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대승불교 학자인 나가르쥬나(Nagarjuna)는 열반과 윤회는 하나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 해석을 쉽사리 오해한다. 그러나 열반과 윤회가 같다는 관념은 현상계의 공성(空性)과 열반의 절대적 경지는 동일하다는 말이다.
빠알리어 삼장은 윤회를 다섯가지 집합체(五蘊.오온)와 네가지 요소(四大.사대), 정신작용의 근원인 12처의 연속으로 보고 있으며 열반은 이러한 상대적인 물질과 정신적 근원의 소멸상태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열반의 지복을 얻는 사라은 윤회중에 생존의 상태에서 이 지복을 경험한다고 한다. 어떻든 열반은 조건 지어지지 않은 것이며 상대적이거나 상호 의존적인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이유로 사후 이러한 요소들과의 결합은 제거된다.
열반후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적 진리'여야 할 것이다. 세상사를 초월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열반은 집착과 배척, 좋아함과 싫어함, 모든 것을 넘어선 곳에 있으므로 누구에게나, 무엇에 집착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있으면 결코 열반을 얻지 못한다.
궁극적 경지에 도달하면 집착하였던 이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고 집착의 대상인 이 세상은 사라지고 살아 있는 것(有情.유정)과 살아 있지 않은 것(無情.무정)의 무상과 비인격성을 알게 될 것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스승이나 경전에 의존해 보아야 열반을 실현시키기 어렵고 허황된 꿈이 될 것이다. 허공 중에 성곽을 지을 수 없다. 폭풍은 그치고 처절한 인생의 투쟁은 끝나며 만물의 움직임도 끝날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들, 근심, 불행, 책임, 좌절, 무거운 짐, 육체적 정신적 병과 감정들은 최상의 지복인 열반을 얻은 후에는 사라질 것이다.
열반은 오관을 통하여 경험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장님이 자기가 볼 수 없으므로 빛이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비논리적이다.
열반은 현생에서 얻을 수 있다. 불교는 궁극적 목표가 이 세상 넘어서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현생에서 육신을 가지고 열반을 얻으면 유여열반(有餘涅槃.sopadisesa nibbana)라 한다. 아라한이 자연적인 생의 마감으로 육신이 소멸하여 아무것도 남지 않으면 이를 무여열반(無餘涅槃.Anupadisesa Nibbana) 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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