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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山祖 月峯 宗修 大宗師(계산조 월봉 종수 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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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원산
댓글 0건 조회 3,079회 작성일 14-05-30 12:52

본문

 
 


(社)大韓佛敎 圓融宗
 
 
開山祖  月峯 宗修 大宗師  
 
月峯 宗修 (월봉종수)
大宗師(대종사)
1911년11월24일 出生
1992년 3월12일 圓寂
 
 
스님은 경북 영풍군 풍기읍 우금동 157번지 에서 소작 농민의 외아들로 태어나시였다 풍기읍 산내 보통 소학교를 졸업 하시고 1928년 밀양 표충사에서 조문준 화상을 은사로 입산 하시고 학문에 열의를 내시여 경학 공부에 남다른 재주와 출중한 머리로써 경북 금륭사에서 사집과 양산 통도사 강원에서 대교과를 수료하시고 통도사 강원에서 수선안거 5번의 수행을 하시고 해인사 박보담 화상에게서 비구계를 수지 하였습니다 표충사로 출가하여 내전을 공부하였으며 보담스님은  종수스님의 절윤한 총명을 기특 하게 여겨 법기(法器)임을 간파 하시고 법제자로 삼아 불법의 오묘한 가르침을 전하였다.
 
종수스님은 스승의 깊은 뜻을 철저히 깨달 았으며 종수스님은 가끔“공문(空門)의 법이 종수에게 있다”고 말을 했다.
종수스님은 강원의 이력을 모두 수료하고 보담스님으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뒤 전국 명산대찰을 수렴하며 현척·경산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을 두루 찾아가 법거량을 한뒤 제방을 떠돌며 종문의 선을 참구·요체를 터득하며 법을 등불삼아 자신을 더욱 탁마했다.
이때부터 종수스님의 도예(道譽)는 널리 경향 각처에 알려져 배우려는 이들이 사방에서 모여 들었지만 고고한 한 마리 학(鶴)처럼 깊은 산에 운거(雲居)하며 세속적 즐거움을 떠난 삼매(三昧)의 경지에서 노닐었다.
 
세속적 즐거움을 떠난 삼매가 나오는데 그 누가 티끌 속에서 홀로 빛나는 진여(眞如)의 실상(實相)을 알겠는 가
” 종수스님은 어느 날 경산스님 에게 받은 화두 시심마(是甚磨) 화두를 들고 제방의 종장(宗匠)을 찾아다니며 물었으나 아무도 그 뜻을 대답해 주지 않았다.
화두를 들다보면 삼악번뇌의 그림자처럼 따라 일어나는 분별심 때문에 빈껍데기 육체만 장승처럼 남아 있고 마음은 어데로 외출하였는지 내안(內岸)은 항상 텅 비어 있었다.
 
종수스님은 전미개오(轉迷開悟).오도심전(悟道心田)을 개안하기위해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벗어난는 오도경지에 입문 마음속에 내주(內住) 한 번뇌의 삶과,그림자를 지워버리는 결사정진에 돌입했다.
일년이 지나고 또 새로운 계절이 반복을 했지만 가로막힌 큰 견성의문은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조요수스님은 도안월저(道安月渚)스님의 임종게를 생각해 보았다.
뜬구름은 자체가 본래 없는것
본래 없는 것은 바로 광대한 허공이어라
허공중에서 구름이 일고 사라지고
일고 사라짐 어디서 오나, 본디 없는 것을.
기도정진을 계속하던 어느 날 종수 스님은 유리 광처럼 밝은 자성을 보았다.
즉 자신을 깨쳐 안광이 열렸다.
경산스님도 이가하여 주었다.
 
깨닫기 전에는 죽어도 사바세계에 나가지 않겟다던 자기본성이 열려 마음이 만든 길고 어두운 터널이 뚫리고 강렬하고 치밀한 구도정신을 통해 참으로 행언할 수 없는 견성의 밝은 문이 열린 것이다.
 
이때부터 보고 들음에 걸림이 없고 일과 이치에 초월하여 현묘한 뜻에도 능통하여 생사에 자재함은 물론 구하거나 집착함이 없이 칠통팔달(七通八達)하여 깨달아 밝히지 못할것이 없고 통하지 못할 이치가 없게 된 것이다.
 
