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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란 무엇인가?

용수보살과 圓融無碍(원융무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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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2,216회 작성일 17-06-15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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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붓다로 추앙받는 용수(니가르주나) 보살이 붓다 입멸이후 소승인 설일체유부의
법의 실체성을 인정하는 오류를 바로잡고 부처님의 불법을 복원, 계승하고자 반야사상
중론을 펼치게 되면서,  
 
대중운동의 확산으로 대승불교가 태동하였으며, 이후 유식론을 거쳐 대승불교의 꽃인
공가중 삼제의 원융무애한 화엄사상으로 꽃을 피우게 되었다.
 
오늘은 불교이 꽃인 공,가,중 삼제의 원융무애 사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용수보살의 중론은 실재하지 않는 현상계를 연기하는 세계로 회복시켜 놓았는데,
 
현상은 독립성을 갖고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상호 의존적
으로 연기하여 인연생기 함으로 空이며, 공이므로 환영에 불과하나. 연기하여 생기
하니, 가명(유)으로서 중도라고 표현하며,
 
현상을 전적으로 부인하지 않은 것은 실체는 없지만 연기의 세계이기 때문이며, 이를
공식으로 나타내면 연기 = 공 = 가 = 중도로서 나타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의 감각에 보이고 나타나는 일체는 연기이며, 공하기에 가명(유)로서
존재의 실상은 중도라는 것이다.
 
중도는 색과 공이 별개가 아니라 현상(가)속에 공과 중이, 공속에도 가와 중이, 중속에도
가와 공이 함께 존재하는 상즉상입하여 전체가 하나로서 전체와 부분이 원융무애 하다는
것이다.
 
붓다께서도 지혜로서 연기의 생기를 관찰하면 없다할 수 없고, 멸로 관찰하면 있다할 수
없다고 중도를 말씀하셨다.
 
화엄사상은 바로 붓다의 중도와 용수의 공가중 삼제를 계승발전하여 화엄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공은 승의(진)제, 가는 세속제로서 세속제와 승의제가 상의상즉
하여 중도제로서 삼제가 원융무애함으로, 모든 꽃이 피어 장식한다는 잡화엄식사상
으로서 줄여서 화엄이다.
 
이사무애는 본체와 사물이 원융하고, 사사무애는 사물과 사물 또한 상의상즉하여 원융
무애하다는 것으로서 원융이란 원만하여 서로 융섭한다는 뜻이며, 무애는 걸림, 장애
가 없다는 뜻으로 같은 뜻의 반복이다.
 
자. 여기서 원융무애의 화엄사상이 왜 대승의 꽃인가 하면, 초기불교는 현상은 연기
세계로 무상하며, 고통이고, 무아이니 속세를 등지고 번뇌를 소멸하여 열반을 성취
하는데 그쳤고,
 
대승의 초기는 소승 아비달마의 오류를 지적하며 반야사상으로 연기법의 중도사상
을 복원하였으나, 현상이 실체없음의 공사상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허무주의로 빠지게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였으며,
 
이에 요가 수행자들의 치열한 탐구로 유식론에 의한 만법유식, 유식무경 사상에 의한
공이 곧 자성청정한 본래마음으로서 마음뿐, 따로없음의 불이법으로 불성이 긍정화 되었고,
달마가 전한 직지인심의 선종도 유식론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6조혜능에 의한 조계종을
탄생 시켜, 수많은 선 스타들을 배출하여 오늘날 한국에도 조계종의 법맥을 이어오고 있으며,​
일체유심조 사상이 활짝 꽃피어 공가중 삼제가 이사무애, 사사무애의 원융무애로 발전되어 
화엄사상으로 대승불교의 꽃을 피우게 된것이다. 
 사물사물이 중중무진 연기되어 상즉상입하여 원융무애하기에 서로 개체성을 가지면서도
전체로서 조화로울 수 있는 것이다.
 
가족이 가족일 수 있는 것은 아버지는 아버지의 역할을 충실히 할때 가정이 유지되며,
어머니는 어머니 역할을, 자녀는  자년 역할을 버리거나 망각하지 않고 충실히 이행할 때,
조화롭고 원만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현상이 실재한다고 생각하는 범부는 늘 갈동과 욕탐과 번뇌에 시달릴 것이며, 공에만 치유쳐
연기적 현상마저 무시하고, 속세를 등지려 한다면 조화롭지 못하고,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며, 
세상은 혼란과 무질서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이 될것이다.
 
세상이 이토록 험악하고 갈수록 개인주의가 만연하여 말세현상인 이유는 나와 세상이
실재한다는 전도된 착각 때문인 탓도 있지만, 현상계는 실체가 없어 공하니 의미도 뜻도
없어 무시하고 버리려 하는 공에 치우진 탓도 있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현상의 본질인 진공을 알고, 공이 곧 연기하는 묘유의 세계임을 여실지견할
때, 중도의 실상에서 현상에도, 공에도 치우침 없이 공가중 삼제가 원융무애하여, 서로 중중무진
영향을 주고 받으며, 차별속에서 평등하고, 평등속에서 차별이 공생하는 조화로운 화엄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꾸며가기 위해서는 존재의 실상이 중도임을 깨달은 보살들이
넘쳐나야 가능할 것이다.
 
깨달아 공, 열반에 머물지 말고 정진하여 원융애한 중도를 확철히 깨쳐야 보살이며, 참나의
덕성인 육바라밀이 펼쳐질때 조화롭고 아름다운 정토가 지금 여기에서 펼쳐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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