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보타산 낙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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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타산(普陀山, Putuoshan(푸투오샨))
보타산은 절강성 녕파시 동쪽 바다 가운데에 위치한다. (동경112.5℃, 북위30℃) 주산 군도 5백여개의 섬 중의 작은섬으로, 남북길이 8.6km, 동서폭0.98~4.3km, 해안선 길이는 33km, 총면적12.76㎢, 최고점은 불정산 보살정으로 해발 291.3m이다. 산들은 높지 않지만 기세가 웅장하고 물은 깊지 않지만 파도소리 요란하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하늘을 떠받고 있어 특이한 풍경을 이룬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절강성의 보타산(普陀山)은 지장보살을 모신 안휘의 구화산(九華山), 보현보살을 모신 사천성의 아미산(峨眉山), 문수보살을 모신 오대산(五臺山)과 더불어 중국 4대 불산 중의 하나로 '중국 제1 불교 왕국', '해천 불교 왕국', '해상 선상', '남해 불교 왕국', '해상 봉래절'로 불리워진다. 옛 시인들도 '산과 호수의 으뜸은 서호에 있고, 산과 강의 명승은 계림에 있고, 산과 바다의 절경은 보타에 있다'고 노래했다.
보타산은 "보타낙가산"의 준말로, 보타산과 낙가산 두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여졌다. 이는 불경에서 나온 이름으로 백화산, 광명산이라고도 부르며, 남해보타산이라고 부른다.
보타산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당나라 초기로, 일본 스님 혜악이 보타산에 처음으로 관세음보살상을 모셨다고 한다. 당함통 3년(862년) 혜악스님이 오대산의 관세음보살상을 일본으로 모셔가는데 영파를 떠난 배가 매령산에 도착했을 때 태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져 하는 수 없이 매령산 조음동에서 내렸다. 매령산의 불자 장씨부인은 쌍봉산 기슭의 자택 별실을 내어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혜악은 관세음보살이 일본으로 가기 싫어한다고 생각되어, 매령산에 관음원을 짓고 불교를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송나라 초에는 매령산을 보타산으로 개칭하였고, 송태종 3년에 보제사의 전신인 오대원광사를 지었는데 이때부터 보타산이 관음보살의 도량이 되었다. 1731년 은 7만냥으로 보제, 법우사를 건축하였다. 청나라 건륭년간에는 보타산은 3개의 큰 사원과 88개의 암자, 148개의 기도원이 있고, 승려와 비구니는 모두 2,000여명에 달했으며, 현존하는 주요사찰로는 보제선사, 법우사, 혜제사 등이 있다.
유명한 보타 10경은 천보금사, 단고성적, 연지야월, 이동조음, 보타문종, 조양용일, 광희설제, 화정운도, 보타석양, 해만춘효 등이다.
※ 보타산을 가는 방법
보타산을 가는 가장 편하고 주된 방법은 상해나 항주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상해에서 매일 한번 있는 주산군도의 유명한 어항인 심가문(沈家門)으로 향하는 여객선을 이용해 먼저 심가문으로 가서 다시 여객선을 갈아타고 보타산에 갈 수 있다. 상해에서 심가문까지는 143해리이고, 심가문에서 보타산까지는 149해리로 약 12시간이 소요된다. 저녁 7시에 출발하는 이 배는 다음날 8시 정도면 보타산에 도착한다.
또 보타산공항이 1997년에 건설되어 있어서 북경, 하문, 주해, 복주, 항주, 온주 등지에서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고, 앞으로 남경, 청도, 광주, 심천, 무한 등지까지 그 노선을 확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보타산의 국내공항 역할을 하고 있는 주산보타산공항(舟山普陀山机場)은 주산에 위치한 곳으로, 서쪽으로는 유명한 어항인 심가문에서 2km 떨어져 있으며, 보타산과는 북쪽으로 2.5km 떨어져 있다. 공항에서 보타산까지 5분마다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서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공항은 총 3,000ha의 면적에, 넓이 45m, 높이 2,500m의 활주로가 건설되어 있다. 또한 고항청사는 130만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 보타산에서 규모가 제일 큰 고찰, 보제사(普濟寺, 푸지스)
속칭 전사(前寺)라고 칭하며, 보타산에서 규모가 제일 큰 고찰로 10전, 12루, 7당, 4문, 300여칸의 집으로 구성되어있다. 보제사는 북송 원풍 3년(1080)에 건립되어 보타관음사로 명명한 것을 청나라 강희 38년(1699)에 수건하고 이름을 보제사라 했다. 보제사의 건물은 중축선에 천왕전, 원통보전, 장경루, 방장전이 있고 양측에 가람전, 나한전, 선당, 승덕당, 내서당 등이 있으며, 앞에는 종고루와 해인지가 있다.
해인지는 관세음보살이 방생하던 호수로서 연꽃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연화지, 방생지로도 불린다. 원통보전은 보제사의 중심 건물로서 대웅전에 해당한다. 8.8m 높이의 관음보살상을 모셨으며 양측에 32존의 관음상을 만들었다. 양측에는 배전이 있는데, 동쪽은 문수전, 서쪽이 보현전이다.
