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華嚴經槪要(화엄경개요 )Buddha-ava tamsaka-mah vaipuly-su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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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2,213회 작성일 13-12-29 07:44

본문

 1. 華嚴經槪要

 {華嚴經}의 梵名은 (Buddha-ava tamsaka-mah vaipuly-sutra) 이며, 이를 번역하여 {大方廣佛華嚴經} 이라고 한다. {華嚴經}은 여러 經典 중에서도 가장 방대하고 심오한 經典으로, 부처님이 成道한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하고 있는 大乘經典이라 말할 수 있다.

 華字란 마음의 因을 가리킨 것이니, 마음의 行을 꽃에 비유한 것이요. 嚴字는 마음의 功을 가리켜 마음이 功德을 지는 것을 嚴이라 한다. 經字는 마음의 가르침인 敎이니, 이름과 말을 일으켜서 理致를 설명하기 때문에 經이라고 한다. 華嚴이란 꽃으로 장식됨을 말한다. 꽃이란 반드시 그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이처럼 이 우주 삼라만상 어느 것에도 심지어 하잘 것 없다고 여기는 굴러가는 돌맹이라도 꽃과 같이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세계를 {華嚴經}에서는 법계라고 한 것이다.

 {華嚴經}의 역사에는 상당부분 많은 다른 經典들처럼 여전히 확실하지는 않다. {華嚴經}을 구성하는 많은 品 들이 중앙아시아 또는 중국에서 저술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록 약 420년경에 불타발타라가 {華嚴經}을 범어본에서 한역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다만 두 품만이 범어본으로 온전히 현존한다. 하나는 十地品으로 독립된 經典 즉 {十地經}이다. 이 十地品은 처음에 인도에서 생성된 이래 초심자에서 궁극적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보살의 수행단계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척도의 역할을 했다. 다른 하나는 {入法界品}이다. 이 入法界品은 華嚴經의 마지막 부분을 차지한다. 華嚴經의 성립에 관해 많은 이론들이 있지만 華嚴經의 학자들은 몇 가지 점에서 동의한다. 즉 중앙아시아의 어느 곳에서 한 명의 편집자 또는 여러 명의 편집자들이 아마도 十地品과 入法界品에 영향을 받아서 初發心부터 깨달음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보살의 修行科程에 대해서 매우 상세하게 기술하는 방식으로 수많은 독립經典들을 모았으며, 이를 통해서 현존의 완성본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華嚴經}은 4C경에 집대성했다. 한역에는 6本이 있으나 지금은 3本만 전해 오고 있다. {60華嚴}, {80華嚴}, {40華嚴}이 그것이다. {60華嚴}은 418-420년에 중국 東晉의 佛陀跋陀羅(buddha-bhadra)가 {80華嚴}은 695-699년에 당나라가 實叉難陀가, {40華嚴}은 795-798년에 당나라 般若가 각각 飜譯했다. 이 중 {40華嚴}은 {60華嚴}과 {80華嚴}속에 있는 마지막 장인{入法界品}에 해당한다. 따라서 {60華嚴}과 {80華嚴}이 한역의 完本이라 할 수 있다.

 {60華嚴}은 7處 8會 34章, {80華嚴}은 7處 9會 39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處와 會란 경을 설한 장소와 모임의 횟수를 뜻한다. 處라 함은 머무름이니, 말하자면 머물러 있는 곳이다. 會란 만나는 것이며, 또한 大計(크게 도모함)이다. {佳苑}에 이르기를 "사방의 郡國들이 기록한 一代의 일들을 모아서 의논함을 會라 한다고 하였다."

 

  2.華嚴經의 成立

 華嚴經은 부처님이 寂滅道場에서 悟道와 함께 顯現한 佛陀의 경계를 시방에서 모여든 海會菩薩이 불타의 威神力에 의해서 說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華嚴經 {說時論}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설이 있으나 賢首는 이것을 成道후 第二七日의 說法이라 단정한다. 즉 華嚴經은 佛이 始成正覺 후 第二七日에 보리수하에서 日出에 先照高山하는 것 같이 海印定中에서 一時에 演說 한 것이라고 한다. {十地經}에는 '如是我聞 一時 婆伽婆 成道未久 第二七日'이라 설하고 있다.

 華嚴經을 유통시킨이는 龍樹(n garjuna)菩薩이다. 龍樹는 佛滅七百年代의 菩薩로서 그 사상이 풍부하고 저술도 많아서 大乘佛敎를 크게 일으킨 菩薩이다. 龍樹는 華嚴經을 용궁에서 가져왔다는 龍宮將來說이 있다. 즉 龍樹菩薩이 용궁에 들어가 보니 3本 {華嚴經}이 있는데, 上本과 中本 {華嚴經}은 그 양이 방대하여 외우기 불가능하였다고 한다. 그 상본 {華嚴經}은 三千大天世界 微塵數 偈頌과 일사천하 微塵數品이 있었다고 한다. 龍樹菩薩은 하본 {華嚴經} 十萬偈 四十八品을 외워서 세상에 유통시켰으며 지금 전해지는 漢譯된 그 중 略本 {華嚴經}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전설은 龍樹 이전부터 있었던 {華嚴經}을 龍樹가 비로소 크게 유통시켰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龍宮이란 龍을 토템으로 하는 종족에게서 유통되고 있었음을 뜻하기도 한고 남해지방에서 가져온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도 한다. 龍樹는 {華嚴經}을 註釋하여 {大不思義論} 100권을 지었다고 하나 전하지 않는다. 이는 入法界品에 해당하는 {不可思議解脫經}에 대한 주석이다. 또 龍樹는 {十地經}에도 주석을 하였으나 남아 있지 않고 十地品의 일부인 初地와 第二地가 鳩摩羅什 역출의 {十住毘婆婆論}으로 유통되고 있다. 여기서 龍樹의 華嚴菩薩道를 사상을 알 수 있다. 龍樹의 華嚴思想은 이외의 著書로는 {大智度論}을 비롯해서 {寶行王正論}·{大乘二十頌論}·{六十頌如理論}·{菩提心離相論}등에서 발견된다.

 그 후 世親(vasubandu) 菩薩이 龍樹의 空思想에 대하여 有思想의 조사로 알려졌다. 그의 著書로는 {俱舍論}, {唯識論}, {涅槃論}, {攝大乘論}, {淨土論} 등과 華嚴經에 관해서는 {十地經論}을 지어 특히 그 가운데 華嚴敎義의 주요부분을 구성하는 {六相圓融論}의 妙理를 말씀하였다. 이 華嚴經이 중국에 전래되어 法藏에 의해서 성립되었다.



 3.華嚴經의 世界觀

 {華嚴經}의 世界는 한없이 넓고 끝이 없는 世界이다.

