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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淨法身 비로자나불 華嚴敎의 本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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붇다의위대한 가르침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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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1,592회 작성일 13-10-18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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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세계는 혼란에 빠져 있다. 가치 있는 윤리는 전도되고 물질주의적 회의론은 인성이라고 생각 되었던 전통적 개념에 그 예리한 칼날을 돌리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와 문명에 관심을 가진 그 누구도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 같다. 윤리는 인간의 행위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및 남들과의 관계에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윤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인간은 선해 지도록 스스로 수양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도덕이 생활의 가장 중요한 면이 되는 것이다.
 
불교윤리는 인간의 유용한 목적을 위해 인간이 자의적으로 만든 기준이 아니며 또한 외부로 부터 강제로 주어진 것도 아니다. 인간이 만든 법률과 관습은 불교윤리의 기초를 형성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어떤 기후나 시대, 문명에 적합한 의상 스타일은 다른 상황에서는 점잖지 못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사회 관습의 문제로 윤리적인 문제와는 아무런 과련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이 만든 사회관습과 확실하고 변치않은 윤리적 제 원칙을 계속 혼동하고 있다. 
 
불교윤리는 변화하는 사회적 관습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자연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불교윤리 가치는 본질적으로 자연의 한 부분이며 불면하는 인과율이다. 불교윤리가 자연법에 근거를 두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이 윤리원칙들이 현대 세계에 유용하고 그래서 받아 들여지고 있다.
불교윤리는 2,500년전에 확립되었으나 불변하는 성격 때문에 그 유효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불교의 도덕률은 최종목표인 궁극적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가장 실용적이다.
불교도는 해탈로 가는 길에 자기의 행과 불행에 책임이 있다. 불교도는 자신의 이해력과 노력으로 제도를 얻도록 권고 받고 있으며 이 제도는 자신의 도덕적 발전의 결과이지 어떤 외부 지배자가 주거나 허락한 것이 아니다.
 
고타마 붓다의 설법 목적은 사람들에게 생존의 본질을 깨우쳐 주고 자신의 행복과 남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최선을 다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따라서 불교윤리는 인간이 강제로 따라야 하는 일종의 계명으로 알 것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장기적으로 본인과 남의 이익에 도움이 되고 바람직한 요건들을 설명 하였다.
 
'수치스럽고''사악하며''비열하고''하챦으며''불경스럽다'는 말로 죄인에게 설교하기보다 단순히 '자신과 남에게 슬픔을 가져오는 행동을 하는 그대는 참으로 어리석구나'라고 말하고는 하였다.
 
불교윤리의 실천적 모습은 여러 계율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게율은 불교도가 가야할 최종적인 제도의 길을 제시하는 일반적인 안내에 불과하다. 비록 이 많은 계율들은 부정적인 형태로 표현되어 있으나 불교의 도덕률은 악행의 금지로 구성되어도 선행으로 보완되지 않는 악행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모든 계율에서 발견되는 도덕률은 세 가지 단순한 원칙 -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 마음을 닦아라- 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것은 고타마 붓다가 한 충고이다. (Dhammapada 183)
 
불교의 선과 악의 구별은 아주 간단하다. 이기적인 마음에서 나온 탐욕,증오, 미망에 뿌리박은 모든 행위는 이기적인 유해한 망상을 기른다. 이러한 행위는 해롭고 바람직하지 않으며 사악하다.
이것을 악업(akusala kamma) 이라 한다.
 
관용과 자비, 지혜의 덕성에 뿌리를 박은 모든 행위는 가치가 있다. 이것을 선업(kusala kamma)이라 한다. 선과 악의 기준은 신(身), 구(口), 의(意) 행위에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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