◈ 보타산 제2의 사원, 법우사(法雨寺, 파위스)
보타산 제2의 사원으로, 보타산 백화정의 왼쪽 금병산 광희봉 밑 해변가에 위치하며, 부지 33,408㎡, 남북 174㎡, 동서폭192㎡, 건축면적 8,800㎡이다. 천왕전, 옥불전, 구룡 관음전, 어비전, 대웅보전, 방장전, 인광 법사 기념당 등 6개 사원으로 구성되었으며, 목탁, 염불, 종소리가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 보타산 제3의 사찰, 혜제사(慧濟寺, 훼이지스)
불정산의 정상에 있어서 불정산사, 또는 보살정이라고도 하며, 보타산 사찰 중에서 유일하게 관음보살을 모시지 않고 석가모니불을 모신 사찰이다.
보타산 제3의 사찰로 명대 승려 원혜가 창건했으며 부지 약20묘, 천왕전, 대웅보전, 옥황전, 재루 등이 산세에 따라 건축되어 건물들의 분포가 규칙이 없어 강남원림의 색채를 띠고 있다. 구름이 낀 날에 혜제사에 오르면 흰구름이 온몸을 감돌아 마치 선경에 온 느낌이 난다. 정문 앞에는 두 종류의 나무를 심어놓았는데 그중 아이력수(나무모양새가 백조의 계관같다해서 얻은 이름)는 중국에서도 유일한 나무이다.
보타산은 역대로 송대의 명승 진갈선사를 비롯하여 일산일녕국사, 죽선법사, 인광법사, 태허법사, 원조 법사 등의 유명한 명승을 배출하였다.
◈ 낙가산-낙가산을 가지 않으면 보타산을 오지 않은 것과 같다
낙가산은 보타산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섬으로서 보타산과 함께 보타낙가산이라고도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관음보살의 도량이 최초에는 낙가산이었다고 하므로 불자들은 '낙가산을 가지 않으면 보타산을 오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한다. 그 원인은 낙가산이 최초의 관음보살도량으로 된 것 뿐만 아니라 낙가산에도 독특한 산세로 섬 전체가 하나의 불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면적은 0.8㎢밖에 안 되지만 낙가산의 산세가 마치 한 존의 대불상이 연꽃 위에 누워있는 것처럼 보여 섬 전체가 하나의 불상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면 불상의 머리, 목, 가슴, 배, 발 등이 마치 조각해 놓은 듯 분명히 드러난다
보타산은 절강성 녕파시 동쪽 바다 가운데에 위치한다. (동경112.5℃, 북위30℃) 주산 군도 5백여개의 섬 중의 작은섬으로, 남북길이 8.6km, 동서폭0.98~4.3km, 해안선 길이는 33km, 총면적12.76㎢, 최고점은 불정산 보살정으로 해발 291.3m이다. 산들은 높지 않지만 기세가 웅장하고 물은 깊지 않지만 파도소리 요란하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하늘을 떠받고 있어 특이한 풍경을 이룬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절강성의 보타산(普陀山)은 지장보살을 모신 안휘의 구화산(九華山), 보현보살을 모신 사천성의 아미산(峨眉山), 문수보살을 모신 오대산(五臺山)과 더불어 중국 4대 불산 중의 하나로 '중국 제1 불교 왕국', '해천 불교 왕국', '해상 선상', '남해 불교 왕국', '해상 봉래절'로 불리워진다. 옛 시인들도 '산과 호수의 으뜸은 서호에 있고, 산과 강의 명승은 계림에 있고, 산과 바다의 절경은 보타에 있다'고 노래했다.
보타산은 "보타낙가산"의 준말로, 보타산과 낙가산 두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여졌다. 이는 불경에서 나온 이름으로 백화산, 광명산이라고도 부르며, 남해보타산이라고 부른다.
보타산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당나라 초기로, 일본 스님 혜악이 보타산에 처음으로 관세음보살상을 모셨다고 한다. 당함통 3년(862년) 혜악스님이 오대산의 관세음보살상을 일본으로 모셔가는데 영파를 떠난 배가 매령산에 도착했을 때 태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져 하는 수 없이 매령산 조음동에서 내렸다. 매령산의 불자 장씨부인은 쌍봉산 기슭의 자택 별실을 내어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혜악은 관세음보살이 일본으로 가기 싫어한다고 생각되어, 매령산에 관음원을 짓고 불교를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송나라 초에는 매령산을 보타산으로 개칭하였고, 송태종 3년에 보제사의 전신인 오대원광사를 지었는데 이때부터 보타산이 관음보살의 도량이 되었다. 1731년 은 7만냥으로 보제, 법우사를 건축하였다. 청나라 건륭년간에는 보타산은 3개의 큰 사원과 88개의 암자, 148개의 기도원이 있고, 승려와 비구니는 모두 2,000여명에 달했으며, 현존하는 주요사찰로는 보제선사, 법우사, 혜제사 등이 있다.
