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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禪宗 六大 禪師를 만나다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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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2,500회 작성일 14-03-1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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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國 禪宗 六大 禪師를 만나다 -

   선(禪)佛敎는 우리가 보기에는 알듯 말듯 한 문답을 통하여 깨달음의 길로 안내하는 것 같은데, 禪宗은 達磨로부터 시작하여 수.당대를 거치며 크게 융성하여 禪의 黃金時代로 불리우며, 우리 曹溪宗도 중국 南宗禪과 인연이 깊게 닿아 있다. 그리고 조계(曹溪)라는 명칭도 당나라 때 선종을 크게 일으켰던 慧能대사가 머물렀던 중국 광둥(廣東) 남화선사(南華禪寺)의 계곡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조계종을 비롯한 한국 禪佛敎의 중시조는 중국 선맥(禪脈)의 씨를 뿌린 초조(初祖) 達磨대사이며, 그는 인도 태생으로 9년간의 면벽(面壁) 수행을 통하여 선(禪) 수행과 돈오(頓悟)의 전통을 세웠고, 그의 제자인 2조 혜가(慧可), 3조 승찬(僧璨), 4조 도신(道信), 5조 홍인(弘忍), 6조 혜능(慧能)에 이르러‘禪의 黃金時代’를 열었으며, 이 같은 禪宗은 한반도를 거쳐 日本에 전파돼 東北 佛敎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慧可, ‘제 마음이 편안치 못하니 스님께서 편안케 해주소서.’
   達磨, ‘마음을 가지고 오너라. 편안케 해주겠다.’
   慧可, ‘아무리 찾아도 마음을 발견할 수가 없습니다’'
   達磨, ‘내가 이미 네 마음을 편안케 했느니라.’

   중국 선종(禪宗) 역사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는데, 한때 도교를 신봉했던 혜가(慧可)는 펑펑 쏟아지는 눈 속에서 밤을 새우며 스스로 왼팔을 잘라 피를 뿌리면서까지 법을 얻기를 간구하자, 慧可의 간절한 마음을 확인한 달마(達磨)는‘마음을 가져오라’고 했고 慧可 이‘安心 法問’을 듣고 홀연 깨쳤으며, 達磨는 이렇게 인도에서 시작한 부처님 智慧의 등불을 중국에 전해주게 되었다, 그래서 達磨는 중국 禪宗의 초조(初祖)로, 慧可는 二祖로 불린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곳은 중국 허베이(河北)성 숭산(嵩山) 達磨동굴 앞 이였다고 전한다.


   그러면‘禪’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무얼 깨닫는가 한다면, 자신의 참된 모습이며 절대지혜(般若)이다. 부처가 가졌던 佛性,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 진정한 나인‘本來面目’을 향한 항해이다. 그런데‘참된 自我’는 생각으로 논리로 이성으로 찾을 수 없으며, 말과 생각을 끊고 時空을 초월하여 일체의 집착(執着)과 선(善)과악(惡), 유(有)와무(無), 청(淸)과탁(濁)의 分別心에서 놓여나는 것이 禪이라 하겠다.

   우리 인간의 근원적 본성을 꿰뚫는 禪 수행은 중국 당나라 때 達磨의 제자들에 의하여 꽃을 피웠고, 6조 慧能을 통해 만개하여 대륙을 넘어 한반도 및 일본으로 흘러넘치게 되었든 것이다.

   허난성(河南) 덩펑(登封)현에 중국 5악(嶽) 중 中嶽으로 불리는 쑹산(嵩山)에 위치한 少林寺는 인도 향지국에서 526년 중국에 도착한 達磨대사가 머물렀던 성지이며, 당시 양나라 무제를 만난 대사는‘나는 지금까지 많은 절을 짓고 경전 번역도 했으며 승려를 육성했소. 이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라는 하문에,‘황제의 덕은 하나도 없소(所無功德)’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소림사로 향했다고 전한다. 그런데 소림사는 소림 쿵후의 본산이기도 하지만 윗옷을 벗어젖힌 근육질의 스님을 생각하면, 이곳과 達磨대사를 생각할 수 있으며 주위의 50여 개 무술학교에서 매년 2만여 명의 무인을 양성한다는 사실을 덮으면 소림사는 다른 절과 외관상 크게 다르지 않다.