 唐譯 80권본 華藏世界品에

 "말할 수 없는 世界의 티끌 수 같은 향수해 가운데 말할 수 없는 世界 수의 世界種이 있고, 낱낱의 世界種에는 말할 수 없는 世界의 티끌 수 같은 世界가 있다."

 라고 하여 공간적으로 廣大無邊한 世界海를 그리고 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도 무한하다는 것을 "어떤 世界가 한 겁에 머물고 혹은 열 겁 동안 머무르며 내지 百千劫을 지나 世界의 티끌 수 겁만큼 존재한다. 혹은 한 겁에도 어떤 世界가 생겨나고 없어진다."

 라고 묘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時·空間的으로 무한한 世界海를 이루고 있는 각각의 世界種은 전체적으로 조화·통일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世界를 {華嚴經}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저 世界種들이 이 世界해 가운데서 각각으로 의지하여 머물고 각각 형상이 있고 각각 체성이 있고 각각 방소가 다르고 각각으로 나아가고 각각으로 장엄하고 각각으로 나뉘었고 각각 열을 짓고 각각 차별이 없고 각각 힘으로 지탱하게 한다."

그리고 {如來現相品}을 보면 "여래가 입과 치아 사이에서 무수한 빛을 발하여 시방 世界의 보살 대중들을 비추어 그들이 모두 蓮華藏世界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그 蓮華藏世界의 주위에는 無數한 世界가 존재하고 그 하나 하나의 世界의 중심에는 각각의 불이 안좌하고 있다. 즉 하나의 蓮華藏世界를 중심으로 무한의 世界가 제 각기의 佛을 중심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華嚴經}의 世界인 '蓮華莊嚴世界海'이다. 世界海란 바다와 같이 廣大無邊한 것이 불을 중심으로 그 하나에 연결되는 무한의 世界를 의미한다. 이리한 世界는 천체물리학에서 보는 우주와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즉 하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혹성이 모여서 태양계를 이루고, 이와 같은 태양계가 무수히 모여서 은하계를 이루며 또 각각의 은하계들이 모여서 대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부처님을 중심으로 菩薩大衆이 모여 이루는 世界와 같다. 그리고 그 世界 속의 티끌 속 만큼의 世界가 시방으로 모여 世界해를 이루는 것과 흡사하다. 이러한 廣大無限의 世界가 圓融無 의 관계에서 성립되고 있다는 것에 華嚴經의 世界관의 특징이다.

{初發心菩薩功德品}에서의

 "한 털구멍 가운데 一切 世界의 모든 분별지가 들어 있고, 一切世界 가운데에 한 털구멍의 모든 분별지가 들어 있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집이 곧 한 생각임을 알며, 한 생각이 곧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임을 안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一卽多 多卽一'이 되어 圓融無 하게 된다. 그런데 {華嚴經}에 의하면 이러한 世界 즉 法界는 깨달음에 의하여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것이 세간의 중생에게는 보이지 않는 진실이지만 그렇다고 世間의 法 밖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佛의 成覺에 의해서 世界가 그대로 法界가 되는 것이다. 즉 佛이 顯現한 世界가 바로 法界인 것이다. 요컨대 깨달음에 의하여 法界가 출현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華嚴思想에서 法界緣起 즉 性起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이 깨달음의 世界로 나아가는 길인 菩薩行으로 {十地品}에서 十婆羅蜜을 설하고 있다. 그것은 (1)菩薩이 大悲에 의하여 衆生의 일을 생각하고 그리하여 얻어진 선근을 衆生에게 회향하는 布施婆羅蜜, (2)一切의 번뇌를 寂滅하려는 戒婆羅蜜, (3)受民과 慈愛에 입각하여 一切 衆生에게 있어서 인내하는 忍辱婆羅蜜, (4)善法을 게을리 하는 일없이 끊임없이 지어 가는 精進婆羅蜜, (5)마음을 산란케 하지 않고 도를 실천해 가는 禪定婆羅蜜, (6)一切 제법이 본래 불생임을 인지하는 般若婆羅蜜, (7)무량한 지혜를 現戒하는 善功方便婆羅蜜, (8)계속하여 서원을 일으킴으로서 지혜가 두루 비치는 것을 실현하는 願婆羅蜜, (9)一切 外敎의 說이나 魔衆에 의해서 도를 무너뜨리지 않는 力婆羅蜜, (10)一切法을 두루 알아 남기는 바가 없는 智婆羅蜜이다.  또 {入法界品}에서는 善財童子가 53善知識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깨달음의 世界에 들어가는 菩薩行을 구체적으로 설하고 있다.

 이상으로 보면, 華嚴經의 世界는 時·空間的으로 무한하고 圓融無 한 法界로 깨달은 의식상태에서는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



 4.華嚴思想

  1)法界緣起論

 法界緣起論은 唯識思想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華嚴思想에서는 唯心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唯心은 문자 그대로 '오직 마음 뿐'이라고 한다. 唯心說은 華嚴經 도처에 설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華嚴經 {菩薩明難品}에는 文殊菩薩이 覺首菩薩에게 "마음의 성품은 하나인데 어찌하여 가지가지 차별한 것을 봅니까"? 라고 묻는 것에 대하여 覺首菩薩이 唯心緣起의 이치로서 답한 것이라든지

또한 {夜摩天宮菩薩說偈品}에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世間을 그려내는데 五蘊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짖지 못하는 것이 없다. 마음과 같이 부처도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衆生도 그러하니 부처나 마음이나 그 성품 모두 다 함이 없다. 마음이 모든 세간 짓는 줄을 아는 이가 있다면 이 사람 부처를 보아 부처의 한 성품 알게 되니 마음이 몸에 있지 않고 몸도 마음에 있지 않지만 모든 불사를 지을 수 있어 자재함이 미증유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의 一切 부처를 알려면 마땅히 法界의 성품 모든 것이 마음으로 된 줄을 알아야 된다."

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십지품}에

 三界에 있는 것은 단지 한 마음이 지어낸 것인데 이것을 열 두가지로 나누어 말하였으니 이 모두가 마음에 의한 것이다.

라고 한 것 등이 바로 유심의 의미을 드러낸 구절이다. 이들 경문이 의미하는 바는 三界는 모두 마음의 자용과 활동에 의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三界의 一切 존재가 마음으로부터 成立되어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이른바 唯心論은 아니고, 인간의 마음이 현실 속에서 작용하고 고뇌하며 기뻐하는 존재 양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즉 인간을 둘러싸는 인간세계의 가장 근원적인 유기적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화엄사상에서 唯心 즉 一心은 眞如라든가 如來藏性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제 1원리로서의 일심이 아니다. 그것은 心도 佛도 衆生도 모두 유심의 소신으로 현상세계가 무차별하다는 것을 뜻하는 일심이다. 따라서 그 존재방식은 연기로서 파악되고 있다. 즉 一心은 영원불변하는 실체가 아니고 원인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본래성에 있어서 空이고 다른 것에 緣하여 生하는 것이기 때문에 형이상학적 실존이 거부되는 것이다.

