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와 위파사나 (묘원스승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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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한국 명상원의 묘원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12연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교재를 가지고 법문을 하겠습니다.
연기는 부처님밖에 모르는 매우 난해한 법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이것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차츰 공부를 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연기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은 모든 것은 원인이 있어서 생긴 결과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으므로 그냥 들으시면 됩니다.
자, 오늘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교재의
제 2장, 51쪽부터 공부를 하시겠습니다.
연기는 부분이 있고, 연결이 있고, 요소와 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책을 가지고 계신 분들은 도표를 참조해 주십시오.
그리고 책이 없으신 청취자들은 그냥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 12연기의 도표 중앙을 보면
무명과 갈애라는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은 ‘모른다’와 ‘바란다’입니다.
그래서 세속의 연기에서는 모른다는 것과 바라는 것,
이 힘으로 연기가 돌아갑니다.
수행자는 바로 이것을 아는 것입니다.
바로 어리석음과 갈애가 연기를 회전하기 때문에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이 모른다와 갈애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연기는 회전하지 않게 됩니다.
자, 두 번째는
두 가지의 성제인 집제와 고제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때 성제는 성스런 진리라는 뜻과 함께
성인이 되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진리를 성제라고 합니다.
사실 연기가 일어나는 연기에서는
집제와 고제 두 가지밖에 없습니다.
집제라는 것은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이냐? 와
괴로움이 있다는 사실이 고제입니다.
그래서 연기는 굴레에 대한 논의이기 때문에
두 가지 성제와 또 다른 출세간의 성제인,
멸제와 도제가 있다는 사실을 앞으로 공부하시겠습니다.
세 번째, 연기에는 네 가지 부분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과거의 원인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과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거에 의해서 만들어진 현재의 결과의 연속이 있습니다.
이런 현재의 결과의 연속은 현재 및 미래의 원인의 연속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현재 미래의 원인의 연속이 다시 미래의 결과로 연속됩니다.
이처럼 연기는 일정한 룰에 의해서 원인과 결과라는,
현재, 과거, 미래가 함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연기는 스무 가지의 요소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때 요소라고 하는 것은 사물의 성립을 위해서 필요한 근본요소를 말합니다.
이 스무 가지 요소를 살펴보면
과거의 원인의 요소는 무명, 행, 갈애, 집착, 업의 생성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현재 결과의 요소는 식, 명색, 육입, 촉, 수라는 것입니다.
이때 수(受)는 느낌입니다.
세 번째, 현재 및 미래원인의 요소는 갈애, 집착, 업의 생성, 무명, 행입니다.
마지막 미래의 결과의 요소는 식, 명색, 육입, 촉, 수입니다.
다시 말하면 과거에 어리석어서 행위를 한 결과로,
바라가지고 집착해서 업을 생성한 것 때문에 현재 오온을 가지고 있고,
다시 이 또 오온을 가지고 과거에 했던 갈애, 집착, 업의 생성, 무명, 행을 되풀이해서
미래에도 오온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인과 결과입니다.
다음에는 연기에는 열두 가지의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최초에는 무명으로부터 시작해서 행으로,
행을 원인으로 식이 일어나고,
식을 원인으로 명색이 일어나고,
명색을 원인으로 육입이 일어나고,
육입을 원인으로 접촉이 일어나고,
접촉을 원인으로 느낌이 일어나고,
느낌을 원인으로 갈애가 일어나고,
갈애를 원인으로 집착이 일어나고,
집착을 원인으로 업의 생성이 일어나고,
업의 생성을 원인으로 생, 태어남이 일어나고,
태어남을 원인으로 늙어서 죽는 노사가 있습니다.
다음에 연기는 시간으로 보면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과거, 현재, 미래입니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이지만
수행자는 항상 현재에 머물러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다음에 12연기는 세 가지 굴레에 의해서 회전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번뇌의 굴레가 일어나서 업의 굴레를 일으키고,
업의 굴레가 과보의 굴레를 일으켜서 연기가 회전합니다.
탐진치라는 번뇌가 있어서 행위를 해서, 행위가 다시 과보를 일으키고,
이 과보가 다시 번뇌를 일으키고 하는 악순환을 연기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연기의 고리에서 탈출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윤회하는 세속의 모든 사람들은
이런 끊임없는 연기의 고리 속에서,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 12연기는 세 가지의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과거의 원인과 현재의 결과입니다.
두 번째는 현재의 원인과 현재의 결과입니다
세 번째는 현재, 미래의 원인과 미래의 결과입니다.