   少林寺 뒤 언덕길로 올라 다시 897계단을 오르면 達磨대사가 9년간 면벽(面壁)수행을 했다는 達磨동굴이 있으며, 빨간가사를 둘러쓴 達磨대사는 익살맞은 達磨圖의 표정과는 달리 눈을 부릅뜨고 참배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또 동굴 오른쪽 벽면에 達磨의 제자인 2조 慧可선사가 자신의 팔을 잘라 도를 구했다는 단비구법(斷臂求法)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達磨대사가 도를 구하러 온 慧可선사에게 물었다.

   ―뭘 구하러 왔느냐?.
   ‘도를 구하러 왔습니다.’
   ―뭘 보여 줄 것이냐?.

   여기서 그는 팔을 잘랐다. 慧可선사가 자신의 팔을 치유했던 二祖庵(이조암)은 소림사의 건너편 동산 뒤쪽에 있다.

   慧可의 뒤를 이어 3조에 오른 승찬(僧璨)선사는 원래 나병 환자였는데, 혜가를 찾은 僧璨이 청하기를,
 
   ―저는 죄가 많아 몹쓸 병에 걸렸습니다. 죄를 낫게 해주십시오.
   ‘그 죄를 갖고 오너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다. 오직 삼보(三寶)에 안주하라.’

   안후이(安徽)성 우한 근처 톈주(天柱)산 산자락에 위치한 3조 僧璨대사의 三祖寺(산곡사)에는 승찬대사가 법회 중 큰나무 밑에서서 입적했다는 얘기가 전해 오고있는데, 그 자리에 僧璨의 사리를 모신 9층탑이 홀홀히 서있다.

   1400여년전, 어린 아이가 3조 僧璨대사를 찾아왔는데,

   아이, ‘해탈할 수 있는 법을 주십시오.’
   僧璨, ‘누가 너를 묶었더냐?.’
   아이, ‘아무도 묶은 이가 없습니다.’
   僧璨, ‘그럼 무슨 해탈을 구하는가?.’

   그 말끝에 아이는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래서 僧璨대사를 9년간 모셨다가, 결국 스승의 인가를 받아 達磨로부터 내려오는 가사(袈裟)와 法을 받았는데, 그건 法脈을 잇는 직계제자란 증표였으며, 그가 바로 4조 도신(道信)대사(580~651년)이며‘나를 묶는 이는 나밖에 없으며, 그 나도 본래 없던 허상임을 깨친 것이다. 결국 묶는 이도, 묶이는 이도 없음이다’라고 말씀하셨다.

   四祖寺 옆 높은 언덕에‘전법동(傳法洞)’이 있는데, 4조가 5조에게 가사와 법을 전한 곳이라고 하는데 의미심장한 장소이다.

   본질과 형상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본질과 형상의 간격은 너무도 가까워서 사람들이 보지 못할 뿐이며,
   굳이 말하자면 눈 먼 거북이와 절룩거리는 코끼리의 차이라 한다.

   그렇다면 무슨 뜻일까. 본질을 못 보면 결국 장님에 불과하므로 거북이든 코끼리든 마찬가지나 눈을 뜨면 다른데, 본질을 보는 순간 차원이 달라진다, 즉 달을 가리키던 손가락 차원에서 달 차원으로 넘어서기 때문이다. 절룩이는 코끼리든 뛰어가는 코끼리든 본질을 보면 그만이므로, 그래서 코끼리는 거북이를 보지만, 거북이는 코끼리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碧  珍.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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