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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浩 丈愚 大宗師(설호 장우 대종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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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1건 조회 2,769회 작성일 14-07-01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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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융인의 맥 (4)
雪湖 丈愚· 大宗師
 

(설호당 장우 대종사
)
 
圓融宗 2代 元老院長
 
歷任
雪湖 丈愚 大宗師
1897년4월8일 출생
1994년4월5일 圓寂
법납 90세
世緣 97세
 
화상께서는 서기 1987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성주이씨로 태어났습니다. 12세에 경상북도 의성 고은사로 동진출가 승가의 사미로 출발하여 고은사 에서의 공부가 깊어 지면서 법구(法具)로써의 총명 함과 함께 선지식 들과의 법거량을 할때는 언제나 겸손과 자재함을 일ㅎ지 않으셨다.
 
그당시 고은사 삼직에 계시면서 많은 승려후학 들을 통솔하시고 대강백의 면모를 보이셨습니다. 혼란과 혼돈의 시대에는 평양에 있는 정련사 주지로도 잠시 모무르시다가 조선불교 30본찰로 있고 일본의 한일합방과 더불어 일본불교와 조선불교의 통합을 이루려 할즈음 드려내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 시였고 통합을 반대하는 7인의화상 중 한분 이신 장우(丈愚)스님 이시 였다
 
화상께서는 9척 장신 이시고 또한 목소리는 대중을 압도할 만큼 우렁차셨다. 그리고 1944년 계미년 대한민국 독립과 함께 자유를 만끽하였으나 자유당 시절 비구 대처간의 분쟁이 있을때 화상께서는 홀연이 고은사를 떠나 중국으로 건너가 미타굴에서 선지식의 공부가 시작되어 모든이치와 인생의삶 자체가 미타경전에 의한 것으로 이국만리 타국에서 피나는 용맹정진 의 결정채로 나타나 한경계의 견성(見性)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오도송으로는 다음과 같다.
 
 
人間處處 有餘光 인간처처 유여광
萬里浮雲 遮亦日 만리부운 차혁일
雜難粉粉 也不妨 잡난분분 야부방
彌陀一句 法王中 미타일구 법왕중
 
 
사람은본래 착한불심이 누구에게나 있으되
만리밖의 뜬구름 부처의 마음을가리니
잡념이 분분하여 방해받지 않으려면 부처의 말씀에는
아미타경 한구정리 으뜸이더라.
 
 
대승경전 아미타 경전에서는 삼매에 들어 염불하는 염불삼매를 설한다. 이에따르면 염불은 죄를 없애고 삼매중에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은 물론하고 부처님의 나라에 태어나길 발원하면 반드시 태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아미타경에서는 깨달음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라도 임종할 때 일염으로 아미타불을 열 번만 부르면 서방정토에 왕생한다고 한다. 염불은 중국에와서 그방법과 내용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되고 화상께서는 모든부처님을 마음속에 떠올리는 통(통)염불특정한 부처님만을 마음에 떠올리는 별염불(별염불)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런구분보다 어떤형태로든 부처님의 아름을 부르고 신앙하는 일이 일반인들이 시행하기가 쉬우므로 나중에는 아무타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을 염불 이라했던것이다. 염불은 쉽게 행할수 있는 수행법으로써 대중의 호응이 높았다. 어려운 교리를 선호하는 공부를 하지않아도 극락왕생 할수있다는 것 때문에 일반대중이 선호하여 신라시대의 원효스님께서 무애(무애)박을 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지성으로 부르면 극락에 왕생 할수 있다고 가르치신 이래로 염불은 지금까지 불교인의 수행법의 대명사가되었다. 그리고 화상께서는 지극정성으로 염불하면서 중국의 마타굴에서 부처님을 친견하였고 빛을발하는 방광(방광)을 얻기도 하시었다. 진심으로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생각 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사심이나 탐욕이 살아지는 경지를 체험하시고는 너울너울 춤을 추셨다고합니다.
 
 
화상께서는 견성을 몸소체험 하시고 귀국하여 대구 안국사를 창건하시고 정토삼부경전(淨土三部經典)을 널리 홍포 하시며 미타 정토사상(정토사상)의 학문적(學文的) 체계와 정토사상의 난해한 경전을 현대적으로 흉합하여 합리적으로 학문을 원융(圓融) 하시였다. 그리고 원효종 소위경전의 주석서와 원효사상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이시다 주석처를 팔공상 줄기의 보국사 암자를 다시 마련 하시고 원융종 원로로 위촉되시였고 화상께서 심혈을 기울이신 미타정토사상연구(미타정토사상연구)를 홍포 하시기에 정진하시여 화상께는 늘 많은 경전을 연구하시는 스님 제가 석할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웠고 많은 상좌 들에게도 아미타경전에 대한 공부를 제촉하시고 포교승으로써의 면모를 보이시며 저자거리 상인이나 걸인이나 지위고하(지위고하)를 막론하시고 미타불의 위실력을 몸소 체험하신 설법으로 많은 중생을 교화하시였다. 출가승 재가승 후학을 많이 배출 하시였으나 지금은 모두 원로하여 원적(圓寂)에 드시였고 현재는 상좌로 선덕(善德)선진(善眞)두스님께서 큰스님의 법맥(法脈)을 전수받아 아미타불 정토사상의 심오한 위신력(위신력)을 설법 홍포하고 있으며 이 두 스님들은 큰스님의 덕행을 힘입어 수행정진(修行精進) 하고 있으며 두 상좌스님은 미타사상 경전(미타사상경전)에 원융무애사상(圓融无涯思想)울 접목하는 경전연구에 매진하며 해박한 인재승(仁材僧)으로 면명이 맥(脈)을 이어 오고있다.
 
상좌스님 으로는 선덕스님( 圓融宗 比丘尼會 會長 역임)과 현재 남양주 원광사(社團法人) 주지로 있는 선진스님 그리고 대구 청정행(淸淨行) 보살이 있다.
 
큰스님께서는 오래도록 건강을 잃지 않으시고 정정한 모습을 중생계에 보이 셨으나 인간의 삶이란 한계가 있는 자연의 법칙대로 홀연히 떠나 가시니 큰스님의 세연이 97세였다.
글쓴이: 원 산 평신 2014rdnjf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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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 작성일

<DIV>위사진 :원묘선덕 화상과&nbsp; 원산 화상 </DIV>
<DIV>아래사진 원묘선덕&nbsp; 화상 외&nbsp; 하기 수련회 원융종 비구니 스님들 1990년도 여름 </D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