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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마음자리 - 서암 스님[西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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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융종
댓글 0건 조회 767회 작성일 24-05-3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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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마음자리 - 서암 스님[西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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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과 마음
흔히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이 마음은 근본 생명根本生命에서 벗어난 그림자입니다.

그러한 모든 마음은 엄연히 흘러가는 마음, 즉 고정적으로 실재實在하지 않는 ‘생각’인 것입니다. 기쁜 생각을 일으켜도 단 5분이나 10분을 지속持續하지 못하고 또 다른 슬픈 생각이나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류轉流하는 중생衆生의 생각이지요. 생각이 일어나는 그 바탕이 ‘마음’ 입니다. 그 자리는 아무리 찾아봐도 알 수 없습니다. 여기는 생각으로 미치지 못합니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항상 일찍이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마음자리입니다.

 

 항상 밝게 빛나는 아주 영특英特한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불교佛敎에서는 부득이 이름을 지어서 마음이니 부처[Buddha]니 열반[涅槃 nirvana 寂滅]이니 하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득이해서 붙이는 말이지 그 자리는 마음도 아니며 부처도 아니며 열반도 아닙니다.

 

 이 마음자리는 어떠한 이름이 없습니다.

 모양模樣도 없습니다.

 

둥근 그릇에는 모난 모양이 담길 수 없고, 검은 색은 흰 것과 공존共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듯 고정된 모양이 있다면 다른 것을 수용受用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본래 악하다면 다시 착[善]해질 수 없을 것이고, 마음 빛이 본래 붉다면 다시 푸르지 못할 것이고, 마음이 본래 강하다면 다시 부드러워지지 못할 것입니다.

 

이 자리는 붉지도 않고 푸르지도 않으며, 모나지도 않고 둥글지도 않으며, 강하지도 않고 부드럽지도 않으며,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강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며, 착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는 온갖 작용을 합니다.

 

이 마음은 우주宇宙를 송두리째 집어 삼켜도 부족함이 없고, 이 마음을 똘똘 뭉쳐서 바늘 끝 같은 구멍에 몰아넣어도 비좁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흘러가는 조각조각의 생각을 실재實在하는 그 어떤 것으로 착각錯覺하여 거기에 사로잡혀서 갈피를 못 잡는 것입니다.

 

여러 환경環境에 따라 기쁜 생각이나 슬픈 생각이 자기를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이 올 때는 웃으며 즐거워하고 괴로운 환경이 올 때는 슬퍼하며 괴로워합니다. 깃발이 바람에 날리듯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웃고 싶은데 성내게 되고 나는 사랑하고 싶은데 미워하게 됩니다.

 

흘러가는 생각이 실재하지 않다는 사실事實을 알면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것이 참선參禪입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일어나는 본바탕을 돌이켜 보는 것이 참선[參禪]입니다. 이 근본 마음을 알면 내가 웃고 내가 성내고 내 인생을 내가 만듭니다. 내가 사는 것이지 피동적被動的으로 주위 환경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 구애拘碍없이 자유자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 마음자리

옛날에 대의삼장이라고 하는 이는 공부를 많이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훤히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나를 욕하면 나를 욕하는구나, 무슨 근심이 있으면 어떤 근심을 하는구나 하고 그 마음을 환하게 알았습니다.

 

그런데 혜충국사慧忠國師가 그 사람이 그런 소리로 모든 사람을 어지럽히니 바로 잡아주어야 되겠다 싶어서 찾아와서는 ‘그대가 남의 마음을 훤히 안다고 하니 내 마음도 한번 알아봐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 점잖은 스님이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면, 올 때 물가에서 말, 소, 개, 당나귀 이런 것들이 어울려 노는 것을 보았으니 그곳에 생각을 던졌습니다.

 

그러니까 대의삼장이 확연廓然히 마음을 알아냈습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을 저 도리천이나 하늘세계에 던졌더니 대의삼장은 ‘아이고 스님, 참 훌륭하십니다. 보통 사람은 그 천상세계에 마음이 못 가는데 스님은 지금 도리천이나 야마천夜摩天이나 하늘세계에 계시니 스님은 분명 훌륭하십니다.’ 하면서 그 마음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일체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 고향, 말하자면 희노애락 상념想念이 떨어진 그 마음자리에다 마음을 딱 둬버렸습니다. 그러자 대의삼장이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으니 당황합니다. 온갖 신통력으로 저 천상세계를 다 뒤지고 지옥을 다 뒤지고 삼계육도三界六道를 다 헤매도 눈앞에 있는 혜충국사 마음이 있는 자리를 못 찾았던 것이지요.

 

보통사람은 상념想念의 세계에 마음을 쓰니 그것을 모두 알 수 있지만 빛도 모양도 냄새도 없는 본래 마음자리에 갖다 놓으니 아무리 신통력이 있다 해도 어떻게 상념으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슬플 때는 슬픈 생각에 마음이 가기 때문에 귀신이 보고 다 알 수 있지만 빛도 모양도 냄새도 없는 본래 자리에 딱 놓아두면 찾을 수가 없는 것이 당연當然하지요.

