고대 신들이었지만 불교가 발전하면서 불교에 수용되어 불교를 외호하는 신들이 됐습니다. 이들은 부처님의 불법을 수호하며 그 진리에 안주하는 신들이 된 것입니다. 3) 진리의 깃발 광명당(光明幢)이란 '빛나는 깃발'이란 뜻입니다. 깃발은 깃발이되 진리의 깃발이기 때문에 빛나는 깃발인 것입니다. 찬란히 빛나는 진리의 깃발은 무명(無明)의 고통바다(苦海)를 떠돌아다니는 중생들에게는 등대와 같은 것입니다. 어두운 밤길을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횃불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천수다라니를 받아 지니는 사람은 어두운 사바세계를 방황하는 모든 중생들의 길잡이가 되며 밝은 등대가 되는 것입니다. 천수다라니를 받아 지닌 우리의 몸은 이제 더 이상 평범한 일상적인 몸이 아닙니다. 모든 중생들의 사표가 되는 펄럭이는 깃발입니다. 번뇌의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어와도 그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욱 힘차게 펄럭이며 무명을 일깨우는 깃발인 것입니다. 그래서 탐■진■치 삼독의 마군(魔軍)을 무찌르는 진리의 선봉이 되는 것입니다. 시처럼 아름답고 역동적인 이 비유는 단순히 자신만을 위해 천수다라니를 독송할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진리의 장정에서 당당히 앞장서서 중생들을 이끌고 가는 선봉이 되라는 실천지침이기도 한 것입니다. 4) 신비로운 진리의 창고 신통장(神通藏)이란 신비로운 창고라는 뜻입니다. 천수다라니를 받아 지닌 이 몸은 이미 만 중생의 허기진 정신세계를 배부르게 할 진리의 보배 창고가 된 것입니다. 텅 빈 창고가 아니라 진리로 충만된 창고입니다. 그래서 신통장입니다. 가득 찬 창고는 밖을 향해 문을 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충만된 보물들을 굶주리는 이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야야 합니다. 이미 신비로운 창고가 된 이상 천수행자는 이제 아낌없는 베품의 실천적 활동에 나서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마음은 더 이상 탐욕에 굶주리지 않으며, 성냄의 불길에 휩싸이지도 않으며, 어리석음으로 방황하지도 않습니다. 삼독으로 가득 찼던 이 마음은 이제 무한한 보배의 창고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나눠 줄 여유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비유입니까. 이 얼마나 신심에 가득 찬 메시지입니까? 이제 천수주를 외우는 이상 빛나는 깃발 펄럭이며 무한한 진리의 창고 문을 열어제치고 무명을 무찌르고 부처님의 세계로 나가는 선구자가 된 것입니다. 참고로 천수다라니를 수지(受持)하면 다음과 같은 공덕이 있다고 합니다. 천수주 독송의 열 가지 이익(誦呪十利) ①모든 중생이 안락을 얻는다. ②모든 병이 낫는다. ③오래 산다. ④부자가 된다. ⑤모든 악업과 중죄를 소멸시킨다. ⑥장애와 어려움을 여의게 된다. ⑦모든 선행과 공덕을 더욱 많이 짓게 된다. ⑧모든 선근을 성취하게 된다. ⑨모든 두려움을 여의게 된다. ⑩모든 구하는 바를 속히 이루게 된다. <신수대장경>,1060 열 다섯의 나쁜 죽음을 면한다(不受十五種惡死) ①굵어 죽지 않는다. ②사형당하지 않는다. ③원수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④전쟁터에서 전사하지 않는다. ⑤짐승에게 물려서 죽지 않는다. ⑥독사 등에 물려서 죽지 않는다. ⑦물에 빠져 죽거나 불에 타죽지 않는다. ⑧독극물에 의해서 죽지 않는다. ⑨독충에 물려서 죽지 않는다. ⑩정신착란으로 죽지 않는다. ⑪산이나 절벽에서 추락해 죽지 않는다. ⑫나쁜 사람이나 도깨비에게 홀려 죽지 않는다. ⑬사악한 신이나 악귀에 의해서 죽지 않는다. ⑭나쁜 병에 걸려서 죽지 않는다. ⑮때 아닐 때 죽지 않고 자살하지 않는다. <신수대장경>,1060 열 다섯의 훌륭한 삶을 얻는다(得十五種善生) ①민주적인 정치 지도자가 정치하는 곳에서 살게 된다. ②윤리적으로 선량한 나라에게 살게 된다. ③평화롭게 살게 된다. ④선지식을 만날 수 있다. ⑤언제나 정상적인 신체로 건강하게 산다. ⑥깨닫고자 하는 마음이 견고하게 된다. ⑦계율을 잘 지킨다. ⑧가족들이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다. ⑨음식, 의복 등의 원하는 것을 항상 풍족하게 소유하게 된다. ⑩언제나 다른 사람의 공경을 받는다. ⑪재물을 도둑맞지 않는다. ⑫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게 된다. ⑬천과 용, 신중들이 항상 옹호한다. ⑭언제나 불교가 승하는 곳에서 살게 된다. ⑮올바른 법을 듣고 그 깊은 이치를 깨닫게 된다. 3. 뜻대로 이루어 지이다 洗滌塵勞願濟海 超證菩提方便門 我今稱誦誓歸依 所願從心悉圓滿 세상티끌 씻어내고 고통바다 어서 건너 지혜로운 방편들을 속히 얻게 하사옵고 제가 이제 관음신주 잃고 외우며 귀의하오니 뜻하는 일 마음대로 원만하게 이루어 지이다. 1) 계청의 마무리 이 게송은 관음보살에 대한 사룀(啓請)을 마무리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나열했던 내용들을 소결 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게송에는 세 가지 법문이 있습니다. '마음의 번뇌를 세탁'하는 것과 '방편을 얻는 것'과 ' 뜻대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2) 번뇌를 세탁하는 일 세척진로(洗滌塵勞)란 번뇌를 세탁하는 일을 말합니다. 진로(塵勞)는 먼지, 또는 티끌을 가리키는 말로 마음의 번뇌를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의 본성(本性)은 본래 청정한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온갖 번뇌의 티끌이 그 맑은 본성을 뒤덮고 있어서 어두울 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맑은 거울에 더러운 먼지가 껴서 사물을 비출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삼독의 거센 바람이 번뇌의 파도를 일으키면 바다는 어둡고 풍랑으로 거칠어집니다. 