 緣起論은 현상세계에 대한 佛家的 說明의 원리이다. 緣起論에 의하면 현상세계의 모든 존재는 상대적 依存關係 즉 '이것이 生함으로 저것이 生하고, 이것이 滅함으로 인하여 저것이 滅한다.'라는 원리에 따라 生滅한다. 그래서 원시불교에서부터 大乘佛敎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의 연기론이 주장되어 왔다.

 여기에는 우주만유의 생기의 원인을 {俱舍論}에 근거하여 一切有情이 造作하는 바의 業力에 있다고 보는 業感緣起論이 있고, {唯識論}을 근거로 그 생기의 원인을 心識의 주체에서 구하여 각자가 본래 가지고 있는 阿賴耶識이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는 阿賴耶識緣起論이 있다. 또한 {起信論}에 근거를 두고 自性淸淨心인 如來藏에 의지하여 生死 및 涅槃을 설명하는 如來藏緣起論이 있다. 그리고 일체현상은 현상 그대로가 곧 本體의 活現이라고 보아 모든 현상은 서로 因이 되고 緣이 되어 다함없는 緣起를 한다고 하는 法界緣起論(無盡緣起論)이 있다. 이 法界연기론은 華嚴經을 근거로 한 화엄사상에서 세운 것이다.

 法界緣起論은 如來藏緣起論의 결점을 극복하고 한 걸음 나아간 연기론이다. 如來藏緣起論에서는 自性淸淨心인 如來藏을 현상의 諸法과 엄연히 구별하여 如來藏에 의지하여 현상계의 諸法이 전개되는 것으로 본다. 이 때 平等의 일리인 如來藏이 차별의 萬象인 諸法을 현상하기 위해서는 매개자로서 무명의 존재가 필요하다. 따라서 如來藏緣起에서는 無明을 인정하는데 이 無明說이 眞如緣起論의 특색인 동시에 결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法藏에 의하면 實相은 현상 밖에 實體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또 실체 밖에 현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실체는 能緣起로 현상은 所緣起로 보아 能緣起의 실체가 현상인 동시에 현상이 곧 실체이며, 현상계의 만유제법 하나 하나가 모두 실체의 全活現인 것으로 事事物物이 하나도 진리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法界緣起論의 관점에서 보면 현상 즉 法界는 일대법기에 의하여 그려지는 것이므로 事事物物이 相互作用하는 관계에 있어서는 어느 하나라도 홀로 일어나는 것이 없다. 즉 法界 전체가 能緣起가 되고 또 所緣起가 되어 重重無盡하게 緣起하는 까닭에 法界緣起 또는 無盡緣起라고 하는 것이다.



  2)法界觀法

 화엄의 특색은 바로 觀法이다. 觀이란 것은 이 法을 보는 智眼이다.. 智儼은 內心的 照察이라고 설명하는데, 이와 같기에 이것은 凡夫의 俗見적인 觀이 아니다.. 凡夫는 눈으로서 사물을 觀함에 단지 이 感官으로 物을 觀할뿐이라서 저의 소득한 바가 이 感覺뿐이다.. 또한 이 통상적으로 말하는 心으로 物을 觀함이 아님이요, 心으로 物을 觀한다해도 이 心으로서 物을 생각함이러니 그러나 實際의 物은 아울러 이낱 心으로 思考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서 사고할수 있는 것은 단지 實際物의 性質이나 혹은 저로 인해 生한바인 理致일 뿐이다.. 所以로 저 속에 말하는 觀은 이 心으로서 心을 觀함이니 了了分明하야 마치 도장으로 印치는것과 같음이다.. 그래서 能과 所를 여이어서 能히 法에 稱合할새 터럭만큼의 무슨 分別이라도 더할 수 없음이다.

 法界觀을 依據해서 말하자면, 두가지 意味를 갖추고 있음이니 바로 이 法界에 悟入하는 觀이요, 또한 法界에 處해서 世俗을 도리어 觀察해서 비추는 觀이다. 이 二種의 觀法에서 華嚴의 實踐的인 觀法을 드러낼수 있다. 앞의 것을 또한 悟入觀이라하고 뒤의 것을 또한 性起觀이라하나니, 그러나 華嚴宗의 確立的인 基盤은 곧 杜順의 法界觀이다. 三重을 갖추어 있음이니 곧 眞空觀과 理事無 觀과 周遍含容觀이다. 眞空觀은 바로 四法界觀中에서 理法界觀이니 凡夫는 色을 봄에 實色이라하고 空을 봄에 斷空이라하기때문에 迷途에 떨어지나니 지금 衆生으로하여금 色이 實色이 아니라서 擧體가 이 眞空임을 觀하게하고 空이 斷空이 아니어서 擧體가 이 幻色인줄을 觀하게 하야 空色얘 無 함을 通達하게 함이다. 다시 杜順이 觀을 가져서 四種으로 나누었으니 곧 會色歸空觀과 明空卽色觀과 空色無 觀과 泯絶無寄觀등이다.

 白居易가 이 觀을 의지해서 詩를 읊어 이르되

 "須知諸相皆非相, 若住無餘 却有餘. 言下忌言一時了,夢中說夢兩重虛. 空華奇得兼求菓, 陽炎如何更覓魚. 攝動是禪禪是動,不禪不動卽如如."

라고 했으니, 모름지기 알라 諸相이 모두 相이 아님이다. 만약 無餘에 주한다면 도리어 有餘가 되리로다. 말 아래에 말을 꺼리면은 일시에 료달하리니 꿈 가운데에서 꿈을 설함이라서 두 가지가 모두 허환이로다. 허공의 꽃에 어찌 다시 열매를 구할 수 있으며 陽炎(물로 보임)에 어떻게 다시 고기를 구할수 있으리요,  動을 攝해서 이 禪이라한다면은 禪은 이 벌써 動한것이거니와 禪도 아니고 動도 아니라 곧 如如함이로다.

 理事無 觀은 理를 대하여는 이 가히 볼수 있다하나 事를 대해서는 아직도 능히 볼수 없음이니 지금 衆生으로하여금 모두 능히 가히 나눌 수 없는 理致를 觀하게해서 모두 능히 一塵에서 원만히 攝하게하고 萬有諸事法으로 하여금 모두 능히 法界에 通遍하게 해서 理事로하여금 圓融케하여 조금도 걸림이 없는 즉 事理가 炳然히 雙融하야 마치 有爲界에서 無爲法을 보임에 有爲的相이 不壞滅하고 無爲界에서 有爲法을 보임에 無爲的인 性이 分別하지 않음과 같음이니다(事理不二).

 沙門 思存이 觀을 의지하야 詩를 읊어 이르되,

 "無相幾時離有相, 有餘何處碍無餘. 忘言爲了非爲了,說夢云虛是帶虛. 雖沒空華空結菓,寧妨幻水幻生魚. 不禪不動常禪動, 禪動鎔融方契如."