 

혜충국사는 당황하는 대의삼장에게 ‘반딧불 같은 지혜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현혹眩惑하느냐’고 호령을 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잘못을 깨우친 대의삼장은 이렇게 해서 바른 마음공부에 들어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꽃은 어느 누가 봐도 꽃이지만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 보는 것하고 눈뜨고 깨달은 사람이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마치 근심이 많은 사람은 꽃을 보고 눈물을 짓고, 근심이 없고 마음이 화평和平한 사람은 꽃을 보고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그러니까 꽃 자체가 뭐 슬프고 괴로운 게 아닌데, 자기의 색안경 자기의 경계境界에 따라서 그렇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대의삼장은 비록 모든 중생의 마음은 다 알지만 본래 마음자리를
밝히지 못한 까닭에 본래 고향에 던져진 마음을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지요.

 

대부분의 사람은 모태 안에 들어선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2살 3살 때도 기억 못해요. 아주 영리한 사람이 아니면 모태의 기억을 못하거든요. 그러나 딱 앉아 참선을 하다 보면 어머니 배 안에 있던 기억, 3살 4살 때 까맣게 잊었던 생각도 떠오릅니다.

 

그것은 보통 때는 보이지 않던 먼지가 아침에 태양빛이 비치면 바글바글하게 다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태양빛이 자석처럼 그 먼지를 끌어온 것은 아니거든요. 다만 밝은 빛이 비추니까 먼지가 보일 뿐이듯 우리가 참선參禪을 하여 마음을 밝히면 지난 시절 까마득히 잊었던 일까지 다 떠올라 생각나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한 단계 넘어서면 생각이 가라앉으면서 영적인 능력이 생겨, 가만히 앉아서도 수천 리 밖의 일도 알고[天眼通] 과거․현재․미래를 훤히 알게 되지요[宿命通]. 그러나 그런 것을 아는 것은 참선공부가 아닙니다. 여기까지는 한 과정일 뿐입니다.

 

그 단계에 집착하지 않고 넘어가면 참으로 완전히 조용하게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끊어지고 본래 안심입명[安心立命]한 자리를 발견하게 되지요. 공기를 깨끗이 하면 태양빛이 아무리 비추어도 먼지가 안 보이는 경우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태양빛이 먼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밝은 빛이 먼지를 보이게 했을 뿐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가 굴리느냐, 세상에 내가 굴림을 당하느냐’ 하는 그 생활 태도가 범부와 성인聖人의 차이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든 환경의 지배를 받으면서 누가 웃기면 웃고, 누가 부아를 돋우면 부아를 내고, 이렇게 지배를 받으면서 고통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세계는 어떠한 경계라도 상관이 없는 물들지 않는 자기를 구사한다 그 말입니다. 깨달음의 세계라 해서 아무 감각이 없는 게 아닙니다. 석가모니가 깨쳤다고 해서 무슨 바늘로 찔러도 아프지 않고 밥을 먹어도 맛도 모르게 이렇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무슨 눈이 하나 더 생기고 머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몸 그대로입니다.
마음을 정리해 버리면 천하의 누구도 엿볼 수 없고, 그 마음을 펼치면 희노애락을 다 해도 그 근본마음을 아는 것이 깨달음의 세계요. 해탈解脫의 세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조용히 앉아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다만 10분이라도 앉아서 자기 생각을 딱 집중하고 참선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그 참선參禪하는 찰나부터 자기의 안정된 마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1분 동안 하면 1분 동안 하는 것만큼, 10분하면 10분하는 것만큼, 1시간 하면 1시간 하는 것만큼 하기 전과는 자기인생이 다른 것이 스스로 느껴집니다.

 

마치 밥을 한 숟가락 먹으면 한 숟가락 먹은 만큼 배부르고 두 숟가락 먹으면 두 숟가락 먹은 만큼 배부르다가 끝내 한 그릇 다 먹으면 배가 다 부른 것처럼 우리가 어느 단계段階까지 수행修行을 쌓아 올릴 때 큰 영향력影響力이 생겨 어느 순간에 이르면 잠시만 해도 그 이치를 대번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감정이 생긴다든지 무슨 생각이 극도極度로 달릴 때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서 마음의 부리를 돌이켜 보면 그 불이 사그러집니다. 타는 불에 찬물 끼얹듯이 우리의 그 타는 열병熱病이 시원한 참선參禪의 물로 딱 녹아집니다. 그게 바로 법열法悅이고 희열喜悅이지요.

 

그것은 해 보시면 즉각卽刻 느껴집니다.
그렇게 해서 내 인생이 차츰차츰 달라지는 것이지요.
영리한 이들은 물론 한 번에 대번 깨칠 수도 있지만
대개는 오래도록 해서 자꾸 쌓으면 모두 그렇게 깨치게 됩니다.

 

본래 마음을 밝히고 보면 바른 법[正法]을 알고 그것을 따라 살게 되니,
우리 모두 이 이치理致에 따라 생활하도록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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