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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란 무엇인가?

五蘊 오온과 無我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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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2,487회 작성일 14-12-27 18:06

본문

오온五蘊과 무아無我
 
 
 
 
 
1. 위빠사나 수행의 지도地圖
 
1) 위빠사나 수행은 오온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이해하는 작업입니다.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괴로움은 오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오온을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알기 때문에 생긴 모든 집착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의 소멸은 오온을 바르게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2) 위빠사나 수행은 항상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서, 몸과 마음의 고유한 특성, 조건적 특성, 보편적 특성을 실제로 아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은 단지 색온色蘊, 수온受蘊, 상온想蘊, 행온行蘊, 식온識蘊의 모임이며, 이것을 조절하는 실체는 없고, 다만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정신과 물질의 현상만 있다고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 몸과 마음을 나로 생각하는 유신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3) 실제로 마음은 조건에 의해 일어나며, 한 순간에 하나의 마음뿐이고, 그 순간의 정신과 물질을 이끌고, 그들과 함께 일어났다 함께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오온 안에 나라는 실체는 없고, 그런 오온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4) 오온을 일어나게 하는 조건이란 지금까지 형성한 업의 힘입니다. 매순간 감각 기관과 감각 대상이 접촉해서, 그때 함께 일어난 느낌과 생각에 따라 그 자리에서 선하거나 불선한 말과 행위를 합니다. 이런 행위의 힘은 반드시 새로운 오온이라는 과보를 가져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매순간 업의 과보로 어떤 대상과 부딪히고, 다시 선하거나 불선한 말이나 행동을 하여 새로운 업을 짓고, 그것이 다시 원인이 되어 새로운 결과를 경험하는 인과법因果法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업의 힘은 생사윤회를 지속시키는 힘입니다.
 
5) 위빠사나의 알아차림은 지금 과보로 어떤 대상과 부딪힐 때, 지금 일어나는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선한 마음을 알아차려서 선한 마음으로 바꾸어, 바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새로운 업의 힘을 만듭니다.
 
수행자의 알아차림은 현재를 수용하기 때문에 이미 행한 업의 과보는 당당히 받게 하고, 새로운 불선업을 만들지 않게 합니다. 이것은 과거의 업을 알아차림으로 소멸하고, 지금 새로운 선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괴로움을 소멸하는 8정도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2. 오온에 대한 이해
 
1) 색온色蘊은 물질의 무더기입니다
물질은 모양과 형태를 갖추고 공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물질은 감각기관을 통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 물질은 외부의 조건에 의해 매순간 변형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수행자가 몸에서 지수화풍 사대 요소를 알아차리고, 이어서 그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은 몸이 조건에 의해 생멸하는 물질일 뿐, 내 몸이라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위한 것입니다.
 
몸은 자신의 업에 의해 얻어진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모여서 생긴 물질의 무더기입니다. 이 물질의 무더기는 조건에 의해서 끊임없이 성장과 쇠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합니다. 그러므로 변할 수밖에 없는 물질을 내 것으로 집착하면 그것이 괴로움입니다.
 
2) 수온受蘊은 느낌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나면 그것을 아는 마음과 함께 반드시 느낌이 생깁니다. 이것은 수온의 작용입니다. 이 느낌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이때 즐거운 느낌은 탐욕으로, 괴로운 느낌은 성냄으로, 덤덤한 느낌은 그 느낌에 안주하는 어리석음으로 발전합니다.
 
그래서 느낌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번뇌를 일으키고, 번뇌에 물든 마음은 불선한 행위로 연결되고, 이어서 그 업의 과보로 괴로움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느낌은 괴로움입니다.
 
하지만 느낌을 단지 느낌으로 알아차리면, 느낌은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 사라진 한순간의 정신적 현상으로 법이며, 느낌을 느끼는 자아가 없음을 통찰하고, 느낌으로 인한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념처는 느낌을 단지 법으로 알아차려서, 느낌에서 번뇌로 넘어가지 않고 느낌의 성품을 통찰하는 수행입니다.
 
3) 상온想蘊은 인식, 지각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나면 자신만의 경험에서 생긴 인식, 지각, 표상작용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상온의 작용입니다. 이 상온은 자기만의 견해이므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상온은 조건에 의해 일어난 한 개인의 정신적 현상이라고 알고, 자신의 견해를 집착하지 않아야 괴롭지 않습니다.
 
수행자가 생각을 알아차리면 즉시 그 생각은 사라집니다. 이렇게 한순간 생멸하는 생각들을 알아차리면, 자신의 고정관념에서 생기는 번뇌들을 막을 수 있습니다.
 
4) 행온行蘊은 의지작용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만나서 대상을 알 때, 함께 일어난 느낌과 생각에 따라 어떤 의도가 일어나고, 이 의도에 의해 생각과 말과 행위를 합니다. 그러므로 행온은 업을 생성하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행온은 모두 50가지이며, 다른 것과 같아지는 마음의 작용 11가지, 깨끗한 마음의 작용 25가지, 불선한 마음의 작용 14가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작용들은 선하거나 불선한 업을 생성하고, 이 업의 과보로 새로운 정신과 물질이 생깁니다.
 
사람이 죽을 때 반드시 자신이 행한 업을 가지고 갑니다. 수행자는 항상 불선업을 알아차려 선업을 행하며, 이런 선업조차도 알아차려 집착하지 않으면, 수승한 지혜의 업을 가지고 새로운 생을 시작합니다.
 
5) 식온識蘊은 아는 마음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나면 그것을 아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와 같이 아는 마음은 근‧경‧식의 촉이라는 조건에 의해 일어납니다. 마음은 오온 중 하나로써, 지금 부딪친 대상과 함께 찰나 생멸할 뿐 두 순간을 머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조건에 의해 생멸하는 마음을 조종할 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몸과 마음을 ‘나’라고 알고 살았기 때문에 대상을 아는 마음을 내 마음이라고 집착합니다. 이것이 유신견이며, 유신견은 매순간 갈애를 일으키고, 이어서 집착과 업을 생성하여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만듭니다.
 
 
3. 오온의 실체 없음 - 무아無我
 
우리는 매순간 조건에 의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정신과 물질을 ‘나’라고 집착하며 삽니다. 오온은 윤회가 끝나는 완전한 열반을 얻을 때 까지 항상 있습니다. 하지만 오온은 조건 지어진 것으로 무상하고, 괴로움이며, 실체가 없습니다. 수행자가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가 생기면, 여기에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무아를 바르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실체 없다는 말은 ‘나’라는 존재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 여기에 정신과 물질은 분명히 있지만, 그 정신과 물질은 찰나 생멸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로, 두 순간을 지속하는 실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분명 실체는 없지만 무명과 갈애가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정신과 물질의 흐름은 여전히 지속됩니다. 이런 윤회의 과정을 막는 방법은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오온에서 실체가 없음을 보고, 오온에 대한 갈애를 제거하는 것뿐입니다.
 
위빠사나의 지혜는 몸과 마음에서 ‘나’라는 관념을 제거하고, 몸과 마음을 오온이라는 법으로 해체하여 봅니다. 오온을 법으로 보면, 오온은 무상․고․무아의 성품을 가졌으며, 오온을 집착할 것이 없는 혐오스런 것으로 알아 오온에 대한 갈애가 소멸됩니다. 바로 갈애의 소멸이 괴로움의 소멸이며, 괴로움의 소멸이 불교의 해탈입니다.
 
지금까지는 오온의 참 성품을 몰라서 ‘나’라고 집착을 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사념처 위빠사나 수행을 해서 오온의 성품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집착을 제거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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