라 했으니, 해석해보면 無相이 언제 有相을 여이었으며 유여가 어느곳에서 무여를 막았는가. 말을 잊음으로 了라하나 이 료가 되지 않음이요, 꿈이라 설해 허라하나 이 허를 띤것이다. 비록 空華에 빠져있으나 헛되이 結菓하나니 어찌 幻水가 허환히 고기를 생함을 막으리요. 不禪하고 不動에 항상 禪하고 항상 動하나니 선과 동이 용융하야사 바야흐로 계합한다.

 周邊含容觀은 곧 事事無 法界이니 이 觀은 이 事로서 事를 바라봄이니 事를 온전히한 理致를 모두 능히 事를 따라 하나하나 가히 볼 수 있음을 觀하게하고 다시 理를 온전히 한 事를 理致를 따라 하나하나 가히 容納함을 觀하게 함이다. 그런 연후에야 하나와 多가 능히 걸림이 없어지고 大와 小가 능히 서로 容納함이니다. 神用이 自然하야 가히 測量하지 못하나니 故로

 沙門 思存이 이 觀을 의지하야 詩를 읊어 이르되

 "萬德圓融一念心,念該九世已當今. 色空互異二無別,性相交通兩不侵. 山岳非高塵劫大,江湖非濬路還深. 我宗事事元如此, 君欲尋時試略尋."

라했으니, 해석해보면 萬德이 一念心에 圓融하고 一念이 九世의 過去現在未來를 갖춤이다. 色과 空이 서로 다름이나 둘이 다름이 없고, 性과 相이 서로 通함이나 둘이 侵犯함이 없음이로다. 山岳은 높지않음이로대 진겁토록 컸었고 江湖는  깊이 파지않아도 길(水路)은 도리어 깊음이로다 我宗의 事事無 가 원래 이러하니 그대 찾고 싶으면 찾아봐야 한다.

 저 三重觀을 지남으로서 가히 一眞法界에 깨달아 들어 갈 수 있으리니 華嚴의 玄妙한 理致가 기실 그 속에 다 들어있다. 고로 法界觀門이 가히 華嚴의 眞理를 含藏한 三重觀이라 할 수 있다. 二祖智儼은 觀法을 일반교리의 通稱하는 바인 觀法이요 또 華嚴別敎에 限定한 觀法이다. 前者는 또한 通觀, 二種觀, 五種觀과 十八種觀등의 四種을 包含한다.

 通觀은 이 一切凡夫의 煩惱를 消滅하도록 하기 위해서 저로 하여금 諸行을 능히 닦도록 하고 능히 諸理를 닦도록 함이다.

 二種觀은 이 唯識觀과 空觀이니 唯識觀을 닦는 것은 반드시 靜處를 의지하야 持戒를 깨끗이 지녀 至心으로 懺悔하고 몸은 跏趺坐를 結하고 왼손은 오른손 위에 두고 그 몸을 단정히 하고 눈을 감고 숨을 고르며 혀는 입천장에 두어 바른 마음으로 緣에 住하여 나타난 바의 境相이 自心의 所作分別인줄을 알아 숨을 따라 그마음을 住하야 日月을 지나면 그마음이 그치어 定을 이룬다.

 空觀은 이 無生이나 緣으로 生하는 立場에서 唯識觀과 더불어서 華嚴思想體系를 組成한 根本理則이다.

 五種觀은 곧 不淨觀과 慈心관, 緣起관, 安般念관과 界分別관등이니 貪이 많은 衆生들에게는 不淨觀을 嗔心이 많은 衆生에게는 慈悲觀을 癡心이 많은 衆生에게는 緣起觀을 我見이 熾盛하는 자에게는 界分別觀을 닦게 함이다. 또한 十八觀은 이 衆生의 根機의 差別에 따라 施設한바인 觀이다. 곧 眞如觀, 道觀, 唯識觀, 空觀, 無相觀, 佛性觀, 如來藏觀, 壁觀, 盲觀, 苦無常觀, 無我觀, 數息觀, 不淨觀, 骨觀, 一切處觀, 八勝處觀, 八解脫觀, 一切入觀등이니 病에 따라 施設, 病이 一定치 않기 때문일세 故로 施設한바가 하나가 아니다. 華嚴別敎적 觀法으로 생각해볼 때 이 眞如觀이니 이 性起觀적인 一種이라, 根本直覺적으로 드러난 바인 境地이기 때문이다. 만약 五敎적인 分類를 의지할 진댄 杜順의 五敎止觀과 法藏의 遊心法界記가 있다.

 그러나 觀法的인 組織을 의지하야 整理하면 곧 約敎淺深門, 直顯奧旨門, 寄顯染淨門이 있음이니 約敎淺深門은 가히 五敎止觀과 遊心法界記와 唯識觀을 包括함이요, 直顯奧旨門은 가히 法界觀門과 妄盡還源觀과 普賢觀과 華嚴世界觀과 三聖圓融觀과 華嚴心要觀을 包括함이요, 寄顯染淨門은 곧 十二因緣觀이다. 約敎淺深門은 이 먼저 敎理의 淺深을 確定하야 觀行實踐적인 次第를 지음이요, 直顯奧旨門은 이 根本直覺을 말미암아 生産된 性起觀이요, 寄顯染淨門은 이 大小乘의 觀門을  붙여두어서  깊히 華嚴一乘寄顯門의 本義를  갖춤이다.

 杜順의 觀法的인 組織을 보아서는 가히 法有我無門과 生卽無生門과 事理圓融觀과 語觀雙絶門과 華嚴三昧門으로 나눌수 있다. 法藏의 五門은 이 法是我非門과 緣生無性門과 事理混融門과 言盡理顯門과 無法界無 門이니 완전히 이 實踐的인 觀法이라서 淺으로 深에 들어감으로서 이로부터 層層으로 나아간 境地를 깨달을 수 있다. 法藏은 한 중요한 觀法을 따로 놓았으니 이 妄盡還源觀이다. 이 觀法을 가히 六門으로 나뉠수 있음이니 (1)은 顯一體이니 곧 自性淸淨圓明體요, (2)는 起二用이니 곧 海印森羅常住用과 法界圓明自在用이요. (3)은 示三遍이니 곧 一塵普周法界遍과 一塵出生無盡遍과 一塵含容空有遍이요. (4)는 行四德이니 곧 隨緣妙用無方德과 威儀住持有別德과 柔和質直攝生德과 普代衆生受苦德이요. (5)는 入五止이니 곧 照法淸虛離緣止와  觀入寂 絶欲止와  性起繁興法爾止와 定光顯現無念止와 事理玄通非相止요. (6)은 起六觀이니  곧  攝境歸心眞空觀과 從心現境妙有觀과 心境秘密圓融觀과 智身影現衆緣觀과 多身入一境像觀과 主伴互現帝網觀이다. 法藏이 이 止를 의지해 觀을 일으킴에 起信論의 觀點을 引用함이니 그리하여 理事無 와 定慧雙融과 一多相卽과 大用自在를 通達해 無障碍的 境地에 이른다..