이때 노사에서 무명으로 넘어오지 않는 것은
늙어서 죽으면 그 마음이 끝나기 때문에
연결고리는 세 개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오온이 사라지고, 새로운 오온을 일으키는 것을 통찰하시고,
계속해서 생성되고 소멸하는 오온의 연속적인 인과의 연기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책의 저자이시며 법문을 해주신 모곡 사야도께서는
오온을 주의 깊게 관찰하신 뒤에 알기 어려운 오온을 쉽게 풀어서
여러분들이 보시는 교재의 도표를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이 도표를 가지고 공부하시면
한결 여러분들이 연기를 숙지하시고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연기라는 것이 특별한 게 아니고 바로 자신의 오온이라는 것입니다.
연기는 우주적 연기가 아니고 한 인간의 정신과 물질이
원인과 결과로 지속된다는 것에 국한합니다.
둘째는 이 오온은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만 있다는 것입니다.
오온은 항상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 마음은 일어났다 사라지고,
그리고 물질도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과정만 있습니다.
셋째, 이렇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은 불만족이고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항상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상(無常)은 우리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줍니다.
넷째, 불만족과 괴로움은 삼법인의 하나인 고제(苦諦)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통찰력을 가지고 바르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할 오온의 본질이며,
이렇게 바르게 이해하고 인지했을 때라야 비로소 잘못된 견해인
유신견과 상견, 단견 등의 사견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오온이 나타내고, 드러내며, 의미하고, 가리키는 바를
온전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모곡 사야도께서는 이런 게송을 읊으셨습니다.
“무명과 갈애가 중심에서 회전시켜 명색을 일으킨다.
나무로부터 씨앗이, 씨앗으로부터 나무가 생기듯이
집착과 업의 생성으로 인하여
동일한 인과의 연속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명색으로 인하여 업이 일어난다.
창조주 혹은 위대한 브라마에 의해서
이들 연속적인 인과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지혜로서 인식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동일한 인과의 연속이라는 것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것은,
한 인간의 생명이 조건에 의해서 반복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게송이 있습니다.
“뿌리는 둘,
진리도 둘,
무리는 넷,
연결고리는 모두 열둘,
세 겹의 굴레와 세 개의 연결,
시간은 세 가지,
전체 요소는 스무 가지.”
이것이 연기의 전부입니다.
여러분들!
연기가 매우 어려우시죠?
그런데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께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한때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께 연기법이 깊이 있고 심오한 것이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연기법은 실로 심오하며 그 나타난바 그대로 깊은 뜻이 있으니
그렇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세 차례나 말씀하셨습니다.
자, 아난다는 “세존이시여 연기법이 심오합니다. 너무 심오합니다”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여! 그렇게 말하지 말아라. 연기법이란 실로 심오하다”라고
세 번이나 반어법을 쓰셨는데,
그 말의 뜻은 우리가 “연기법이 심오하다! 심오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 자기의 견해이지 그 심오한 깊은 뜻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연기는 단순히 무명을 원인으로 행이 일어난다는 것을 외우는 것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수행을 해서 원인과 결과라는 지혜가 날 때 비로소 연기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이 없는 연기는 단지 지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난다 존자께서 심오하다고 말씀 하셨는데
부처님께서는 네가 말한 대로 심오한 수준, 그 상태 이상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뜻은
표피적으로 연기가 심오하다는 것에 머물지 말고,
수행을 실천해서 그 깊은 뜻을 통찰해야한다는 의미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붓다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시길
인간이 엉클어진 실 뭉치나 골풀처럼 혼란에 휩싸여서
존재의 비참한 상태와 윤회의 연결 고리를 뛰어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연기법을 간파하는 철저한 지식과 지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연기는 그냥 단순한 연기가 아닙니다.
해탈로 가는 필연적인 지름길입니다.
연기의 과정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결코 한 발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역시 6년 만에 원인과 결과라는 연기법을 아신 뒤에,
비로소 오온을 발견하시고, 오온의 느낌을 통찰하신 뒤에,
해탈의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여기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수행은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번뇌를 불태우는 것을 말합니다.
연기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번뇌를 결코 불태울 수가 없습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대념처경에서 밝히신 사실입니다.
그러나 단지 이와 같이 밝혀져 있을 뿐이지,
우리는 이것이 실재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실재를 알기 위해서는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열반을 성취할 때만이 비로소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이라고 해도, ‘좋다!’ 라고 말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엉킨 실타래처럼 혼란한 상태에서는 진리를 볼 수 없으므로
연기의 원인과 결과를 바탕으로 이해해야, 그러한 지혜가 나야
비로소 우리는 수행을 바르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연기는 아무나 알기가 어려운 것이므로
인내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시면
언젠가 여러분이 연기를 보는 바른 견해를 갖게 될 것입니다.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계속해서 원인과 결과라는 사실을 아시는 길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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