종수 스님은 다시 홀로 참구를 거듭 자신의 깨우친 바를 여러 경전과 비교.확인하며 걸림 없는 자재로운 경지에 도달 불교 중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승보살의 행원을 몸소 사회 속에 회향하며 포교와 교화의 덕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참되고 복되게 사는길
 
우리 인간이 무엇 때문에 사는가?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들도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행복하기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지고 내일보다는 모래가 더욱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살아가” 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인간은 행복을 끝없이 찾아가는 나그네 일지도 모른다. 어떤 시인의 노래처럼 “법을 찾아 온 산천을 헤매고 돌아왔더니 뜰 앞 매화나무에 꽃이피었더라” 고 하듯이 행복을 찾는 방법은 ‘산 넘어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 불자들은 마음속에서 욕망과 집착을 벗어던져야 행복해질 수 있으며 마음에 무소유의 넉넉함을 배워야 한다. 이 세상은 우연이라든지 운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가 지은 것은 필연이고 자기가 자신의 운멸을 바꿀 수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이세상은 공짜는 없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는 것이다.” 지금 사회는 총체적으로 국민기강이 해이해져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대형 사건-사고들은 우리가 과연 정신을 차리고 있는 국민인가, 우리가 과연 기강이 있고 질서를 지키는 사회인인가를 스스로 묻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최근 공직자 사회에서는 “되는 것도 없고 길거리에서나 등산로, 심지어는 타고 가는 승용차 안 에서까지 태우던 담배나 휴지를 밖으로 버리는 얌체행위를 목격할 수 가 있고 교통질서는 갈수록 엉망이다. 사회는 바야흐로 물질적인 풍은 때문에 바른 윤리관을 클게 위협하고 있다. 현실은 욕망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도 만족함을 모르면 항상 궁핍한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 불자들은 내마음을 먼저 찾는 깨달음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지은 복만큼만 내가 받는다는 수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자기가 복 지은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양상구도(도둑)이요, 사기꾼인 것이다.
 
 
<<보왕산매론>>에 “복은 검약에서 생긴다”라고 했듯이 항상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복을 남에게로 회향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진실로 참되고 복되게 사는 길은 “재물의 복은 검약으로, 자식의 복은 자식을 바로 키우는 것 으로 회향해야 한다.” 우리 불자들은 항상 자기의 주장을 앞 세우기 이전에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하심(下心)하는 마음 자세로 화합의 미덕을 실천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큰 죄악중의 하나가 자기중심적인 아집 때문에 화합을 깨뜨리는 일이라” 고 하셨다. ‘합한 두 사람은 흩어진 열사람 보다 낫다는 격언’처럼 서로의 지혜를 모우고 서로를 위해서 노력할 때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것이고 이렇게 해야 진실로 복되고 참되게 사는 길이다.
 
 
1971년 여름태고종 부산교구 종의회 의원을 역임 하시여 포교에 힘쓰시고 그 이듬해인 1972년도 에는 대한불교 일승종에서 대종사 법계를 품수 받으시고 그해 대한불교 일승종 5대 종정(宗正)에 취임 하시여 후학들에 경학공부와 선 수행의 지침서를 내어 노으시고 솔선 수행정진 하시니 노대덕 스님들의 존경의 사표 되시였다 1991년 4월에 사단법인 대한불교 원융원을 원융종으로 개칭하시여 대한불교 (圓融宗) 開山祖(개산조) 가되시는 초대종정(宗正)에 추대 대시여 원융종의 위상을 높이였고 사부대중 원융인 들의 기상을 높이였다.
 
1991년3월12일老師(노사)게서는 아침공양을 마치시고 시자스님과 은법 상좌가 지키보는 가운데 원적에 드시니 午時(오시)였다.
은법상좌로는 현재 3세종정 이신 일공스님.원융종부산 종무 원장을 역임하신 천호스님이 있고 인천 용문사 주지이신 해우스님. 지우. 성진. 해원정사 주지해공. 比丘 老師(비구니 노사)같은 청정 수행승을 배출 하였다.
 
金色秋天月 光明照十方
(금색추천월 광명조십방)
衆生心水淨 處處落瀞光
(중생심수정    처처낙정광)
 
 
황금빛 가을밤에 달빛도 밝아라
사방에 빛춘다 중생들 마음 물맑은 곳엔 곳곳마다 청정한 빛 내려 앉아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심 이건만 청정 하지못하여 그자성을 밝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마음 물처럼 맑으면 저 달빛은 언제나 비칠 것이다 스님께서는 달을 상징하여 쓰신 詩語(시어)를 많이 남기시었다.
 
2014년4월  글쓴이 ---無碍庵  圓 山

               <사진>  開山祖 앉아계신분  월봉종수대종사  원조법륜     원산평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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