 澄觀은 이 觀을 의지하야 十觀을 闡發해 이루었으니 곧 攝相歸眞觀과 相盡證實觀과 相實無碍觀과 隨相攝生觀과 緣起相收觀과 微細容攝觀과 一多相卽觀과 帝網重重觀과 主伴圓融觀과 果海平等觀등이다. 이 十觀이 四法界十玄門을 융섭하나니 이 觀을 依支한즉 재빨리 萬類를 거두어 玄中과 다르지 않을 것이며 또한 널리 萬行을 닦는다면 가히 實에 稱合하야 德을 이루어 널리 法界에 두루하여 菩提를 證得한다.

 澄觀의 제일 중요한 觀法에 華嚴心要觀과 三聖圓融觀이 있음이니 저 이 觀法이 모두 直顯奧旨門에 屬한것이다 前者는 이 禪定立場에서 華嚴의 心要를 表現했고 그리하여 禪과 敎가 一致되게 열어 폈보았다.. 後者는 三聖을 생각하여 文殊와 普賢은 因分으로하고 如果는 果分으로해서 因果가 不二한즉 三聖의 因果가 自然 一念가운데에 있음이다,  만약 능히  마음을 了了한다면 즉 念念에 因이 圓滿할것이며 念念에 果가 充滿해서 마음과 佛과 衆生이  똑 같아서 差別이 없으리니 저 {出現品}에 說한바인 菩薩이 應當히 自心을 안다면 念念에 항상 佛이 있어 正覺을 이루리라고 함과 같다. 行者가 만약 능히 修習을 부지런히 해서 大智圓滿에 올라 이른다면 自然히 大果가 現前하리니 바로 이 禪宗的인 特色을 갖추었다.

 5.華嚴宗의 成立

 中國에서 華嚴經이 東晋時代에 佛陀跋陀羅(buddha-bhadra)에 의하여 번역된 이래 많은 華嚴연구가들이 나왔다. 특히 6C초 南北朝時代에는 불교를 治國의 근본으로 하여 불교가 크게 발달하고 있었다. 이때 菩提流支(bodhiruci)에 의하여 世親의 {十地經論}이 번역되고 그것에 입각하여 地論宗이 성립됐으며, 그 南道派의 대표적인 학자로 일컬어지는 隋代의 慧遠도 華嚴經의 일부에서 독립된 經으로 나와 있던 {十地經}의 주석서를 낼 정도로 華嚴經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다. 한편으로는 東晋時代의 鳩摩羅什이 {金剛般若經}을 비롯한 {中論}, {十二門論}, {大智度論}을 번역하여 '空'의 철학을 中國에 소개하였고, 그의 제자 勝朝는 {肇論}을 지어 老·莊思想의 바탕에서 불교의 공이 어떻게 이해되었는지를 보여주었다.  또 曇無讖은 {涅槃經}을 번역하여 모든 사람이 佛性을 가지고 있다.(一切衆生悉有佛性)는 사상을 전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각양 각색의 經典의 입장에서 가치관을 부여하여 정리하고자 한 敎相判釋 즉 敎判이 생겨났다. 불교사상에 있어서 인도불교가 극복되고 中國불교가 독자적으로 확립된 것은 7C초 전 후, 즉 南北朝 말에서 隋代에 걸쳐서였다. 華嚴經은 中國에서 번역된지 200년이 지나 비로소 中國적 사고와 결합하여 새로운 思想으로 꽃 피울 수 있는 획기적인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華嚴宗의 成立과 發達이다.



  1)華嚴宗의 開祖라고 일컬어 지는 杜順

 華嚴宗은 杜順(557∼640)에서부터 시작하여 宗密에 이르기 까지 五祖에 걸쳐 크게 발달된 불교의 한 종파이다. 華嚴宗은 天台宗과 더불어 中國불교의 쌍벽을 이루는 거대한 종파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 思想은 禪宗 등에 흡수되어 계 발전되어 갔다.

 杜順은 18세에 出家하여 84에세 因聖寺에서 入寂하였다. 제자에는 達法師, 樊玄智, 智儼이 있다. 杜順의 著書에는 {華嚴法界觀門}이 있고 {華嚴五敎止觀}도 있다. 또 智儼의 著書인 {華嚴一乘十玄門}도 杜順에게서 계승하였다고 한다.

 {華嚴法界觀門}운 '空'의 실천을 통하여 一卽多의 이치를 추구함으로서 般若界 華嚴을 이루면서 四種法界의 기원이 된다. {華嚴五敎止觀}은 小, 始, 終, 頓, 圓의 5敎를 실천의 관법상에서 저술하였으므로 杜順은 觀門에 수승한 사람으로서 十玄門의 이론도 觀門上에서 그 근본을 받아서 저술하였을 것이다. 이 실천관법은 智儼이 계승한 것으로 華嚴종의 근본이 된다. 그러나 華嚴宗의 初祖로 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는 異說이 있다.



  2)華嚴敎學의 創始者라 일컬어 지는 智儼

 智儼(602∼668)은 12세로 杜順의 문하에 들어가 27세때에 一乘의 진의를 깨달음을 얻었다. 智儼은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자기의 수행과 門第의 교육에 바쳤다. 그의 著書로는 {華嚴五十要問答}2권, {華嚴孔目章}4권, {金剛般若經疏}2권, {一乘十玄門}1권 등이 있다. 그의 제자들에는 擬傷, 法藏등이 있다.



  3)華嚴宗의 大成者라 일컬어 지는 法藏

  法藏은 華嚴經 신역사업에 참여 했을 뿐만아니라 정치적인 활동에도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따라서 측천무후 및 조정의 귀족들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 마디로 法藏은 武周王朝時代 佛敎界에 뛰어난 분이 였다고 할 수 있다.

 法藏은 般若界의 華嚴과 智儼의 唯識界의 華嚴을 통합시켰다. 法藏은 아무리 '空'이라 하더라도 그 배후에는 '有'가 있어야 한며 '空'의 배후에는 '有'가 있다면 '空'과 '有'는 상호교찰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華嚴철학이 갖는 논리의 基礎로 法藏思想의 정수라고할 수 있다.

 法藏은 {華嚴一乘敎義分齊章}에서 敎判理論을 세웠으며 {探玄記}에서는 唐譯八十華嚴을 槪論 하였다. 그의 著書로는 {華嚴經探玄記}, {忘盡還源觀}, {遊心法界期}, {華嚴旨歸}, {文義網目}, {華嚴三昧觀}등의 많은 著書가 있다.



