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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淨法身 비로자나불 華嚴敎의 本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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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리 불자란 무엇인가?

불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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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1,729회 작성일 14-12-0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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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동안거 결제법어
 
難取難捨 受放自在 (난취난사 수방자재)
無聲無色 超出三界 (무성무색 초출삼계)
 
禪에서는 버릴 것도 취할 것도 없는 초탈한 입장에서도
무한히 부정·긍정을 하고 다시 투과하고 투과하는,
그래서 전체를 포용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합니다.
또한 낱낱 가운데도 그 입장을 포함한 무애자재 활발발(活鱍鱍) 그자체입니다.
 
하물며 교리행과 문사철(敎理行果 文史哲)이리오. 일체가 뭉쳐진 하나에서 백천만억 일체를 나투는 선이여!..
그야 말로 화원서방(畵圓書方)도 칠채빈빈(七彩彬彬)도 아니요 선교이사(禪敎理事)도 아니고 범성미각(凡聖迷覺)도 아니요.
소립자와 미립자도 아니고 힉스도 아니고, 객진번뇌 바로 그것들이기도 합니다.
 
갑오년 동안거 날인 오늘 이 자리에서 또 필요 없는 말을 합니다.
이번 철에는 깨달으라고 강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깨달았느냐고 묻고 싶지도 않습니다. 깨닫지 못했느냐고 는 더더욱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은 각자가 알아서 할 일이요. 깨닫지 못한 내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가당치 하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철 그냥 평안하게 정진하다 가세요.
 
지난날 나는 깨닫겠다고 문걸어 잠그고 코피 쏟으며 앉아있었던 적도 있었고, 깨달았다고 하는 분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나는 어떤 감동도(몰라서 인지)없었습니다. 그러나 승·속간에 나의 선지식들은 지천에 청풍으로 계셔서 그런대로 숨 쉬고 일하며 살아 갈 만 하였습니다.
 
소위 번뇌라는 것들이 본각을 가리우고 본각성이 번뇌를 뒤업어 엎치락 뒤치락 앞 물결 뒤파도로 셀 수 없는 파장으로 돌고 도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그 속에 원시농경시대 산업우주시대 지식정보시대를 지나고 지금은 기계의 검색만으로도 모든 앎과 삶의 내용을 쉽게 활용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기계와 지식이 가르치는 데로 세상은 되지 않고 오직 최초의 한 생각(?)을 일러주신 불조의 가르침인 생각하는 힘, 진실자기(眞實自己)이어야만 생명의 살아있는 세상이요. 미래의 양식이요.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치도록 힘들게 가는 길에 깨달음의 장애환자가 되기도하고, 각종 선원을 훓고 다니며 정진하는 대중으로 살면서 중독된 병 때문에 이러 저러한 비방과 건강치 못한 비판도 받습니다.

어쩌면 이치(교리)를 배워서 알고, 그래서 답을 알고 가는 길이라 더더욱 힘들지만, 그렇기에 이 길을 용맹스럽게 가야합니다.
다만 선방에서 교리에서 선어록에서 답을 구하려 한다면 점점 어렵게 됩니다. 완전히 열려있는 수행하기 어려운 이 세상에 어렵게 힘들게 가다보면, 흔들리더라도, 청정치 못한 이들의 이익만 더해주는 오류를 범하는 일에 속을 지라도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정히 않되는 길 병들고 늙고 힘들다면 이미 배워서 알고 있는 대승교리의 내용을 사회전체, 특히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실천해 간다면 깨달음을 향해가는 수행자로서 최선을 다하는 길입니다. 하지만 억천만사가 수행의 연장선인 행도득작불(行道得作佛)임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비구(니)승 젊은 날들이 수행자로서,
일구화두수좌의 젊은 날이 허세가 되지 않기 위해 청정 무·탈속에 가행정진 하십시오.
 
갑오년 동안거 결재일
고불총림 방장 학봉 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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