유명한 보타 10경은 천보금사, 단고성적, 연지야월, 이동조음, 보타문종, 조양용일, 광희설제, 화정운도, 보타석양, 해만춘효 등이다.
※ 보타산을 가는 방법
보타산을 가는 가장 편하고 주된 방법은 상해나 항주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상해에서 매일 한번 있는 주산군도의 유명한 어항인 심가문(沈家門)으로 향하는 여객선을 이용해 먼저 심가문으로 가서 다시 여객선을 갈아타고 보타산에 갈 수 있다. 상해에서 심가문까지는 143해리이고, 심가문에서 보타산까지는 149해리로 약 12시간이 소요된다. 저녁 7시에 출발하는 이 배는 다음날 8시 정도면 보타산에 도착한다.
또 보타산공항이 1997년에 건설되어 있어서 북경, 하문, 주해, 복주, 항주, 온주 등지에서 항공편을 운항하고 있고, 앞으로 남경, 청도, 광주, 심천, 무한 등지까지 그 노선을 확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보타산의 국내공항 역할을 하고 있는 주산보타산공항(舟山普陀山机場)은 주산에 위치한 곳으로, 서쪽으로는 유명한 어항인 심가문에서 2km 떨어져 있으며, 보타산과는 북쪽으로 2.5km 떨어져 있다. 공항에서 보타산까지 5분마다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서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공항은 총 3,000ha의 면적에, 넓이 45m, 높이 2,500m의 활주로가 건설되어 있다. 또한 고항청사는 130만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되어 있다.
◈ 보타산에서 규모가 제일 큰 고찰, 보제사(普濟寺, 푸지스)
속칭 전사(前寺)라고 칭하며, 보타산에서 규모가 제일 큰 고찰로 10전, 12루, 7당, 4문, 300여칸의 집으로 구성되어있다. 보제사는 북송 원풍 3년(1080)에 건립되어 보타관음사로 명명한 것을 청나라 강희 38년(1699)에 수건하고 이름을 보제사라 했다. 보제사의 건물은 중축선에 천왕전, 원통보전, 장경루, 방장전이 있고 양측에 가람전, 나한전, 선당, 승덕당, 내서당 등이 있으며, 앞에는 종고루와 해인지가 있다.
해인지는 관세음보살이 방생하던 호수로서 연꽃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연화지, 방생지로도 불린다. 원통보전은 보제사의 중심 건물로서 대웅전에 해당한다. 8.8m 높이의 관음보살상을 모셨으며 양측에 32존의 관음상을 만들었다. 양측에는 배전이 있는데, 동쪽은 문수전, 서쪽이 보현전이다.
◈ 보타산 제2의 사원, 법우사(法雨寺, 파위스)
보타산 제2의 사원으로, 보타산 백화정의 왼쪽 금병산 광희봉 밑 해변가에 위치하며, 부지 33,408㎡, 남북 174㎡, 동서폭192㎡, 건축면적 8,800㎡이다. 천왕전, 옥불전, 구룡 관음전, 어비전, 대웅보전, 방장전, 인광 법사 기념당 등 6개 사원으로 구성되었으며, 목탁, 염불, 종소리가 파도소리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 보타산 제3의 사찰, 혜제사(慧濟寺, 훼이지스)
불정산의 정상에 있어서 불정산사, 또는 보살정이라고도 하며, 보타산 사찰 중에서 유일하게 관음보살을 모시지 않고 석가모니불을 모신 사찰이다.
보타산 제3의 사찰로 명대 승려 원혜가 창건했으며 부지 약20묘, 천왕전, 대웅보전, 옥황전, 재루 등이 산세에 따라 건축되어 건물들의 분포가 규칙이 없어 강남원림의 색채를 띠고 있다. 구름이 낀 날에 혜제사에 오르면 흰구름이 온몸을 감돌아 마치 선경에 온 느낌이 난다. 정문 앞에는 두 종류의 나무를 심어놓았는데 그중 아이력수(나무모양새가 백조의 계관같다해서 얻은 이름)는 중국에서도 유일한 나무이다.
보타산은 역대로 송대의 명승 진갈선사를 비롯하여 일산일녕국사, 죽선법사, 인광법사, 태허법사, 원조 법사 등의 유명한 명승을 배출하였다.
◈ 낙가산-낙가산을 가지 않으면 보타산을 오지 않은 것과 같다
낙가산은 보타산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섬으로서 보타산과 함께 보타낙가산이라고도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관음보살의 도량이 최초에는 낙가산이었다고 하므로 불자들은 '낙가산을 가지 않으면 보타산을 오지 않은 것과 같다'고 한다. 그 원인은 낙가산이 최초의 관음보살도량으로 된 것 뿐만 아니라 낙가산에도 독특한 산세로 섬 전체가 하나의 불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면적은 0.8㎢밖에 안 되지만 낙가산의 산세가 마치 한 존의 대불상이 연꽃 위에 누워있는 것처럼 보여 섬 전체가 하나의 불상을 이루고 있다. 멀리서 보면 불상의 머리, 목, 가슴, 배, 발 등이 마치 조각해 놓은 듯 분명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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