  4)華嚴과 禪의 융합자라고 일컬어 지는 澄觀

 澄觀(760∼820)은 799년 덕종으로부터 淸凉國師라는 호를 받았다. 청량국사 澄觀은 天台의 심연에게서 天台, 維摩를 牛頭의 慧忠에게서 禪을 배우고, 그리고 제사에게서 一切의 佛敎學을 연구하고, 다시 經史百家로부터 心膽, 五明, 飛走, 儀軌에 이르기까지 연구하지 않은 것이 없고, 宗으로 하는 華嚴에 나아가서는 錢塘의 天竺寺 法詵에게서 修學하였다. 그 뒤부터 그는 오대산 大華嚴寺에서 華嚴經을 강의하고, {華嚴經疏} 60권, {貞元經疏}10권, {三聖圓融觀門}1권, {華嚴經略策}1권, {華嚴法界玄鏡}1권, {新鏡七處九會頌釋章}1권 등이 있다.



  5)圓覺에 硏究者라 일컬어 지는 宗密

 宗密(780∼841)은 儒家에서 출생하여 儒學을 究盡한 사람으로서 후에 南宗禪의 道圓에 나아가 出家하고 禪學을 습득하였다. 후에 華嚴의 澄觀을 만나 華嚴을 체득하였다고 한다.

 그의 著書로는 {華嚴經行願品別行疏}6권, {圓覺經大疏}1권, {圓覺大疏}13권, {華嚴原人論}1권등이 있다.

 이상의 華嚴宗의 발달과정을 보면 華嚴宗은 華嚴經의 思想을 기본으로 하고 시대적인 조류에 따라서 般若, 唯識, 禪등을 받아들여 그 思想을 한층 심화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6. 華嚴五敎判

 賢首가 지은 「華嚴五敎章 」에 「聖敎萬差 要唯有五 一. 小乘敎 二. 大乘始敎 三. 終敎 四. 頓敎 五. 圓敎」 라고 한다.

 五敎은 一心의 回轉하는 작용이라 하여 甚深緣起一心五義門을 구한다고 한다. 이 說은 杜順의 {五敎止觀}에 基礎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으나 五敎는 곧 敎로서 이 敎의 所銓은 義이고 義는 결국 無盡緣起이다.

 十宗因은 ①我法俱有宗은 부처님께서는 無我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我도 있다고 생각함으로 外道라고 지칭하는 것이다. ②法有我無宗은 我는 無이나 法은 三世에 實有한다고 하는 설이다. ③法無去來宗은 過去 未來의 法은 法界가 없고 現在의 諸法만이 有라는 宗이다. ④現通假實宗은 현재법 중에도 가와 실이 있다고 說하는 것이다. ⑤俗妄眞實宗은 俗諦는 虛妄하고 眞諦는 質實이라고 說한다. ⑥諸法但名宗은 一切法은 다만 이름뿐이요 實有가 아니라고 설하는 것이다. ⑦一切皆空宗은 一切法은 다 眞空이라고 설하는 것이다. ⑧眞德不空宗은 一切法이 오직 眞如로부터 연기하며 진여는 동하지 않고 만덕을 구족한다는 뜻이다. ⑨相想俱絶宗은 所緣祥과 能緣相이 함께 끊어진 無念無上의 絶言 결계로서 頓敎에 해당한다. ⑩圓明具德宗은 일체의 공덕을 원만하게 具足하는 것이다. 六宗은 小乘이고, 四宗은 大乘을 말한다.

五敎十宗의 五敎判에 대한 것을 간략히 적어보고자 한다.



  1)小乘敎

 小乘敎란 부처님이 成道하신 후 第二七日에 一切衆生을 위해서 華嚴經을 설함에 마치 해가 뜸에 먼저 高山을 비추는 것과 같이 文殊 普賢 등의 대근기만이 이것을 이해하고 法益을 얻었다. 그러나 그 法이 너무 심오하녀 근기가 하열한 聲聞, 緣覺 二乘은 會座에 있었으나, 그 이치를 證得하지 못한 것이 마치 귀머거리와 같고 벙어리와 같았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방편으로서 그 심오한 敎의 정도를 낮추어 옅은 근기들이 이해하기 쉬운 법을 설해서 이러한 하근기들을 교화하였다. 따라서 그 설한 바 법이 극히 저열해서 다만 我空의 이치만을 설하고 法空의 이치를 설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愚法小乘 즉 법에 어리석은 小乘이라 하였다. 小乘二十部중에도 大衆部와 같이 法空을 설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다분히 我空만을 설하고 三世實有 法體恒有를 주장하므로 모든 小乘敎는 이 가운데 포함된다. 이 敎에서 설한 法相은 五位七十五法으로서 일체를 섭하고 見惑과 思惑의 二惑을 끊고 三界內 의 分段生死를 여의는 것을 구경목적으로 한다. {四阿含}등의 經과 諸部의 律과 {六足論}, {發智論}, {婆沙論}, {俱舍論}等의 設한 내용이 이 敎中에 속한다.



  2)大乘始敎

 大乘始敎란, 小乘敎에서 점차로 大乘敎에 들어가는 최초의 門으로서 다음의 終敎에 대해서 大乘의 初門이 되므로 이것을 始敎라고 한다. 그런데 이 始敎에는 相始敎와 空始敎의 二種이 있다. 相始敎란, {解深密經」「瑜伽論}, {唯識論}등에 설한 法門으로 五位百法을 세워 諸法의 性相을 결택하였으나 철저하게 眞如의 理性을 설하지는 못하였다. 즉 眞如는 諸法의 所依가 될 뿐이지 凝然不變해서 결코 諸法이 되지 않는다 하며, 또한 一切衆生 悉皆成佛을 설하지 않고 五性各別을 세워 一類의 衆生은 영구히 생사를 出離할 기회가 없다고 주장한다. 法相宗에서 설한 법문이 이에 해당한다. 空始敎란 {般若經}, {中論}, {百論}등의 經論에서 說한 法門으로서 여기에서는 有所得의 見을 破하고 一切皆空의 뜻을 설하여 諸法의 實相은 言語와 思慮를 초월한 것임을 보였으나 아직 大乘究竟의 이치를 說하지 않았기 때문에 空始敎라 한다. 三論宗의 설한 바가 여기에 해당한다. 즉 法相宗과 같이 差別의 相을 세운 始敎를 相始敎라 하며 三論宗과 같이 相을 파하는 것을 空始敎라 한다. 이러한 것은 大乘菩薩의 敎이기는 하나 五性各別을 주장하고 成佛 不成佛의 차별을 세워 아직 悉皆成佛의 妙理를 나타내지는 않았기 때문에 초보의 大乘敎란 의미에서 始敎라고 하며 아직 大乘의 實義를 설하지 않았으므로 權敎라고 한다.