그러나 모든 번뇌의 파도가 잠든 고요한 바다는 유리알 같이 맑아 삼라만상을 다 비추게 됩니다. 이처럼 번뇌의 파도가 잠들고 고요해진 상태를 해인(海印)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번뇌를 모두 잠재우고 고요하고 맑아 참된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해인 이며 열반(涅槃,Nirvana)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번뇌를 모두 씻어내는 것은 바로 고해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3) 방편을 얻는 일 방편(方便-Upway)이란 중생제도를 위해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대승불교의 실천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실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 한 중생도 방치할 수 없다는 대승불교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방편의 뜻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① 방(方)은 방법, 편(便)은 편리를 말하는 것으로 편리하게 방법을 쓴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일체중생의 기류근성에 맞는 적절한 방법과 수단을 편리하게 써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 방(方)은 중생의 영역을 말하고 편(便)은 교화하는 편법을 말합니다. 이는 모든 기류의 근기와 특성에 맞추어 적당히 교화의 편리한 방법을 쓰는 것을 말합니다. ② 진실하지 않고 보잘것없는 법문을 방편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근기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중생들을 깊고 오묘한 진리의 세계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서는 하나의 수단으로 낮고 보잘 것 없는 법문을 설해야 하기도 하는데 이런 방편을 권가 방편(權家方便)이라고 합니다. 비록 진리에 어긋나고 낮은 차원의 가르침이지만 중생의 수준에 맞게 법을 설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명의가 병에 따라 약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③ 정직을 방(方)이라 하고 나를 돌보지 않는 것을 편(便)이라고 말하는데 일체 중생을 가련히 여겨 자기의 이익을 따지지 않는 것을 방편이라고 합니다. 이는 중생 구제를 위해서 여러 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는 의미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입니다. 우리는 흔히 좀 배웠다하는 사람들을 보면 분위기에 맞지도 않는 어려운 말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신의 품위와 명성을 위해서겠지요. 하지만 대승의 행자는 낮은 사람에게는 낮은 설법을 합니다. 비록 남들이 자신의 법을 듣고 하찮은 사람이라고 명예가 실추되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이 대승행자의 자세인 것입니다. 4) 방편은 대승의 정신 아무리 뛰어난 가르침이라 할 지라도 그것을 실현하고 펴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적절한 상황에 맞는 방편이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방편이 있을 때만이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편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승불교의 입장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는 사람의 수준에 맞출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래서 갖가지 방편은 대승행자와 보살에게 가장 절실한 것입니다. 보살은 적절한 방편으로 중생들에게는 다가설 때만이 본원(本願)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성취하고 구현해 나갈 방법이 없다면 허구에 불과한 것입니다.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보살의 본원(本願)은 방편을 통해서 성취될 때 완성되는 것이며, 목표는 달성될 때 그 가치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방편이라는 것이야말로 모든 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보살의 서원이 서린 것이다. 자기식대로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다 따라오지 못하면 어리석다고 말하는 지도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자신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스승과 지도자에게 어리석은 학생이란 없는 것입니다. 그에겐 방편의 지혜로운 무기가 있으므로 말입니다. 자 우리 다같이 갖가지 지혜로운 방편을 얻읍시다. 4) 뜻대로 성취하는 것 불교적 관점에서 볼 때 소원성취는 어떤 절대자의 권능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마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는 곧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이란 번뇌에 물든 세속 심이 아니라 본래 청정한 마음을 말합니다. 번뇌에 때묻지 않은 마음(眞心)에서 비롯되는 소원일 때 비로소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basistitle3.gif생활불교 경문..천수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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