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짠의 문 (門) 해탈의다르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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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해탈의 다르마
아짠의 마음은 본래 대단히 역동적이어서 곡예적인 묘기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수행 초기에는 한층 더 심했었다. 최종의 목표가 가까와지자, 그의 마음은 다시 한 번 특유의 힘으로 묘기를 펼쳤다. 3개의 번뇌 순환1)이 깨어지자, 해탈된 마음을 둘러싸고 있는 3개의 원이 남아 있었다. 첫 번째 원의 끝에 ‘로포’(lopo, ‘제거’라는 뜻의 팔리어)가 나타났다. 첫 번째 원의 마지막 힘에 의해, 세속적인 것들에 매달려 있던 모든 것들이 제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두 번째 원의 끝에는 ‘위무띠’(vimutti, ‘해탈’이라는 뜻의 팔리어)가 나타났다. 두 번째 원의 마지막 힘으로 완전한 궁극의 해탈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 번째 원의 끝에는 ‘아나라요’[anālayo, ‘무집착’(無執着)을 의미하는 팔리어]가 나타났다. 세 번째 원의 마지막 작용으로 더 이상 남아 있는 욕망이 없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 이후로 마음은 ‘에카시따’[하나의 마음(一心)], ‘에카담마’[하나의 다르마]가 되어, 속세에서와 같은 이중성(duality, 二元化)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것은 해탈의 다르마였다. 이것을 마지막으로 세속적인 모든 것들과 결별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해탈의 다르마는 오직 한 번만 일어났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붓다와 그의 아라한 제자들은 해탈의 다르마를 오직 한 번씩 체험했다. 그리고 최고의 경지인 에카시따와 에카담마가 되었다. 몸과 마음의 오온은 다른 외부 성분이 전혀 없는 오온으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유독하지도 유해하지도 않았다. 아짠이 깨달음(道業)을 완성한 이후에 오온은 조금도 증가하거나 감소하지 않고 그전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였다. 오온은 여전히 마음의 지시에 따라 작용하였지만, 이제 오온에 대한 집착에서는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이미 오온과 마음은 스스로 평정되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대항하는 싸움과 투쟁은 더 이상 없었다. 이러한 협동기능의 상태는 각자가 자신의 길을 갈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 때 청정해진 마음은 ‘야따디포 짜 니붓또’(yathādipo ca nibutto, 연료가 다해버린 불이 꺼지게 된 상태)가 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여기가 한계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불가능할 것 같다. 3원의 3순환이 끝난 후 속세와 해탈 사이의 경계선이 뚜렷해졌을 때-비록 속세와 해탈은 한동안 여전히 함께 뒤섞여 있었지만- 나타나는 현상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날 밤 아짠에게 일어났던 일은 대강 이와 같았다.
그날 밤 남은 시간동안 아짠은 윤회의 고리에서 자신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초래했던 과거의 무명에 대해 상베가(각주 26 참조)의 감정으로 울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미몽에서 깨어나 2500년 전에 설파된 붓다의 다르마에 이르자, 아짠에게 그것은 깨끗하고도 상쾌한 물을 마시러 큰 호수를 건너가는 외롭고 지친 여행과 같았다. 그는 이러한 위대한 발견에 임하여 자신의 전 생애동안 삼보에 충성을 다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붓다와 그의 길을 따랐던 선배 상가(Sangha, 僧家)에게 충분히 감사의 뜻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아짠이 눈물에 젖은 얼굴로 꿇어 엎드려 있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아짠이 슬픔에 잠겨서 신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눈물을 흘리고 꿇어 엎드리는 것은 단지 자신을 최고의 발견으로 이르도록 도와주신 것에 대한 가장 깊고 공손한 감사의 표현일 뿐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꿇어 엎드린 이 분은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붓다(佛), 다르마(法), 상가(僧)를 깨달은 사람이었다.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다르마를 깨달은 사람은 누구든지 나를 보며, 나를 보는 자는 누구나 다르마를 본다.”
그날 밤, 지상과 천상의 천사들은 모두 의식의 영역에 널리 울려 퍼진 아짠의 최종적인 깨달음에 진심 어린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아짠을 방문하여 그의 설법을 듣고 싶다고 공손하게 말했다. 그러나 아짠은 여전히 최고의 다르마에 몰두하여 있었고, 또한 한동안 그러한 상태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그는 천사들에게 자신이 아직 최상의 다르마에 몰두해 있으니 나중에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짠의 뜻을 이해하고 그들의 세계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짠의 최종 깨달음의 첫 날밤에 비수디데바(visuddhideva2))의 광경을 본 것에 대해 몹시 기뻐하였다.
좌선을 끝낸 새벽, 아짠은 전날 밤에 체험했던 경이로움을 회상하였다. 그리고 나서 자신에게 정기적으로 음식을 보시하였던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명상 중에 앉아 있었던 나무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보냈다. 탁발을 하러 마을로 들어갈 시간이 되었을 때, 처음에는 해탈의 기쁨이 넘쳐서 그 날은 어떤 음식도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음식을 보시하며 도움을 주었던 마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 때문에, 아짠은 도덕적 의무감에서라도 평상시처럼 마을 사람들에게 가야만 했다.
아짠은 그 날, 자신에게 음식을 보시하고 각자의 집안에서 일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집 안팎의 먼지투성이 땅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특별한 자비를 느꼈다. 이전에는 아무에게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만, 그 날은 평소보다 더 많은 관심과 자비로써 그들을 관찰하였다. 연로하고 어진 사람들은 모두 아짠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예의바른 미소를 지었다.
산 위에 있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을 때, 아짠은 여전히 다르마의 맛을 즐기고 있었으므로, 음식을 먹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는 배가 고프지도 피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음식을 이미 받아 왔고, 오랫동안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몸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까닭에, 몸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었다. 다르마의 깊은 맛 때문에 음식물에서는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이 상태를 팔리어로 ‘삿빠라삼 담마라소지나티’(sabbarasaṁ dhammarasajināti -다르마의 맛이 다른 모든 맛을 정복하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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