  3)終敎

 終敎란 앞의 始敎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大乘不空의 뜻을 밝히고 일체중생이 다 成佛할 수 있다고 말한 大乘終極의 敎이므로 이 이름을 세운 것이다. 앞의 것이 權敎임에 대해서 이는 實敎이다. 앞의 始敎에서는 眞如를 철저하게 설하지 않았는데 반하여 終敎에서는 眞如의 이치를 보다 철저하게 말하였다. 즉 眞如에는 不變과 隨緣 두 가지 뜻이 있다. 緣을 따라 萬法을 전개하는 것을 隨緣眞如라 하며, 眞如는 萬法의 實體로서 결코 그 自性을 잃지 않고 절대평등의 性德을 갖춘 것을 不變眞如라고 한다. 이와 같이 眞如에는 不變과 함께 隨緣의 德이 있다. 그러므로 萬法과 眞如는 圓融無碍해서결코 분리됨이 없다고 설하는 것이 眞如緣起의 취지이다. 理事不二 性相融通을 말하고 五性各別을 배척해서 일체중생이 모두 성불한다는 뜻을 말하고 주로 法性을 설해서 眞如緣起說을 세워 眞妄和合의 阿黎耶識을 말하였다. 그러나 아직 수행의 行位에 차제계급을 세워 優劣과 深淺을 보이므로 頓敎에 비교하면 아직 漸敎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즉 始終二敎는 마치 菴摩羅果가 단박에 익지 않고 서서히 익는 것과 같으므로 漸敎라 한다. {楞伽}, {勝 經}, {起信論}, {空性論}等에 說한 바 내용이 이에 해당한다.



  4)頓敎

 頓敎란 단박 속히 깨닫는 敎門으로 거울 속에 영상이 일시에 문득 나타나는 것과 같이 行解와 理性을 일시에 나타내는 敎이기 때문에 修行의 階位를 베풀지 않으며 차별의 法相을 설하지 않는다. 일체의 분별은 결국 妄想에 지나지 않는다. 그 妄想이 있는 동안은 여전히 凡夫이고 妄想을 그치면 곧 佛이니 따라서 「一念不生卽佛」이라고 말한다. 언어로서 一切四物에 차별을 세워 수행의 階位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은 모두 妄念으로부터 출발한 것으로서, 만약 妄念을 버리면 一切法의 차별도 없어져서 몰록 成佛한다고 하므로 앞의 始終二敎의 漸敎에대해서 頓敎라고 한다.

{寶積經論}에 '이러한 언설을 여윈 것을 頓敎修多羅라고 이름한다.'한 것을 근거로 頓敎의 이름을 세운 것이다. {維摩經}의 無言의 默理라든가 「起信論」의 離言眞如와 達磨의 以心傳心의 법문과 같이 文字言句에 의하지 않으며 수행의 순서차제를 정하지 않고 단박에 불성을 깨달아 成佛한다고 설하는 것을 頓敎라고 한다.



  5)圓敎

 圓敎란 華嚴經, 法華經이 설한 바 圓融無碍 完全圓滿한 最上勝의 敎이다. 이것을 三乘敎에 대해서 一乘敎라 하고 菩薩乘에 대해서는 佛乘이라 한다. 賢首大師는 이 一乘敎를 別敎一乘과 同敎一乘의 二種으로 분류하였다. 즉 華嚴宗은 특히 圓融不思議한 법문으로 三乘敎인 法相과 三論 등과는 전혀 다르다는 이유로 이것을 別敎一乘이라 하며, 法華經을 근거로 한 天台宗은 三乘을 열어서 一乘에 들어간다는 이유에서 이것을 同敎一乘이라 하였다. 圓敎에서 주로 하는 것은 別敎一乘으로서 이 敎는 저 三乘에서 설한 바 淺近한 교를 완전히 초월한 부처님의 근본교리이므로 別敎一乘이라 한다. 그래서 別敎一乘을 同敎一乘보다 수승한 것이라 하여 華嚴을 天台의 上位에 두어 華嚴宗을 佛敎中 最上이며 최극의 교라 하였다. 이것을 비유하면 華嚴은 수미산과 같고 나머지 교는 群山과 같다. 그리고 圓敎란 이름의 근거는 {入法界品}에 善財童子가 제39의 善知識인 願勇光明守護衆生夜天에게 법을 받은 후 夜天의 法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夜天이 답변하기를 隨應化覺悟衆生長養善根이라는 法門인데, 그 유래는 過去世에 法輪音聲虛空燈如來가 당시 국왕의 태자인 善伏 등을 위해서 연설한 圓滿因緣修多羅의 법문을 한 데서 圓敎란 이름을 세우게 된 것이다.



Ⅱ.七處九會에 대해서

 問答分別에 다음과 같은 질문과 답변은 통해 7處 9會의 뜻을 밝히고 있다.

問 : 어떤 것이 七處이고 무엇을 九會라고 하는가?

答 : 人 가운데 셋이 있고, 天上에 넷이다.(이것이 七處이다.)

第2, 第7, 第8會는 寶光明殿에 거듭 모였으므로 九會가 된다.

 여기서 人 가운데 셋이 있다는 말은 第一會 菩提場中과 第2, 第7, 第8會에서 거듭 모인 寶光明殿 그리고 第9會의 給孤獨園을 뜻하고 天上이 넷이다는 말은 第 3會의  利天宮, 第4會 夜摩天宮, 第5會의 兜率天宮 및 第 6會의 他化自在天宮을 뜻한다.

 寂滅道場會는 佛所證의 法界를 표현하고 須彌頂會 以下의 天宮會는 그 법계에 證入하는 華嚴의 菩薩道를 설하고 있다.

賢首는 寶光法堂會의 六品中에서 前 三品은 信의 대상인 如來의 信(名號品), 語(四聖諦), 意(光明覺品)라고 하고 後 三品을 신의 그 자체의 解(明難品), 行(淨行品), 德(賢首品)이라고 釋했다.



 1. 各品의 내용

 제 1會는 佛이 蓮華世界莊嚴世界海의 摩竭提國菩提場中에서 海會菩薩衆(바다처럼 가득 모인 菩薩들)과 함께 하였는데 普賢菩薩이 부처님의 神通力을 이어서 一切諸佛의 毘盧舍那如來藏身三昧에 들어 華藏世界의 依果와 威光童子의 正因을 설하였다.



  1. {世主妙嚴品}

 이 품은 九會의 經文을 통한 序文이니, 처음에 부처님이 菩提樹 아래서 바른 깨달음을 이루시고 毘盧舍那인 法心으로서 微妙한 덕을 나타낸 것은 經의 根源을 보인 것이고, 다음에 佛.菩薩들과 世界와 衆生들의 廣大하고도 그지없이 莊嚴한 것을 서술하는데, 十世界의 티끌 수 같이 많은 菩薩과 몸 많은 신으로부터 大自在天王에 이르기까지 四十一中이 구름처럼 모여와서, 걸림 없이 원만한 功德으로 華嚴經法門을 들을 만한 자격을 갖추고 부처님의 德을 제각기 찬탄하였으니, 이것으로써 大法을 연설할 도량과 법을 말씀할 교주와 법문을 들을 대중이 함께 원만하여서 華嚴經의 無量한 法門을 일으킬 준비가 온전히 갖추어진 것이다.



