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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융인의 맥(圓 日 堂 正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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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2,643회 작성일 15-01-28 15:15

본문

圓 日 堂 正觀
 
 
1940년 6월 15일 생
2010년 1월 23일 卒
 
 
 
堂號는 圓 日
法號는 正 觀
俗名은 盧相基

정관스님께서는 일찍이 법주사 월인스님 을 은사로
출가하여 수행중 모난성격 때문에 대중살이에 만은
괴로움을 스스로 주채하지 못하고 경기도 이천시 모연산 토굴에서 홀로 수행중 한생각 지혜를 얻었다 자부하고
5년간의 토굴생활을 청산하고 본찰 원융원에 일공스님꺼 건당하니 그의세속나이50이라 원일당 정관 스님은
이천시 관고동에 고불정사를 창건하시고 중생포교에
전염하시는 늘어나는 신도가 부지기수이며
스님의 활달 명괘한 법문에 뫼로되여 사찰이 날로번창하였다
그리고 대중 포교로는 원일 장학회를 만들어서 불우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여 명성을 떨치시였다
한편 스님 게서는 원융무애사상의 정립에 모립하시여 만학의어려움을 극복하시고  무애사상을 생활 불교로 하시자고 거듭 강조하시였다 스님께서는 독학으로 한학에도 남다른 혜명한 지식을 갖추시였다
그리고 원융무애사상의 한축인 인과의 명제를 잘풀이하시였고 극락의세계를 늘 법으로 말씀하시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극락세계란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등 중생이 생사윤회(生死輪廻)하는 삼계(三界)의 차원을 넘어선 영원히 안락한 복지(福地)로서, 시간, 공간과 인과율을 초월한 경계이며, 우리 중생이 필경 돌아가야 할 마음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허명무실(虛名無實)한 방편가설(方便假說)이 아니라 엄연한 영생
의 실존(實存)이며, 우리들의 올바른 수행으로 업장이 소멸할 때, 우리 스스로 보고 느끼고(感見) 누리는(受用) 상주불변(常住不變)한 법락(法樂)의 경계입니다.
정녕, 우리 중생은 본래의 자성(自性)이 아미타불이요, 우리가 본래 살고 있는 고향은 극락세계인데, 짓궂은 번뇌 업장에 가리워 미처 깨닫지 못하고 그지없이 생사고해(生死苦海)에 방황하다가 다행히 부처님의 교법(敎法)을 만나서, 비로소 참다운 자아(自我)와 진정한 고향인 극락세계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 영원불멸한 우주 자체의 대생명(大生命)이 바로 부처님이요, 그 부처님의 대명사(代名詞)가 아미타불이며 부처님의 자비화신(慈悲化身)이 관세음보살이요, 부처님의 지혜화신이 대세지보살입니다.
그것은 마치 무궁한 태허(太虛)에 음(陰)과 양(陽)의 이원(二元)이 원융하게 작용하여 만유(萬有)가 생성하는 것과 비슷한 도리입니다.

이렇듯 우주 스스로가 그대로 신비 부사의 한 부처님이요, 우주에는 언제나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님의 서원이 충만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이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을 생각하고 외우며 부르는 것은, 그것이 바로 부처님과 상통하고 부처님의 가호(加護)를 입게 되는 깊은 인연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자아(自我)로 돌아가는 성불의 계기가 되고, 또한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결정적인 선근(善根)이 되는 것이며, 여기에 부처님으로부터 베풀어지는 타력(他力)과 자기 수행의 자력(自力)이 아울러 감응(應)하는 깊은 의의가 있습니다.
 
                          ★원공화담 ★원산평신 ★원일정관 ★원화정허 ★설봉성인
스님께서는 법인 이사를 역임 하면서 원산 필자와 같은 생각으로 법인에 이천시 임야 소유 한것이 있어고 문도인 나 원산도 당진시에 있는 답 이백평을법인에 기증하기로 마음을 내였다
일찍이 우리는 전생의 조은 과보로 중생교화 하는대는
 
불편 함없이 논밭의 재물이 조상님으로 받은바 있어   살림 살이가 넉넉한 편이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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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으로 살아감에 있어 중생계에 보시 할수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법인에 기증한 물건중 정관스님에 임야는 그때당시 기증이 되였지만 전답은 그때 당시 법인법에 제외로 인증이 되여 지금까지 미결재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2003년6월 한국 생활불교 조계종 초대종정에 추대 되시였다
창종에 주역은 우리원융종 종정 스님게 수계받은 체인스님이 총무원장을 역임하고 한국생활불교 조계종의교세를 확장 발전하고있다 한국 생활불교조계종은 원융종에서 이탈한 승려와 사찰이 십여개인 것으로 짐작되고 문도회를 탈퇴한 스님들이 5명이나있었다 고령으로 생존하여 있기에 필자는 이름을 거명하지 않기로 한다
2010년1월23일 고불사에 있는 요사를 께끗이 정리 정돈 하시고   죽음을 예견하였을터 정사를  벗어나 초심으로 돌아가 과거에 수행정진 하였던 바위산 희응산 중턱 토굴 밑에 있는 적은 소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 하시니 신시(申時)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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