  2. {如來現相品}

 이제 근본 法輪인 큰 법을 演說하기 위하여 모인 대중이 설법을 청하는 것을 말하고, 如來가 여기에 대답하기 위하여서 먼저 상서를 보이는데, 입으로 光明을 놓아서 그지없는 世界와 한량없는 佛.菩薩을 나타내고, 양 미간의 광명으로는 說法할 法主를 비추고, 국토를 진동케 하여서 大衆을 긴장케 하고, 다시 부처님 앞에 연꽃이 나타나서 華嚴의 淨土를 보이었으며, 白毫의 광명으로는 대교의 근본이 부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표시하였다.

  3. {普賢三昧品}

 如來의 장자이며 이 경을 말씀하는 법주들을 대표하는 普賢菩薩은 부처님의 광명에 비치어서 여러 菩薩의 마음을 짐작하고 不可思議한 微妙法門을 연설하려고, 毘盧舍那 如來 장신삼매를 들어가서 안으로는 사실과 이치를 관찰하고 밖으로는 대중의 근기를 살펴보아서, 설법할 용의를 완전하게 갖추고, 삼매에서 일어나는 일을 서술하였다. 그러므로 第2品과 第3品은 法을 연설할 의식(儀式)을 밝힌 것이다.



  4. {世界成就品}

 如來의 둘레갚음(依報)을 말하여 모든 부처님의 根源이 됨을 밝히었으니, 普賢菩薩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世界 바다.衆生 바다 등 열 가지 바다를 관찰하고, 부처님의 不可思議한 智慧를 찬탄하고, 世界가 생겨진 인연과 의지하여 머무는 형상 체성 등을 말하였다.



  5. {華藏世界品}

 華藏莊嚴世界해는 毘盧舍那佛이 過去에 忍行을 닦을 적에 엄청난 큰 誓願으로 淸淨하게 莊嚴한 것임을 말하였는데, 普賢菩薩은 世界해가 생긴 모양을 말할 적에 맨 밑에는 수 없는 바람둘레가 있고, 世界해의 주위에는 큰 철위산이 있고, 그 안에 金剛으로 된 땅이 있는데, 땅 위에는 수 없는 향물 바다가 있고, 그 사이에 향물강이 흐르며, 그 수 없는 향물 바다 가운데는 말할 수 없는 世界종이 있고, 한 世界種마다 말할 수 없는 世界가 있다고 말하였다.



  6. {毘盧舍那品}

 위에서 말한 훌륭한 世界는 반드시 그러한 원인이 있다고 말하면서, "지나간 세상 말할 수 없이 오랜 겁전에 勝音世界가 있었고, 그 世界에 一切 공덕산 수미승운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 나라의 大威光태자가 그 부처님을 섬기면서, 모든 삼매와 다라니와 般若婆羅蜜多와 大慈 大悲 大喜 大事 大願과 큰 邊材를 얻었고, 그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다시 세 부처님을 섬기다가 목숨을 마치고, 다시 수미산 위에 태어나서 부처님의 法門을 듣고 三昧의 힘으로 實相 바다에 들어가서 이익을 얻은 일을 말하였으니, 그 대위광태자가 곧 毘盧舍那佛의 전신이란 뜻이다.

 이리하여 第1會의 6品은 모두 믿을 대상으로서의 부처님과 世界의 묘한 공덕과 훌륭한 忍行을 보인 것이니, 이것이 곧 믿을 인과며, 果報를 말하여 信心을 내게 하는 擧果勸樂生信分이다."



 第2會는 부처님이 普光明殿에서 海會菩薩衆과 함께 하였는데 文殊師利가 부처님의 神通力을 이어서 如來三業과 神位法門을 설하였다.

  7. {如來名號品}

제1會의 6品에는 믿음(所信) 대상으로 果位의 功德을 보였으므로, 제2會의 6品에서는 信行을 보이었으니 곧 十信이다.

 이 品의 처음에는 第2會의 序論을 말하였고, 다음은 十方世界에 있는 부처님의 명호를 말하였으니, 부처님이 하시는 業은 모든 근기에 맞추어 가지가지 묘한 상호를 보이며 자유롭게 화현함을 나타낸 것이다. 名號는 德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名號로써 부처님의 몸으로 하시는 業을 보인 것이다.



  8. {四聖諦品}

 衆生의 慾望이 각각 다르므로 부처님의 가르치는 방법도 같지 아니함을 보이기 위하여, 시방 法界의 모든 世界에서 四聖諦를 일컫는 이름이 제각기 다른 것을 들어서 부처님의 입으로 하시는 業이 헤아릴 수 없음을 보이었다.



  9. {光明覺品}

 부처님은 두 발바닥으로 百億의 光明을 놓아서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가지가지 차별한 현상을 비추고, 文殊菩薩은 智慧의 光明으로 平等한 이치를 비추매, 몸의 광명과 지혜의 광명이 합하여 하나가 되어 진리와 현상이 圓融한 이치를 깨닫게 하였다. 대개 뜻으로 하는 業은 헤아릴 수 없이 自在한 것이므로 광명으로써 보인 것이다. 이상의 3品은 믿음의 의지가 될 과위의 덕을 밝히었고, 다음의 3品에서는 능히 믿는(能信)行을 보이었는데, 믿는 데는 智慧와 修行과 공덕이 있는 것이다.



  10. {菩薩問明品}

 문수菩薩이 재수.보수 등 아홉 菩薩에게 차례차례 연기와 교화와 업과와 설법과 복밭과 바른 가르침과 바른 행과 도를 돕는 일과 한결같은 道의 아홉 가지 깊은 이치를 물었는데, 아홉 菩薩은 각각 偈頌으로 대답하였고, 아홉 菩薩의 물음에 대하여 文殊菩薩도 偈頌으로 如來의 깊은 境界는 虛空과 같아서 일체 衆生이 거기 들어가면서도 실제로는 들어가는 데가 없다고 대답하여 믿음의 근거가 되는 知解를 내게 하였다.

  11. {淨行品}

 바른 智慧에 대한 바른 행을 보이기 위하여 일상 생활의 기거동작과, 보고 듣는 대로 誓願을 내어 行을 깨끗하게 하는 일을 밝히었는데, 그것을 1백 41게송으로 말하였다.



第 3會는 부처님이  利天宮의 妙勝殿上에 있을 때 海會菩薩衆과 함께 하였다. 法慧菩薩이 佛의 神通力을 이어 보살의 無量方便三昧에 들어 十住 등의 법문을 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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